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태어나면 배가 불룩하다. 태중에서 모든 영양분을 탯줄을 통해 배로 공급되었기 때문이다. 아기의 에너지는 배에 모여 있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아기의 에너지는 내장에 모여 있다.
아기는 내장에 모여 있는 에너지를 온몸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이것이 아기에게는 중요한 과제가 된다. 어떻게 하면 내장에 몰린 에너지를 온몸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가?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엄마의 따뜻한 품이다.
엄마가 아기에게 따뜻한 품을 제공하면, 내장에서 가장 멀리 있는 아기 피부와 맞닿게 되어 있다. 아기의 피부는 엄마가 주는 에너지를 받으면서 피부가 활성화되면서 내장에 있는 에너지를 피부로 끌어낼 것이다.
영국의 아동정신분석학자이자 소아정신과 의사인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피부를 경계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아기 탄생 후 첫 1년의 중요한 과제는 아기가 피부를 경계로 하여 '나의 것'과 '나의 것이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은 피부를 존재 한계로 삼아 하나의 개체적 존재로 안전하게 살아간다.
이를 위해 엄마는 첫 1년 동안 심혈을 기울여 아기를 품어줘야 한다. 물리적으로 풍성한 품을 제공할 뿐 아니라, 공감적으로 따뜻한 품을 제공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엄마와 아기 사이에는 감각 발달이 일어난다.
미각 발달을 보자. 아기는 엄마가 제공해주는 젖 맛은 엄마에게서만 맛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다른 맛과 구별한다. 만일 심청이처럼 엄마가 없어 젖어미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젖동냥이라도 하게 되면, 아기의 미각 발달에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후각 발달은, 엄마만의 고유한 냄새가 있다. 엄마의 냄새는 세상 어느 누구, 어떤 사물과도 구별되는 냄새이다. 엄마의 냄새는 세상의 모든 냄새와 구별해 내는 척도가 된다.
청각 발달. 청각 역시 엄마만의 고유한 목소리, 엄마만이 일으킬 수 있는 소리가 있다. 설거지하면서 내는 소리도 엄마가 설거지하는 소리와 다른 사람이 설거지하는 소리를 구별해 낸다.
촉각 발달. 아기는 엄마의 살결을 알고 있다. 엄마와의 살과 살의 접촉을 통한 촉각 발달은 다른 어떤 감각발달보다 우선한다. 일반적으로 여러 감각 중에 가장 우세한 감각으로는 촉각이 손꼽힌다.
시각발달. 아기는 첫 6개월 동안에는 엄마와 눈을 잘 맞출 수가 없다. 아기의 관심은 엄마의 젖가슴일 뿐 엄마의 눈을 맞춰 초점을 잘 모을 수 있는 상태는 아니다. 6개월이 지나서야 아기는 비로소 엄마의 눈을 맞출 수 있다. 6개월 이전에는 엄마의 부분만 볼 수 있었지만, 엄마의 눈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되면서 엄마의 전체를 볼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아기는 엄마를 통한 감각발달을 성취해 가면서 내장에 몰려 있던 에너지는 온몸으로 퍼지게 된다. 그리하여 에너지는 내장에서 피부에 이르기까지 신체 전반으로 골고루 퍼지게 된다.
그 결과 몸과 정신 사이에 협응력이 이루어져 상호 통전이 잘 되는 상태가 된다. 정신은 신체의 모든 세포에 들어가 있게 된다. 몸과 정신이 잘 결합한 사람이면 그는 생생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이와 반대의 현상을 경험한다. 대표적으로 우울증에 걸리면 에너지는 거꾸로 회수된다.
피부를 만져도 내 피부 같지가 않다. 화장을 해도 화장이 잘 안 받는다. 손톱은 윤기를 상실했고 퍼석해지면서 손톱 끝이 각화 되어 툭툭 부러진다.
에너지가 피부에서 회수되어 내장으로 철수하는 중인 것이다.
왜 내장은 피부의 에너지를 철수하는가?
어느 순간 손에서 아귀힘이 빠지면서, 젓가락질이 어려워진다. 자신이 걷고 있다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걷는 동안 자신의 발을 바라봐도 발이 걷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든다. 몸이 붕 떠서 다니는 느낌을 받는다. 그것은 몸이 정신을 놓아 버릴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피부 세포마다 들어 있던 정신이 철수하여 차츰차츰 내장을 향해 에너지 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피부 세포에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일상생활 또는 조직생활 중에 타인과의 관계를 철수하거나, 타인과 경계를 잘 세우지 못하는 경우이다. 이 경우는 공격성이 현저히 떨어질 때 발생한다. 그리하여 타인의 의도에 의해 내 의견이 쉽게 포기되거나, 방어하지 못하여 나 자신을 그들에게 내어주는 일이 일어난다.
둘째, 내장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이다. 내장이라는 것은 먹은 것을 소화하는 기관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내장에서 온갖 감정이나 호르몬이 나온다. 전문가에 따라 수치가 달라지기는 하지만, 내장에서 감정의 90~80%가 나온다고 한다. 오래전에 정신의학자 이시영 박사가 지은 유명한 책이 있다. [배짱으로 삽시다]라는 책이다. 그 책에서, 이시영 박사는 <배짱>이란, guts 즉 내장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배짱은 창자, 내장의 힘에서 나오는 것이다. 내장의 힘이 빈약해지고, 감정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면, 내장의 빈약함을 에너지로 채우기 위해 내장 밖의 에너지를 끌어당기게 된다. 그래서 그 끌어당김은 피부에까지 미칠 수 있다.
첫째의 것이든, 둘째의 것이든 피부에서 에너지를 철수해 내장으로 들어가면, 그 증상은 우울증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울증을 이러한 메커니즘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지만, 그런 에너지의 회수 내지 퇴행은 우울증 뿐 아니라, 각종 질병을 유발한다. 에너지의 역류로 인해 그 사람의 유전자적으로 취약한 부분을 증상으로 드러낼 수 있다.
한마디로, 정신이 신체에서 빠져나오는 것, 신체가 정신을 붙들어 매지 못하게 됨으로써 각종 질병에 노출될 수 있다.
건강염려증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은 것이다.
50대 초반의 어떤 여성은 피부에서 에너지가 철수되니 근육의 힘도 빠진다. 그래서 젓가락질도 어려워졌다. 길을 잘 걸어가다가 갑자기 걷는 것을 잊어버려 어떻게 걸어야 할지 혼돈이 온다. 그 순간 헛발을 내딛게 된다. 계단을 내려가는 중에 그런 생각이 들면 걷기를 멈춰야 한다. 무의식적인 걸음을 잊어버리는 순간이 오면, 의식으로 걸어야 한다. '오른발을 내딛고, 그다음에 왼발을 내밀어야지'라고 의식을 해야 한다.
그녀는 손도 아귀힘이 빠진다. 자칫 파킨슨씨 병이 아닌가 의심이 들어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야 되겠다고 생각한다. 이상한 것이 한 가지 더 있는데, 자기 전에 마치 술 취한 것처럼 되었다가 잠이 들면 잠 주사를 하는 통에 잠이 깬다. 잠이 드는 순간 뭔가 중얼거리고, 뭐라 뭐라 하다가 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