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스트 라이브즈』 각본집을 읽고

by 김공은


<패스트 라이브즈> 각본집을 읽었다. 연필로 그린듯한 표지가 눈을 사로 잡았고, 영화에서 좋아한 엔딩 장면이 각본에서 어떻게 쓰였을지 궁금했다.


지난 3월 <패스트 라이브즈>를 관람하게 된 이유는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채널에 셀린 송 감독님이 출연한 영상 덕분이었다. 감독님의 경험 중에 영화의 오프닝 신처럼 한국에서 자신을 보러 온 한국인 친구와 미국인 남편을 사이에서 통역하는 상황이 있었단다. 부인의 어린 시절을 궁금해하는 남편과 셀린 송이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고 묻는 친구 사이에서 어느 순간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와 함께 술을 먹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 시간 속에서 다른 두 문화 뿐만이 아닌 본인의 역사와 정체성을 해석하게 된 것이다. 여기까지의 이야기도 너무 흥미진진했는데, 바에서 그 상황을 지켜보던 제3자의 시선이 느껴졌다는 지점에서 팝콘각을 잡았다. 그 제3자와 눈을 마주쳤는데 우리 세 사람이 어떤 관계인지 너무 궁금해하더라는 것이다. 아주 한국사람, 뉴욕에 사는 한국사람 그리고 백인. 다들 궁금해하는 가운데 감독님은 이렇게 생각했다.

옆에서 봐서는 우리가 무슨 사이인지 절대 모를걸~?ㅎㅎ

그리고 또 생각했다. 우리의 관계를 이런 관계라고 설명해 준다면 어떨까?

노라를 연기한 그레타 리는 잘 몰랐지만, 왼쪽에 앉은 유태오와 오른쪽에 앉은 존 마가로는 좀 봤다고 익숙해서 그런지 그 스틸컷이 너무 흥미진진했다.


그렇게 영업당해서 간 <패스트 라이브즈>는 기대이상으로 재밌었다. 일단 노라를 연기한 그레타 리 배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고, 영어 못하는 연기하는 유태오가 재밌었고 <퍼스트 카우>에서 한 번 봤을 뿐인데 이 영화로 다시 만날 줄 몰랐던 존 마가로를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건 좀 과몰입인데 퍼스트 카우가 19세기 서부 배경이었기 때문에 그가 뉴욕에 있다는 점이 싱숭생숭했다) 정확히는 존 마가로가 연기하는 아서에 흥미가 갔다. 부인의 첫사랑 등장에 질투하고 초조해하는 면보다 부인이 잠꼬대는 한국어로만 한다고, 내가 이해 못하는 말로 꿈을 꿀 때마다 마음속에 내가 못 가는 장소가 있다는 생각에 불안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남편인 점이 흥미로웠다. 노라는 잠꼬대를 두고 그냥 헛소리일 거라고 치부하는데, 그 헛소리도 궁금해하는 남편이라니 판타지 아니냐고. 존 마가로의 부인 역시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비하인드를 듣고 가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제일 반가웠던 부분은 나의 명은이 아니, 문승아 배우다. 작년 한국영화 중 최애로 꼽았던 <비밀의 언덕>에서 명은을 연기한 문승아 배우가 노라의 어린 시절 나영으로 등장한다. 포털사이트 프로필은 여전히 어린 모습인데 훌쩍 자란 걸 보니 역시 남의 집 애는 빨리 크고... 또 어떤 영화에서 만날지 기대된다.


다시 각본집으로 돌아가서, 이 영화의 엔딩 장면을 읽는다. 인연이 연인을 만드는 것은 아니듯 이별이 곧 작별인 것은 아니구나 싶었다. 멀어졌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내내 멀어지지 못했던 그리움.


EXT. 나영이네 동네, 평촌 - 90년대 후반, 거의 새벽

둘이 함께 자란 고향, 둘 다 열두 살이던 그때로 돌아갔다.

나영이 어릴 때 살던 아파트 건물 앞에서 열두 살의 나영과 해성이 잠시 서로를 바라본다.

둘이 처음 작별 인사를 나눌 때와 완전히 똑같다.

하지만 한참 전 한국에선, 방과 후 오후에 작별 인사를 했지만, 지금은 불가사의하게도 부드러운 늦은 밤 불빛 아래 서 있다.

마치 이 아이들이 바로 이 장소에서 24년을 기다렸고, 이제서야 진정으로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EXT. 이스트빌리지 거리 - 새벽 5시가 다 된 시간

해성 : 나영아.

나영 : 응?

해성 : 이것도 전생이라면, 우리의 다음 생에선 벌써 서로에게 다른 인연인 게 아닐까? 그때 우리는 누구일까?

나영 : 모르겠어.

해성 : 나도.

해성, 미소 짓는다.

해성 : 그때 보자.


그 새벽, 이스트빌리지 거리에서 노라는 뉴욕을 떠나는 해성과 작별하는 동시에 해성과 함께했던 그 시절과 작별했다. 안녕.

나는 엔딩크레딧을 보며 해성이 했던 인사를 떠올렸다. 그때 보자. 지금은 멀어진 나의 시절인연에게 이렇게 말했으면 덜 씁쓸했을까. 해성과 노라를 보며 작별할 수 있다는 건 그에게도 나에게도 고마운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보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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