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로등의 위로
하늘이 붉어지기 시작하면
하루의 무게가 해를 따라 내려앉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이상하게 힘든 날이 있다.
별일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평상시처럼 육아를 했을 뿐인데,
지칠 대로 지쳐버린 그런 날이었다.
여느 날처럼 내가 트라이크 자전거를 밀고,
남편은 아기띠에 둘러맨 채 저녁 산책을 하고 있었다.
매일 오르는 얕은 오르막길이 서럽게 느껴질 찰나 가로등이 켜졌다.
그러자 남편과 내 주변에 옅은 그림자가 두 개씩 생겨났다.
'아, 이러면 할만하지?!'
나와 남편, 그리고 각자 그림자 2개씩, 도합이 여섯이다.
우리 여섯이면 아이 둘 정도야 거뜬하다.
유치하게도, 이상하게도,
어둔 그림자에 위로를 받아버렸다.
긴긴밤, 해는 졌지만 가로등은 그 자리를 지켰다.
저녁을 먹고 산책을 나가다 보니
우리는 주로 해질녘을 배경 삼아 걷는다.
초여름 어느 날 아이가 신기한 듯 물었다.
"엄마! 엄마! 하늘이 깜깜해지고 있어요!"
매일 보던 하늘이 그날 유난히 어두웠나 보다.
"해가 검정색이 됐나 봐요!"
깜찍한 발상에 입이 벌어지고, 머릿속에는 색이 변하는 전구가 떠올랐다.
푸른 하늘은 파란 해가,
붉은 노을은 빨간 해가,
까만 밤은 검은 해가 만들어내고 있었나 보다.
"그렇네? 해가 검은색으로 변해서 하늘도 캄캄해지나 봐!"
해가 지고 있어서 하늘이 어두워진다고 말해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해가 저문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며칠 전이었다.
노을 지는 하늘에서 왠지 모르게 가을이 느껴지는 그런 날이었다.
아이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 하늘을 한참 구경했다.
"이겨라! 이겨라!"
번개맨을 응원하는 듯한 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졌다.
"누구를 응원하는 거야?"
그에게 물었다.
"해가 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응원하는 거예요!"
해가 이겨서 어두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아이를 만났다.
생각해 보면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들의 해가 정말 센 녀석이라면 움직이는 지구를 멈추고,
그가 바라는 위치의 하늘에 떠있으면 될 일이었다.
지구가 둥글다니, 자전이니, 공전이니, 동서남북 같은 것은 몰랐으면 좋겠다.
아직은, 그냥, 좀.
어쩌면 지금만이라도.
그의 응원소리에 화음을 얹었다.
"이겨라! 이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