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세이건 『코스모스』 를 읽고

by 김공은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완독했다. 1월 1일부터 3월 23일까지 읽었으니 83일간의 대장정.


코스모스는 2018년에 민음사 온라인 패밀리데이 때 구매해두었고, 읽으려던 시도는 전부터 몇차례 있었다. 가장 기억나는 건 2020년이다. 연초에 듣게 된 이다혜 작가님의 책읽기 강연에서 완독의 기술로 'Bedtime stories'에 대해 들었는데 그게 참 인상 깊었다. 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침대 머리맡에 두꺼운 책을 두고 읽는 게 그냥 겉멋인 줄 알았는데, 본인도 실제로 그렇게 책을 읽게 된 후로 그냥 허세로 올려두고 읽는 책이 아니었구나 하셨단다. 장기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두꺼운 책들. 이런 책들은 보통 7-800쪽 되는데 종이책이라 어디 들고 다니면서 읽기도 어렵고 당장 읽어야 할 필요는 없는 책이다보니 시간을 내서 읽기도 쉽지 않다. 그런데 머리맡에 두고 한 장 한 장 읽다보면, 어디까지 읽었는지 몰라서 처음부터 다시 읽고 읽다 잠들지라도 읽기를 중단하지 않는다면 읽어지더란 말. 중간쯤 읽으면 이걸 다 읽었다고 자랑하고 싶어서라도 마저 읽게 된다는 부분은 혼자 무릎을 치며 들었다. 나도 도전해봐야겠다 싶어서 그때 집어들었던 책이 코스모스다. 상반기 안에 읽는 게 목표였고, 코로나가 도래한 시기라 충분히 가능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시간이 흘러 2023년에 <이기적 유전자>를 읽게 되었고, 연초에는 <코스모스>를 읽어봅시다!는 목표가 생겨서 이번에도 함께 읽기로 했다. 화성이었나 금성이었나 목성이었나... 어느 행성을 지날 때 위기가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이기적 유전자>에 비하면 훨씬 재밌었기 때문에 놀랍게도 읽을만하다고 생각했다.


상담 다닐 적에 들은 이야기인데 적성이나 재능은
단순히 무언가를 특출나게 잘한다가 아니라
얼마나 견딜 수 있는가를 포함한대.
내가 그 일을 하면서 힘들어도 참고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적성이고 재능이라고 하는 거래.
(구 트위터 @ Illusion_Den)


책 한 권 읽는데 무슨 적성이고 재능 이야기냐 싶겠지만 내가 좋아하지 않는 분야를 읽겠다고 버틴 건 분명히 적성이고 재능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제의 <이기적 유전자>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의 <코스모스>가 읽고 내일은 또 어떤 책이 있을지 모르는 거니까.


코스모스를 읽는 83일간, 내가 이 책을 끼고 다니는 것을 본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도 떠오른다. 다들 입을 모아 이런 두꺼운 책을 어떻게 읽냐고 했다. 나도 이 책을 한 번에 읽는 것은 아니며 장마다 북마크를 해두어 한 주에 한 장을 읽는다며 분량을 보여준 기억이 난다. 또 내가 이 책을 온전히 이해하며 읽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지만, 평소라면 접할 일 없는 분야를 멈추지않고 읽어나가는 일이 재밌다고 말했다.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던 카프카의 말 역시 도움이 되었다. 얼어붙은 바다가 깨질지는 모르겠지만 두드리다보면 금이 가지 않을까. 다시 얼어붙더라도 다시 두드리고 금이 가고 그러다 깨지기도 하는 것일 테다.


이 책에서 언급된 인물 중에 단연 인상 깊었던 건 요하네스 케플러다.


이 소리들의 화음으로 인간은 영원을 한 시간 안에 연주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적게나마 지극히 높으신 신의 환희를 맛보게 됐다. ...... 이제 나는 이 거룩한 열광의 도가니에 나 자신을 고스란히 내어맡긴다. ......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나는 펜을 들어 책을 쓴다. 나의 책을 요즘 사람들이 읽든 아니면 후세인들만이 읽든, 나는 크게 상관하지 않으련다. 단 한 사람의 독자를 만나기까지 100년을 기다린다 해도 나는 결코 서운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신께서는 당신을 증거할 이를 만나기까지 6,000년을 기다리지 않으셨던가.

(p.146)


자신의 업적을 겸손하게 내보일 성격이 아니어서 위와 같은 말로 자신의 발견을 평가했다는 점도 재밌었고,


"다수가 그른 길을 걷지 않는 한, ...... 나 역시 다수의 편에 서고 싶다. 그 까닭에 나는 가능한 한 많은 이들에게 과학을 설명해 주려고 무진 애를 쓰는 바이다."

(p.148)


라며 대중에게 과학을 설명하고 널리 전파하고자 애쓴 점도 멋있었다.


코스모스가 설명될 수 있는 실체이고 자연에는 수학적인 근본 얼개가 있다고 가르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속에 과학을 하려는 동기를 크게 불어넣었으나, 자신들의 입지를 불안하게 할 소지의 사실들이 유포되는 것을 억압하고, 과학을 소수 엘리트만의 전유물로 제한하고, 실험에 대한 혐오감을 심어 주고, 신비주의를 용인하고, 노예 사회가 안고 있던 문제들을 애써 외면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인간의 모험심에 큰 좌절감을 안겨 주고, 과학의 발전에도 어쩔 수 없는 퇴보를 불러 온 피타고라스와 플라톤과는 다른 과학자였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쓴 최초의 공상 과학 소설로 인해 어머니가 마녀 누명을 쓰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케플러는 시간을 되돌려도 그 소설을 다시 쓸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학 계산의 쳇바퀴에 저를 온종일 매어두지는 마십시오. 철학적 사색은 제가 누릴 수 있는 유일한 기쁨이오니, 제게 사색할 여유를 허락해 주십시오."

(p.148)


그는 뼛속깊이 과학자였으나 유일한 기쁨으로 철학적 사색을 꼽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분법적으로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은 나쁘고, 케플러는 선하다고 나누자는 것이 아니라 <코스모스>를 초독한 기준에서는 그렇게 느꼈을 뿐이다.


케플러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내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11장에 있다. 칼 세이건은 이 장에서 발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금속 활자가 발명된 시기를 언급하는데 1450년경이라고 한다. 나는 의아함을 느끼며 각주로 시선을 내렸다.


금속 활자의 발명에 관한 서양인들의 주장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쉽게 '분노'한다. 우리 민족이 활자를 발명한 것은 이보다 두 세기나 앞선 1234년이었다. 인쇄 및 제책 기술에 관한 언급에 고려의 금속 활자 발명이 빠지는 것을 볼 때마다, 무엇이든 발명 못지않게 그것을 키우고 가꿔 꽃피우는 일 또한 중요함을 실감하게 된다. 애석하게도 세이건과 같은 박식한 학자에게도 우리의 금속 활자에 관한 정보에 접근할 길은 막혀 있었던 모양이다. ㅡ옮긴이

(p.559)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 칼 세이건도 모르는 게 있다. 그의 주장에 분노했으나 정확한 사실을 차분하게 설명하는 옮긴이의 힘에 감탄했던 부분이다. 나는 이 부분마저 코스모스라는 생각을 했다. 많은 것을 알지만 금속 활자의 발명 연도는 잘 몰랐던 칼 세이건과 부연 설명으로 그의 주장을 바로 잡아주는 옮긴이와 44년이 흐른 뒤에야 이 책을 읽는 나. <코스모스> 책 덕분에 모인 코스모스의 일부, 별의 자녀들이 아닐까.


<코스모스>를 완독한 힘으로 내일은 다른 벽돌책을 시작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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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만해도 금박이 멀쩡한 편이었다 완독하고 장마다 끼워두었던 북마크를 해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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