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기초 이미지>
갓 태어난 아기가 가장 먼저 하는 행동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중 아기가 중요한 가치를 두고 하는 행동은 당연히 엄마의 젖을 빠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아기라면 누구나 하는 행동이다.
이때 아기는 젖만 빠는 것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고 동시에 엄마를 확인하면서 자신을 조금씩 인식해 간다.
아기가 자기를 인식해 간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기 인식과는 많이 다르다.
엄마의 젖을 빨면서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있든지, 아니면 미움을 받고 있든지 아기는 그 사랑과 미움의 정도를 자기 몸에 기록해 둔다.
엄마는 아기에게 젖을 물리면서 아무 생각 없이, 또는 귀찮아하면서 줄 수도 있고, 어떤 엄마는 젖을 잘 안 줄수도 있다.
이때 아기는 엄마에 대해 '내게 젖을 잘 안 줬다'라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엄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라고 기억한다.
반대로 엄마가 아기에게 젖을 잘 줄 뿐 아니라, 젖 먹는 아기를 보면서 뿌듯해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공감적으로 품어주면, 아기는 엄마에 대해 '엄마는 나를 사랑한다'라고 기억한다.
일차적 자기애(나밖에 모르는 자기사랑)의 시작
아기는 엄마의 젖을 빨면서, 엄마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아기는 먹고 싶은 만큼 엄마 젖을 마구 빨아댄다.
그때 건강한 엄마는 아기가 원하는 대로 적응해 준다.
아기가 울면. 온 가족이 달겨, 들어서,
"얘가 뭘 원하는 거지?"
하며, 아이의 요구를 잘 들어줘야 한다.
아기는 지금 생존을 위해 '나 밖에 모르는 상황'을 만들어내는데, 그때 온 가족이 적응해 줘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아기는 그 집안의 주인공이 된다.
'내가 주인공이라'는 느낌을 받는 경험이 계속되면서, 아기는 이 과정에서 <일차적 자기애>를 조금씩 채워나간다.
아기가 젖을 먹으면서 눈치 보게 만들면...
모성애가 부족한 어떤 엄마는 이렇게 마구잡이로 자신의 젖을 빨아대는 아기를 귀찮아 한다.
아기가 젖을 달라고 울 때마다 짜증을 내는 엄마가 있다.
젖을 주면서도 자기 분에 못 이겨, '나를 아프게 한다'며 아기를 때리는 엄마도 있다.
이렇게 모성애가 부족한 엄마의 젖을 빨면서 이런 일이 반복되면 아기는 엄마 사랑의 부재를 몸에 기록한다.
이렇게 되면 아기는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다.
첫째, 아기의 몸은 생생함을 잃어버린다.
아기의 몸짓은 얼마나 생생한가?
그 생생함은 다른 어느 시기에도 재연할 수 없다.
아기의 몸의 생생함을 보는 엄마도 생생해진다.
유아기에 엄마가 공감적으로 제공하는 젖을 많이 먹은 사람은 성인이 되어도 몸이 생생하다.
이런 사람은 몸이 빠릿빠릿하고,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생각하는 대로 몸이 알아서 움직여 줘서 실천력이 높다.
유아기에 몸의 생생함을 잃어버린 사람은 몸이 게으르다.
그런 사람은 생각만 많고 몸을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사람의 주변은 늘 지저분하고 심한 경우 온 집이 쓰레기 통이다.
둘째, 아기의 공격성이 억압된다.
아기가 엄마의 눈치를 살피게 되면서 공격성이 억압된다.
그러면 아기는 <착한 아이>가 된다.
부모는 아기가 착해지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아기는 생존과 관련된 요구를 하지 못하게 되면서 엄마가 원하는 <착함>으로 간다는 사실을
엄마는 알아야 한다.
이런 아이는 성인이 되어도 자기주장을 하지 못하게 되고, 남의 눈치를 보면서 타자 앞에서 <착함>의
허울을 쓴다.
그 결과 남이 시키는 대로만 할 뿐, 스스로 알아서 한다거나 창의성을 발휘하기 힘들다.
셋째, 아기가 젖을 마음껏 먹지 못하거나, 엄마가 젖을 주되 공감적 마인드가 없으면 아기는 자신의 몸에
관한 <기초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어려움을 겪거나 지연된다.
프랑수와즈 돌토에 의하면, <기초 이미지>라는 것은 기본적인 존재와 관련된다.
즉 아기가 몸에 대한 <기초 이미지>를 만들어내야 정상적인 한 존재로서 살아갈 수 있다.
아기는 불안 덩어리를 안고 태어났지만, 엄마의 따뜻한 품과 공감적인 젖을 제공받음으로써 차츰 불안에서
벗어나, 한 존재로서 몸에 대한 <기초 이미지>를 가지게 된다.
즉, 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데 필요한, 몸에 대한 기본적인 심리적 구조를 획득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아기가 엄마의 젖을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 상황, 눈치를 보면서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아기는
자신의 몸에 대해 집중하는 자기애를 챙기지 못하게 되면서 <기초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기초 이미지와 관련된 장기들, 그리고 천식과 심근경색
생존의 문제가 걸려 있는 몸의 <기초 이미지>는 사람의 가장 기본적인 정서라고 할 수 있는 <정동 affect>와 관련된다.
사람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정동이 작동하는 데 어려움이 있으면, 살아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사람들은 그런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 그 사람은 affect가 없다"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있는 사람이 바로 그런 affect가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돌토에 의하면, 아기가 기초 이미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장기들을 참여하게 만든다.
기초 이미지와 연결된 장기는 간장, 비장, 심장, 폐, 신장이다.
그중에도 가장 직접적으로 관련된 장기는 폐와 심장이다.
폐와 심장은 생명본능과 죽음본능이 중첩되어 있다.
즉 인간의 생존과 관련된 가장 직접적인 관계에 있는 장기가 바로 '심장'과 '폐'다.
5분만 숨을 못 쉬거나, 심장이 펌프질을 멈추면 사람은 죽는다.
나머지 장기도 생명본능과 죽음본능이 중첩되어 있기는 하지만, 그 장기에 문제가 생긴다 하더라도 심장이나 폐만큼 직접적이지는 않다.
간장의 경우, 침묵의 장기라고 하지 않는가?
간은 병이 진행되어도 치명적인 상황에 도달하기까지 병식을 가지기 어려운 장기다.
그렇지만 나머지 장기도 생명과 죽음이 중첩되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들 장기는 모두 불수의근이다.
그것들은 의지에 의해 작동되는 근육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특히 폐와 심장은 죽음충동과 생명충동 간의 거리가 짧기 때문에 죽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열심히, 자동적으로 펌프질을 해야 한다.
엄마의 품이 불안정하거나 젖을 잘 먹이지 않거나, 아기가 엄마의 눈치를 살피면서 젖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몸에 대한 <기초 이미지>에 문제가 발생한다.
태어날 때부터 있어 온 불안은 몸의 <기초 이미지>를 확고하게 가지게 될 때 해소된다.
그렇게 되면, 아기는 더 이상 숨 쉬는 일이나 심장이 뛰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무의식이 알아서 실행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있다.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그 사람은 언젠가 바로 해당 장기의 문제로 고통받게 된다.
심장과 폐의 작용에 대해 무의식이 알아서 하도록 무관심해지지 못하는 상황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천식이 그렇고, 심근 경색증이 그렇다.
이들 병은 유아기의 불안을 가져온다.
그냥 무의식에게 알아서 하도록 맡길 수가 없다.
늘 의식해야만 한다.
이러한 상태가 되면, affect가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는 존재 동일성이 흔들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