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 그리고 소설
'어거스트 풀먼(어기)'이라는 소년이 있다. 남들과는 다른 생김새 때문에 그를 보는 주변 사람들의 표정은 매번 심상치 않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27번의 수술을 받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첫 학교생활을 시작한 그에게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까?
평범하고 싶지만 평범하지 않은 시선 속에 사는 한 소년의 이야기, <원더>의 소설을 먼저 보고 영화를 보았는데 한 가지 공통적으로 느낀 게 있었다. 원작 소설과 영화가 주는 느낌은 달랐음에도 감동이 있었다는 점이다.
주인공 어기가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하지만 이 감동은 어기가 자신의 삶을 극복하는 과정에서만 오는 게 아니라 그의 주변 사람들과 함께하는 순간에서도 온다. 이것은 어기만이 홀로 주는 감정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어기가 주변 사람들에게 전하는 감정에서 우리와 감동이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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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함은 강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의 올바른 사용에 있다. 자신만의 매력으로, 그의 힘이 모두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자가 가장 위대한 사람이다.'
이야기의 마지막 종업식에서 교장 선생님이 위인 비처의 말을 인용한 구절이다. 처음에는 많은 친구들이 어기를 좋아하지 못했음에도 그가 가지고 있는 무언가가 아이들을 변화시켰고 마지막엔 모두가 함께할 수 있게 된 결과를 가져왔다. 동정의 형태가 아니라 어기의 진짜 모습을 본 아이들의 진정한 '변화'이다.
어기가 자신의 모습에, 주변의 시선에 기죽지 않고 자신만의 매력을 잃지 않은 것이 나 또한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어기의 가족들이 그에게 말했던 것처럼 어기는 '기적(Wonder)' 그 자체다. 비록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상처를 받을 때도 있었지만 자신을 잃지 않은 그의 모습 자체 또한 우리에게 감동을 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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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야기 속에서 모두가 그를 좋아하지 못한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까지도 말이다. 어기의 첫 학교생활 1년은 무사히 끝났지만 앞으로도 괜찮을 거라는 보장이 없다. 여전히 어기의 삶에 악당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시작점의 끝에서 어기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했다는 건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실제로도 어기와 같은 사람이 이런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원더를 통해 기적을 보았으니 이제는 우리가 기적을 실천할 차례이다.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려고 노력하라, 친절한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친절을 베풀어야만 합니다. 특별히 이 말, 이 개념을 좋아하는 까닭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여유가 있어서 친절을 베푸는 게 아니라, 친절을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 <원더>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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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는 태양이다. 엄마와 아빠, 그리고 나는 태양의 궤도를 도는 행성들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태양의 궤도를 돌며 행성 주위를 떠다니는 소행성과 혜성들이다… 나는 이 은하계의 움직임에 익숙해져 있다. 그것이 내 인생의 전부였기 때문에 한 번도 껄끄럽게 여겨 본 적이 없다 ….'
어기라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던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 특히 어기의 누나 올리비아(비아)의 이야기는 나의 마음에 가장 와 닿았다. 가족들과 친척들이 어기에게만 신경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았고 그런 상황에서 비아는 자신 또한 짐이 되고 싶지 않았기에 늘 어른 아이처럼 행동했다. 그녀도 이제 고등학생이 된 '아이'일 뿐임에도 말이다.
어기가 중학생이 되어 적응하기 힘들어할 때 비아 또한 같은 상황이었다. 오래된 친구 미란다와의 사이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란다와의 갈등도 어기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었음이 얼마나 다행인가. <원더>의 영화와 책 속에서 보이는 구성이 서로 다른 인물의 서사를 풀어 나가는 듯이 보여도 결국은 어기에게 이어지는 모습 또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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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 소설 그리고 영화. 둘 중 어느 것을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나는 당연히 소설이라고 말한다. 사실 어느 작품에서나 해당되는 말이다. 나는 이제껏 소설만큼 뛰어난 영화를 본 적이 없다.(메이즈 러너, 골든 슬럼버…) 그만큼 소설에서는 인물들의 감정과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까지 다룰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소설을 끊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강점도 분명히 있겠지만 소설을 영화화할 때에는 얼마나 소설에 가깝게(→ 이야기의 메시지를 흐리지 않고) 표현할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더> 역시 그렇다. 원작 소설을 보고 영화를 본 나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몇 가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는 철저하게 소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소설 안에서 다루어진 모든 이야기, 인물들의 감정을 영화로 표현하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영화가 우리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지 못한 건 아쉽지만 그럼에도 감동을 줌으로써 이야기의 메시지를 흐리지 않았다면 그걸로 만족할 법하다. 우리가 눈물 없이 볼 수 있는 진정한 감동이 <원더> 여기에 있다.
소설과 영화의 차이, 어쩌면 공평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책과 영화에는 우리가 투자할 수 있는 시간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만약 소설보다 영화가 더 재밌게 된다면 소설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하지 않을까? 혹시 영화에서 감동을 느끼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소설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어기가 1년 동안 경험한 첫 학교생활을 2시간으로 압축시키기에는 너무 짧을만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