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
해야 할 일도, 만나야 할 사람도 없는 하루.
그 공허함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받쳐주는,
그런 날이 있다.
그저 창밖을 바라보다가
아무 생각 없이 웃기도 한다.
아무렇지 않게 흘려보낸 날이
어쩌면 가장 오래 남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생 시절, 어머니가 심하게 체하신 적이 있었다.
앓아누우신 어머니는 얼굴이 노랗고, 온몸에 힘이 없었다.
손발을 따도, 활명수를 마시고, 약을 먹어도 나이질 기미가 없었다.
돌도 씹어먹을 나이였던 나는 체하는 게 뭔지 몰라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의 등을 두드리며 물었다.
"엄마, 많이 아파요? 근데 왜 약을 먹어도 안 낫는 거예요?"
아픔에 지친 그녀가 대답했다.
"나이 들면 알게 될 거야."
조여 오는 명치끝,
목 끝까지 물겅한 액체가 가득 찬듯한 울럼거림,
툭-하면 치고 올라올 것 같은 구토감,
'나 여기 있소!' 소리치는 관자놀이,
차갑고 뻣뻣한 손과 발,
절로 벌어지는 입과 새어 나가는 앓는 소리,
그것들에 지배당해 침침해진 눈과 귀,
힘없이 축 늘어지는 몸...
아이들에게 이해시키기는 험한 것이었다. 급체는 무서운 것이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아픈데도 우리를 먹이기 위해 장을 보러 가셨다.
정육점 아주머니는 어머니의 노란 얼굴을 알아보고는 장갑을 벗고 손과 등을 지압해 주었다.
그 사이 '알지... 그거 얼마나 힘든지...'의 표정이 주고받아졌다.
진정한 위로의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손과 등에 멍을 얻었지만, 그날 저녁부터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Wounded Healer, '상처 입은 치유자'
책 제목에 쓰이기도 했고, 심리/상담/정신의학 쪽에서 언급되기도 하는 이 표현은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해석한 뜻은 이랬다.
상처를 받아본 자만이 그 상처를 안다.
상처를 아는 자가 치유를 도울 수 있다.
상처 입은, 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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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이란 것도 잘 몰랐다.
조금 침체되거나 가라앉은 기분이 들면 '우울하다'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 같다.
그러다 실제를 만난 건 첫째를 낳고였다.
몸조리 차원에서 바깥바람을 쐬지 않겠다는 핑계로 문밖을 나서지 않았다.
누군가 젖은 솜이라 한 말이 맞았다.
몸이서 물이 떨어지는 것인지, 땅이 날 끌어들이는 건지 무겁고 피로했다.
눈물 기계는 'on' 해서 쏟아내기도 했고, 고장 나서 쏟아지기도 했다.
시간도 고장이 났다. 느리게도 빠르게도 움직였다.
불안했다. 아이에게 실수할까 봐, 사회에서 낙오될까 봐.
머리로는 행복하고 감사해야 한다고 입력하지만 마음이 따라오지 못해 죄책감이 들었다.
엄마로 자격미달이라는 생각, 앞으로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이 가슴을 눌렀다.
이상함을 감지한 남편이 어느 날 '산책'을 권유했다.
집 밖을 나설 자신이 없어 핑계를 대고 몇 번 거절했지만 피할 수만은 없었다.
아이를 위해 운동화를 신었다.
인적이 드문 밤, 10분쯤 걸었을까?
'나 밖을 걸어 다닐 수 있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던 내가 세상을 걸어 다닐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다시 알았다.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던 터널에서 빛을 본 순간이었다.
몇 주, 몇 달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다. 아마도 아주 얕은 수준이었을 것이다.
환경이 변해서 일 수도, 호르몬 변화일 수도, 몸이 아파서 일 수도,
아니면 그냥 일 수 있던 그것은, 많이 아팠다.
그때 생긴 내 안의 '상처 입은 치유자'는 꽤나 유용하다.
나에게는 맞춤 Healer가 되어 예방도 해주고, 보호와 치료도 해주고 있다.
비슷한 아픔에 힘들어하는 이들을 보면 마음이 쓰인다.
하지만 어쭙잖은 위로로 상처를 덧낼까 싶어 어쩔 줄 모르겠다.
그래도, 그들에게 '한 번쯤의 무심한 날'이 다시 찾아오길 바라는 마음은 진심으로 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