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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로 멍 때리기

유아기 '통합되지 않은 상태'로 내려가기

나는 7월 마지막주를 코로나 증상을 앓는 것으로 보내고, 8월 1일 격리가 끝났다.

코로나가 처음 느껴졌을 때,  이것이 코로나일 지 모르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벼운 몸살 기운과 함께 왔으니까.

바로 전날 아들이 코로나에 걸려서, 보건소로 가서 검사를 받았으나 그 검사에서는 음성으로 나왔다. 

결과가 나온 바로 그날 저녁부터 몸에 몸살기운으로 코로나가 찾아왔다.

다음 날 아침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양성' 판정이 나왔다.

아내도 양성판정을 받아 결국 온 가족이 코로나 증상을 겪어야 했다. 

판정을 받자 몸이 가라앉으면서 잠으로 일관했다. 

약 2.5일을 잠만 잔 것 같다. 4시간 자고 화장실 갔다가 다시 누우면 잠이 즉시로 왔다. 

2.5일간은 밥을 먹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2.5일을 자고 나니, 허리가 아팠다. 

그래서 바닥에 엎드려 팔을 얼굴을 향해 접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고, 좌우로 계속 굴렀다.

계속 몸을 굴리다 보니 허리 아픈 것이 많이 사라졌다. 

코로나 걸리고 약 5일 후에 몸의 느낌이 달랐다.

몸이 예전보다 좋게 회복되었고, 얼굴은 더 젊어졌다. 

격리가 끝나고 나서도 몸은 계속 좋았고,  커피와 초코파이 중독도 벗었다.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를 생각해 봤다.

누군가 암이 왔을 때, 독감을 크게 앓고 나서 몸이 많이 회복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 암환자는 감기가 찾아 오면 크게 환영해야 한단다.

감기를 잘 앓음으로써 면역력이 회복되는 것이다.

그것은 나의 슈퍼비젼 임상사례에서도 확인되었다.

어떤 청소년이 도박 중독, 게임 중독으로 상담을 받으러 왔다.

어느 날 독감을 한 주간 동안 앓고 난 후 다음 상담에 왔을 때는 그 청소년은 말이나 태도가 달라져 있음을 슈퍼비젼 보고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상담자에게 '이 청소년이 갑자기 달라진 것을 못 느꼈느냐?' 물었다. 

사실이 그랬다. 

독감을 앓은 후  그 청소년의 몸의 상태가 달져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일시적이긴 하지만, 이 청소년은 당분간 도박이나 게임에도 별 관심을 안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상담자의 말을 들어보니, 그 예견은 맞았고, 그 이후에 도박 중독, 게임 중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예전 같지 않았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통찰이 필요하다. 

코로나를 앓고 회복하는 기간 동안에 내 몸에서는 중요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왜 몸을 크게 앓고 나서 몸 자체가 회복되는 느낌을 받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 원인을 나는 아동 정신분석학자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에게서 찾고자 한다. 


                         일차적 모성 몰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있다면, 위니캇의 정신분석학에 의하면 바로 탄생 후 첫 1년이라고 말할 수 있다.  

생애 첫 1년 동안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많은 일이 일어나지만, 오늘은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 머물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갓난아기는 온종일 거의 잠만 잔다. 엄마는 아기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다. 

아기가 울면 그 울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젖을 달라는 것인지, 기저귀를 갈아달라는 것인지, 건강한 엄마는 이미 알고 있다.

첫 6개월 동안 엄마는 아기의 상태에 몰두해 있기 때문에 엄마는 아기의 마음을 잘 안다.

이 기간 동안에는 엄마와 아기는 정신과 신체적으로 하나가 되어 있다. 

그래서 아기는 엄마에게 여러가지 신호를 보내면서 끊임없이 자기 상태를 알린다.

위니캇은 아기에 대한 엄마의 이런 상태를  '일차적 모성몰두'라고 부른다. 

말하자면, 산모는 아기를 낳기 몇주전부터 세상과의 관계를 끊고 아기에게만 집중하기 시작한다. 

일차적 모성몰두는 이렇게 시작하여, 출산 후 3~4개월 동안 계속 유지된다. 

이 시기에는 엄마가 아기의 요구를 100% 들어줘야 마땅하다.

                                            적절한 좌절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엄마는 아기의 요구에 조금씩 실패하기 시작한다. 

아기가 무거워져서 계속 안거나 업고 다닐 수가 없어, 엄마는 아기를 바닥에 놓고 자기 일을 하는 경우가 잦아진다. 

그래서 아기는 조금씩 좌절을 겪게 된다. 그것은 급격한 좌절이어서는 안 되며, 적절한 좌절, 즉 아기 스스로 감당해 낼 수 있는 좌절이어야 한다. 이러한 좌절이 있음으로써, 아기는 엄마가 모든 것을 해 줄 것에 대해 포기하게 되고, 엄마가 실패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스스로 해야 되는구나' 하여 그때부터 아기는 정신작용을 시작한다. 

왜 이런 좌절을 줘야 하는가에 대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

9개월이 되면, 젖떼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기 입장에서 볼 때, 젖떼기는 매우 과격하게 급작스럽게 당하는 것일 수 있다.

이러한 사태에서도 아기가 충격을 받지 않도록 6개월 시기부터 미리 '적절한 좌절'을 경험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 머물기

아기가 엄마의 품 안에 안겨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 원하는 만큼(대개 1년 전후) 충분히 머물 수 있다는 것은 아기가 마땅히 누려야 할 특권이다. 엄마가 얼마나 아기를 이 상태로 잘 품어 줄 수 있느냐 없느냐는 향후 그 사람의 삶의 질을 좌우한다. 

첫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아기는 엄마의 품만 있으면 되는 상태를 충분히 누려야 한다.

밖에서 전쟁이 나건, 데모를 하건, 폭우가 쏟아지건, 아기는 엄마의 따뜻한 품만 있으면 된다. 

아기는 아직 현실을 알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이 기간 중에 아기는 엄마의 품 안에서 중요한 작업을 한다. 

곧 느슨하게 연결된 상태에서 태어난 몸과 정신을 확실하게 연결하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몸과 정신간의 협응력이 얼마나 잘 이루어졌느냐가 향후의 삶의 질과 관련된다. 

몸과 정신 간에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면, 그 사이에 온갖 불편한 일들이 발생하여 앞으로 나아가야 할 인생에 발목을 잡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최소한 첫 1년은 아기는 아무 생각없이 엄마 품에 머물 수 있어야 한다. 

엄마가 불안하거나 우울하면, 또는 분노에 가득 차 있으면 그것은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몸과 정신 사이에 끼여 들어 나중에 그 아이의 삶이 되어 나타난다.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 머무른다는 것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수 많은 세월 동안 사용하게 될 인생 모판(matrix)를 만든다는 뜻이다.

아기는 엄마의 품에서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 머물면서,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삶의 형식과 내용들을 1세의 수준에 맞게 만들어간다.

아기는 이때 존재의 깊은 심연으로 내려간다. 

존재의 깊은 심연이란 결국 엄마의 존재와 겹쳐 있는 부분으로서, 엄마의 존재 깊이에 의존하여 아기 자신의 존재 깊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어머니가 지금까지 경험해 왔던 천국과 지옥을 아기는 바로 이 시기에 딮-러닝하는 것이다. 

아기는 여기에 삶의 에너지, 생명력, 각종 영감, 정신활동 요소 등을 축적해 둔다. 

엄마의 품 안에서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 머물게 됨으로써, 아기는 엄마로부터 충전을 받게 된다. 

사람이 일을 하다가 지치면 휴가를 받아서 혼자 만의 공간으로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이때 나만의 공간에서 현실과 동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면서, '통합되지 않은 상태'로 내려 가야 한다.

이때 앞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게 된다. 


                       코로나와 멍 때리기

나의 코로나 체험이 바로 그랬다. 

2.5일 동안 나는 아기처럼 잠만 자야 했다. 

자고 또 자고, 자고 나면 또 잠에 불려가서 또 자고를 반복했다.

2.5일을 푹 자고 나니까, 몸에 원기가 돌았다.

그 과정에서 약먹기를 최소화하였다.

몸 자체가 회복될 수 있도록...

또 어떤 사람은 코로나를 앓고 나서 체력이 떨어져서 힘이 없다고 한다.

관점의 차이일 수 있겠다.

코로나를 이렇게 견뎌 냄으로써 유아기의 통합되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가 정신과 신체간의 협응력을 끌어 올리는 계기로 삼느냐, 아니면 바이러스 침투를 당해 몸이 망가졌다고 생각하느냐

이런 관점의 차이 말이다. 

코로나 덕분에 일주일 동안 모처럼의 '멍 때리는 시간'을 가졌다.

'잠 멍', '뒹굴기 멍', '멍하니 누워 천장만 바라보는 멍' 

코로나를 앓으면서 화장실을 갈 때마다 '애기 똥'을 누는 것은 나만의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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