만약 나에게 10분만 남았다면

가장 빠른 달리기

by 공담소

어느 봄날의 늦은 오후. 평소와 같이 평일 오후를 보내고 있었다. 함께 육아 중인 남편은 저녁밥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곧 첫째를 하원시키러 가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내 인생이 10분 남았다는 사실을 통보받았다. 믿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진짜인지 아닌지 판단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머리도 몸도 비상 모드에 돌입하고 말았다. 이성을 잃는다.


‘정말이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들자 방금까지 들리던 남편이 쌀 씻던 소리가 눈물에 막혀 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안 되는데 무작정 슬픔에 무너진다. 1분 1초가 아까운 줄도 모르고 눈치 없이 슬픈 감정들이 시간을 먹어버린다. 왜 슬픈 건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눈물과 콧물이 얼굴에서 떨어진다. 어깨에 닿은 남편의 손마저 내 옷을 젖힌다.


“왜 그래? 무슨 일이야 갑자기, 정신 차려봐!”

벌써 그리운 그 목소리에 잠시 잃은 정신이 돌아온다. 소리를 내며 엉엉 울고 있었나 보다. 누가 봐도 미친 사람처럼 울었나 보다. 평소에는 아내의 감정 변화를 잘 모르는 남편이지만 이번에는 모를 수가 없었나 보다. 잘 보이진 않지만 놀란 토끼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대답도 할 수가 없다. 말문이 막혀버렸다는 것이 이런 걸까. 눈물이 목도 막아버렸다. ‘나중에 날 이해하겠지, 이 사람만큼은 날 이해하겠지’하며 소파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향한다.


문고리를 아래로 깊게 누르면서 방문을 연다. 한 걸음을 디디자 3개월 아가가 누워 있는 것이 바로 보인다. 더 가까이 가지 못하고 멀리서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본다. 아이는 다른 세상에 있는 게 분명하다. 아무 움직임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슴이 미세하게 오르내린다. 깊은 잠에 빠졌는지 힘이 완전히 빠져 있다. 눈썹이 올라가 있어 살짝 실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혹시라도 그 사이로 나를 볼까 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10초면 충분하다. 30분 깊이로 바라보았기 때문에 그걸로 충분하다. 난 갈 곳이 있어 바쁘다.


신발장으로 향한다. 남편이 어디 가냐고 물은 것 같은데,

“여보, 사랑해. 다녀올게.”

라고 말하고는 집을 나선다. 현관문을 벌컥 열고 바로 출발한다. 첫째의 어린이집으로 달린다. 오늘 엄마가 데리러 가기로 했는데, 하얀 초콜릿 먹으면서 하원하기로 했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아이가 평생 기억할 것만 같다.


8분 정도 남았을까. 다리는 달리고 있지만 머리는 이성을 찾았다. 하나의 목표가 설정되었다. 남편과 딸은 눈에 담았으니, 이제 어떻게든 아들을 보아야만 한다. 평상시 빠른 걸음으로 항상 10분이 걸렸었는데, 혹시 도착하지 못할까 봐 불안하다. 선생님한테 전화라도 할 걸 그랬나 싶다가도 휴대폰을 두고 왔다. 후회할 시간이 없다. 더 빠르게 달린다.


남은 시간 6분. 오르막이다. 숨이 가쁘고 다리가 아프다. 발에 땀이 나서 언제 신었는지 모를 슬리퍼가 미끄러진다. 손으로 코를 짜서 콧물을 밀어내고 숨을 들이켠다. 라일락 향기가 맡아진다. 이 보랏빛 향기가 라일락이라는 걸 알려주지 못했는데, 그래도 이 향기를 맡으면 엄마랑 하원하던 걸 떠올릴까? 엄마가 떠올라서 마냥 좋으면 좋겠는데,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게 될까 봐 라일락이 싫어진다. 동시에 작년 봄 저녁에 했던 산책이 떠오른다. 선선한 바람에 농담을 주고받았던 남편의 웃음 섞인 얼굴이 떠오른다.


마지막 문을 나설 때, 남편한테 덕분에 행복했다는 것도 말해줄걸 아쉽다. 조금이라도 마음 편해질 말들을 더 해줄걸. 평상시에 농담으로 만약 혼자가 된다면 상대방을 잊지 못한다는 둥 그런 촌스러운 거 하지 말고, 그때가 기회니 ‘트루 러브’를 찾아 나서자고 종종 이야기했다. 남편이 그 농담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슬픔은 짧게 느끼고, 나머지 감정들로 오래오래 행복했으면 좋겠다.


이제 3분. 어린이집이 있는 아파트 단지에 도착한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아이 얼굴을 볼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 우리 가족을 다 보고 갈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정도면 정말 행복한 10분이었다고 만족한다. 그런데 이제야 부모님 생각이 난다. 이제야 떠올림에 죄송하기만 하다. 우리 엄마 아빠도 나처럼 자식들 먼저 생각날 텐데, 전화 한 통을 못 드리고 떠난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이번에도 내 마음을 알아주시기를 바라며 그간 감사했다고 얼굴을 떠올려본다.


1분. 어린이집 초인종을 누른다. 아이를 데리러 왔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문 좀 열어달라고 외친다. 숨이 넘어가는 소리에 놀란 어린이집 선생님이 문을 바로 열어주신다. 선생님 뒤로 아이가 보인다. 내 아이만 보인다. 뭔지 모르고 웃지만 당황스러워 멀뚱히 서서 다가오지 못하는 아이를 보니 미안하다. 놀라게 했다. 그래도 다가가서 아이를 꼭 안는다. 평소처럼 꼭 안으며 이야기한다.

“사랑해”


10분이 끝났다. 세상에서 내가 사라지는 건 줄 알았는데, 나만 남고 세상이 사라졌다. 후회가 남는다. 그 10분 동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말고, 아무 내색하지 말 걸. 후회를 한다. 나만 좋은 10분이었다. 남편과 아들에게 나의 마지막 모습은 처참하고 애절한 모습, 울고 있는 모습이다. 오래도록 가슴이 아플까 봐 걱정이다. 떠올리면 슬픈 존재이고 싶지 않은데, 남은 이들을 배려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기적이게도 나는 마지막으로 그들의 얼굴을 모두 보아야만 했다. 그래서 난 그렇게 나의 가장 빠른 달리기로 내 삶을 마무리했다.


글쓴일 : 2025년 4월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