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공은 Jan 13. 2023

예술하는 습관과 작가의 방

두 권에 공통된 예술가의 습관과 작가의 공간에 대하여

『리추얼』을 쓴 메이슨 커리의 또 다른 책 『예술하는 습관』을 읽었다. 쓰고 싶은 기분이 나든 안나든 매일 글을 쓰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 소설가(옥타비아 버틀러), 어렸을 때부터 시달린 환각과 환청 때문에 제 발로 정신병원에 입원한 예술가(쿠사마 야요이), 계절별로 '유니폼'을 입는 현대미술 작가(안드레아 지텔)등 위대한 창조의 순간을 만든 구체적인 하루는 예술가의 수만큼이나 다양했다. 

그런 예술가들의 기록을 읽고 있으면 예술가 저마다가 하루를 보냈을 공간이 궁금해지곤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런 책도 출간 되었기에 챙겨 읽어보았다. 알렉스 존슨이 쓰고 제임스 오시스가 그린 『작가의 방』이라는 책이다.


두 권의 책에 공통되게 등장하는 예술가를 중심으로 예술하는 습관과 작가의 방에 대해 이야기 해본다. 먼저, 자기만의 방을 이야기했던 버지니아 울프다.


"좋은 날도, 나쁜 날도 있지만 계속 글을 쓴다." 울프는 1936년에 자신의 일기에 이렇게 적었다. "나처럼 글쓰기로 고통 받는 사람은 거의 없을 수도 있다. 아마 그런 사람은 플로베르 밖에 없을 거다." 울프는 플로베르처럼 규칙적이고 질서 정연한 집필 습관을 유지했다. 거의 평생 동안 아침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매일 글을 썼다. 진행 상황을 매일 일기에 기록했고, 생산적으로 일하지 못한 날에는 자신을 채찍질했다.

(메이슨 커리, 예술하는 습관 p.167)  

  

울프가 매일 글을 쓴 공간은 이스트서식주에 있는 몽크하우스였다. 소설 《올랜도》의 성공으로 글 쓰는 공간을 증축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곳이 점점 침실로 변하자, 결국 정원에 있는 오두막에서 글을 쓰게 되었다. 울프의 남편은 그가 "주식중매인처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오두막 집필실로 출근한다고 말했다.  

    

울프의 오두막 집필실 창문 너머로는 서식스 언덕과 캐번산이 보였습니다. 오두막 앞에서는 서식스 언덕을 배경으로 친구들이나 가족들과 론볼스 경기를 볼 수 있도록 벽돌로 앉을 자리를 만들어 놨죠.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면서 독일 전투기들이 집 상공을 낮게 날아다녔습니다. 울프가 "폭탄 때문에 내 오두막 창문이 흔들렸다"라고 쓴 것은 《자기만의 방》에서 언급한 위험한 환경에 사는 여성을 그대로 보여 주는 셈이었습니다. 그는 이 오두막에서 《댈러웨이 부인》《파도》《막간》을 집필했습니다.

(알렉스 존슨 글/ 제임스 오시스 그림, 작가의 방 p.27)  


울프의 오두막을 그림으로나마 보고 있으니, 울프에게 닥쳤던 전쟁의 그림자가 내게도 보이는 것만 같았다.   


울프와 달리 에밀리 디킨슨의 집필 과정에 관한 설명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알려진 디킨슨의 집필 과정이 있다면 디킨슨이 대체로 식구들 모두가 잠든 밤에 편지와 시를 썼다는 것 정도. 반면 디킨슨이 집필한 그녀의 방에 대한 기록은 잘 남아있다. 1830년 매사추세츠주 애머스트에서 태어나 거의 평생 집을 떠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홈스테드'라고 알려진 이 집은 이제 그를 기념하는 박물관이 되었다.

   

이유가 무엇이었든 디킨슨이 은둔 생활에 만족한 것은 사실이다. 디킨슨은 독서와 글쓰기, 다양한 서신들에 집중할 수 있는 풍요롭고도 사적인 세계를 즐겼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매일 가족들과 소통하며 지냈고, 집안일을 도왔다.

(메이슨 커리, 예술하는 습관 p.248)


박물관은 방문객을 대상으로 디킨슨의 침실에서 두 시간 동안 혼자 글을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누구나 위대한 시인의 침실에서 글을 쓰는 기분을 직접 느껴 보도록 말이다. '혼자'에 방점이 찍힌 프로그램의 운영 취지가 인상 깊다.

  

『여름』과 『이선 프롬』을 쓴 이디스 워튼의 집필 습관 중 인상 깊었던 점은 아침마다 종이에 글을 써서 바닥에 던져놓으면 비서가 수거해 가서 타자를 쳤다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워튼의 곁을 지키는 '그 순간의 개'의 존재.


여기서 '그 순간의 개'는 워튼이 평생 동안 길렀던 많은 개들 중 한 마리를 말한다. 그중에는 스피츠, 파피용, 푸들, 페키니즈, 미미와 미자라는 털이 긴 치와와 한 쌍이 있었다. 이 개들은 워튼에게 어린 시절부터 큰 위안이 되었다. 워튼은 말년에 자신의 '인생을 지배했던 열정' 목록을 만들었는데 그 목록에서 개들이 '정의와 질서' 다음으로 2위를 차지했다. 그다음으로는 책과 꽃, 건축, 여행, 좋은 농담이 있었다.

(메이슨 커리, 예술하는 습관 p.390)


워튼은 반려견들 덕분에 힘든 결혼 생활과 이혼, 신경 쇠약 등 인생의 여러 고난을 이겨 낼 수 있었다고 했어요. 집에 반려견 묘지까지 만든 것을 보면 그가 반려견들을 얼마나 아꼈는지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알렉스 존슨 글/ 제임스 오시스 그림, 작가의 방 p.81)

 

워튼의 방, 그중에서도 편히 있을 수 있고 글을 쓸 때 어느 누구의 방해도 받을 필요가 없는 '침대'를 집필 공간으로 택한 데에는 사랑하는 반려동물과 가까이 있으려고 한 워튼의 마음이 깃들었던 것이 아닐까.

      

『예술하는 습관』에는 샬럿 브론테의 이야기만 나오지만, 『작가의 방』에는 샬럿과 함께 글을 썼던 자매 에밀리와 앤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 ‘브론테 자매’의 이야기를 덧붙여본다.

 

"샬럿은 자신이 현실을 묘사했다는 느낌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자매들의 평가에 솔깃해서 작품을 수정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그럼에도 낭독은 그 효과가 무척 좋아서 모두의 호기심을 이끌어냈고, 덕분에 브론테 자매들은 매일 되풀이되는 괴로운 걱정거리의 압박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개스켈은 이렇게 썼다.

(메이슨 커리, 예술하는 습관 p.275)


자매들은 매일 밤 11시까지 식탁 주변을 서성이며 작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에밀리와 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샬럿은 홀로 이 의식을 이어 나갔습니다. 그의 집에서 일하던 마사 브라운은 이렇게 말했어요. "브론테 양이 혼자서 거닌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샬럿은 자매들뿐 아니라 작가실 동료들까지 함께 잃은 것이었죠.

(알렉스 존슨 글/ 제임스 오시스 그림, 작가의 방 p.228)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즐거움이 두 배, 세 배였으나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혼자로 남은 샬럿에게 외로움은 두 배, 세 배가 되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쓰였다. 낭독이 즐거웠던 이유는 에밀리와 앤이 함께였기 때문이었을 테니까.


최근 뮤지컬 <웨이스티드>를 통해 무대 위에 구현한 브론테 자매의 작업실을 보았다. 마호가니 식탁도 보았고, 글을 쓰고 보관했던 문구함도 보았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샬럿의 『제인 에어』와 에밀리의 『폭풍의 언덕』을 읽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에밀리 디킨슨 이야기를 이 글에 옮기다보니 그의 삶을 다룬 영화 <조용한 열정>이 떠올랐다. 잘은 모르지만 디킨슨이 살던 집 자체가 박물관으로 남았으니 영화에서 이를 잘 구현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뮤지컬 무대와 영화 속 미술도 좋지만, 사진만한 게 없다 싶은 사람에게는 질 크레멘츠의 『작가의 책상』을 권한다. 포토저널리스트이자 작가들의 초상사진가인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들의 책상을 흑백사진으로 농밀하게 담아냈는데, 그 사진들이 담긴 에세이다. 지금은 품절되어서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밖에 없는데 그 책이 다시 읽고 싶어진 시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김연수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을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