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읽고

by 김공은


황석영 작가의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를 완독했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걸 어떻게 읽지 싶어 까마득 했는데 완독한 뒤에는 이걸 어떻게 쓰지 하는 아득한 마음으로 노트 앱을 열었다.


소설은 공장 굴뚝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해고 노동자 이진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애정하는 프로그램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를 떠올리며 나는 굴뚝 위에서 과거로 시간을 돌려 어릴 적 살던 샛말의 큰길에 들어서는 이진오를 상상한다. 진오의 이야기는 진오의 아버지 지산의 이야기로 흘렀다가, 큰할아버지 백만의 이야기에 가닿는다.

제목이 철도원 '삼대'였기 때문에 나는 막연히 남자들만의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건 나의 편견임을 깨달았다. <철도원 삼대>에서 축이 되는 인물들은 이백만과 그의 아들 이일철, 이이철 그리고 일철의 아들 이지산과 지산의 아들 진오이기는 하나, 나는 이 소설에서 이백만의 여동생 이막음을 비롯해 백만의 아내 주안댁, 일철의 아내 신금이, 이철의 아내 한여옥, 지산의 아내 윤복례까지 여성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들었다.

특히 초반부 주안댁의 이야기는 몇번이고 다시 읽을 정도로 흥미진진했다. 아버지의 말마따나 어미 없이 자란 불쌍한 년이지만 이날 여태까지 속 한번 안 썩이고 살림도 야무지게 잘해왔다는 주안댁은 이어지는 이야기마다 위인전을 읽는 기분이었다. 물난리통에 사람은 물론이고 떠내려가던 돼지까지 끌어올리고, 출근했다가 돌아오지 못한 남편을 구하러 갔다는 이야기라든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음에도 집안의 위기와 경사가 있을 적마다 나타난다는 주안댁의 이야기는 이 책을 읽는 데 큰 원동력이 되었다. 그런 올케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즐거워 보였던 막음이 고모와 타고난 기운으로 시어머니를 종종 마주했던 신금이의 이야기 속 주안댁의 이야기를 하나라도 놓칠새라 620쪽을 읽는 내내 애썼던 기억이 난다.


한반도에서 대륙으로 이어지던 철도는 식민지 근대와 제국주의의 상징물이기도 했다. 세계의 근대는 철도 개척의 역사로 시작되었다. 나는 식민지 시기부터 분단된 후기 자본주의 세계화체제의 한반도에서 지난 백여년 동안 살아온 노동자들의 꿈이 어떻게 변형되고 일그러져왔는지 살펴보고 싶었다. 노동자의 계급의식은 감춰지거나 사라졌지만 그들의 삶의 조건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p.616 작가의 말 중에서)


식민지 시기부터 시작되는 이야기인지라 같은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종종 떠올랐다. 아버지의 생업이던 양돈을 물려받아 돼지를 도축하여 고기를 내다 팔던 일철의 친구 최달영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애정하는 드라마 <경성스캔들> 속 이강구가 생각났다. 그도 어린 시절부터 지긋지긋하게 겪어온 가난과 멸시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본의 권력에 기대어 스스로 처세의 방식을 일궈 온 남자였는데, 불순한 세력의 소탕에 진심이었던 나머지 일본 놈 보다 더하다는 소리를 듣는 인물이었다. 그만큼 두터워지는 자신의 입지에 스스로 만족하는 모습까지 최달영과 이강구는 닮은 점이 많았다. 이번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당시에 '밀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자세히 알게 되어 흥미로웠다. 독립운동에 대해 다루는 작품들에서 밀정 활동을 하는 캐릭터들이 어떻게 밀정이 되었는지 계기가 그려지곤 하지만 이렇게 치밀하게 밀정을 만들어냈을 줄이야.


"이철이를 잡아다 죽게 만든 게 자네 아니었나?"

"어어, 그건 말하자면 길고 복잡한 얘기 아닌가? 자네가 특급열차를 몰았듯이 나두 생계를 위해 경찰 일을 한 거라구. 그때에 두쇠가 전향하고 자네처럼 생업을 가지고 조용히 살았으면 별일 없었을 거야."

(p.554)


자신의 밀정 짓을 합리화하는 부분에서 그는 뼛속까지 친일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야 그런 짓을 하고도 발 뻗고 자는 것인가 싶었다. 혀를 내두르며 책장을 넘겼다.


"누나가 그랬잖우. 1970년대의 전태일 선배와 세기가 지난 2003년의 주익이 형의 유서가 여전히 똑같은 한국사회라고."

"그건 맞잖아?"

이진오는 신금이 할머니에게 물었듯이 누나에게 물었다.

"그런데 우린 왜 이걸 계속해야 되는 거요?"


노동운동을 한 사람이 비단 전태일만 있는 것은 아닌데, 그의 이야기를 음악극과 책과 애니메이션으로 챙겨봤던 탓일까 나는 전태일이 언급될 때마다 그의 이야기 앞에서 멈춰선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태일의 외침은 2003년의 주익이 형의 유서에서 메아리쳤고, 2024년 노동자의 외침 속에서도 여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오가 굴뚝 위에서 사백일을 넘길 수 있었던 이유는 예전에 진오의 물음에 답을 해주었던 금이 할머니의 이야기 덕분일 것이다.


"일제시대에는 그랬다 치고, 왜 우리 식구들은 힘센 쪽에 붙지 못하고 맨날 지는 쪽에만 편들었어요?"

"왜, 약한 쪽 편드는 게 싫으냐?"

"물론이지요. 너무 손해잖아요?"

그러면 할머니는 감실감실 주름살 잡힌 눈을 더욱 가늘게 뜨고 웃으면서 말했다.

"그때는 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긴 했지만."

그리고 신금이는 말했다.

"오래 살다보면 알 수 있단다. 서로 겉으로 내색을 안 할 뿐이지 속으론 다들 알구 있거든."

-철도원 삼대 p.564


나는 금이 할머니의 이 말이 황석영 작가가 이 글을 써내려간 기둥이 되었다고 어림짐작했는데, 작가의 말을 보니 나의 어림짐작이 맞았다.


방대한 우주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살던 시대와 삶의 흔적은 몇점 먼지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세상은 느리게 아주 천천히 변화해갈 것이지만 좀더 나아지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고 싶지는 않다.

(p.617 작가의 말 중에서)


삼대에 걸친 이야기이다보니 등장인물도 워낙 많고 이야기의 배경 역시 길어서 어떤 인물에, 어느 시대에 이입해서 읽느냐에 따라 감상이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애정하는 인물들은 막음이 고모와 주안댁과 신금이와 한여옥으로 이어지는 여성들이었지만 아픈 손가락은 한쇠, 일철이었다. 그는 유곽에서 만난 여성 동포를 보고 이철이 외치는 민족해방이 이런 사람들에게까지 새로운 삶을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인지 상상한다. 충실한 일제의 신민으로 살아가며 그들의 손발이 되어 철도 직무를 수행했고, 아우의 항일활동을 소극적으로 돕는 시늉이나 하면서 스스로를 달랬다고 자책하던 일철. 해방된 나라에서는 이전처럼 살지는 않겠다고 작심한 그가 디딘 길은 이철이 걸어온 길과 다르지만 결코 다르지 않은 길이었다고 느꼈다. 일철이 작심한 이후 아우의 동지 김근식을 만나게 되는데, 둘은 이런 대화를 나눈다.


"아우의 활동 내막은 해방이 되고서야 주위에서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이 왜정 때와 다름없다고들 하더군요."

일철의 말에 김근식은 고개를 저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는 수백만의 인민대중이 있지 않습니까? 얼마나 이러한 혼란이 계속될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죽고 없어진 뒤에라도 새로운 사회는 오게 되겠지요."

김근식은 잔기침을 계속하고 있었다. 나중에 일철은 그가 전쟁 직전에 오랫동안 시달려온 결핵으로 지하활동 중에 숨졌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김근식은 빙긋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가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세상은 우리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진 않고 늘 미흡하거나 다른 모양으로 변하는 게 아닌가. 그것도 시간이 무척 오래 지나서야 그러더군요. 장구한 세월에 비하면 우리는 먼지 같은 흔적에 지나지 않아요."

(p.584-585)


김근식의 말마따나 장구한 세월에 비하면 우리는 먼지 같은 흔적에 지나지 않음에도 항일운동과 노동운동을 해온 과거의 모든 이들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며, 지금도 어딘가에서 노동운동을 하고 있을 또다른 이진오의 건투를 빈다. 너무 느려서 답답하긴 하지만 결국은 약한 이들이 이기게 되어 있다는 금이 할머니의 말을 꼭꼭 되새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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