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이미지, 그리고 장발장의 빵

몸의 <기능 이미지>

<몸의 기초 이미지>


갓 태어난 아기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엄청난 불안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에 놓인다.


"이렇게 불안한 줄 알았으면 나오지 말걸..."


이렇게 후회할 수도 없다.

아기가 갖는 불안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먼저 '출생 외상'에서 오는 불안이 있다.

그리고 엄마의 자궁에서 분리되어 나오면서 가지게 되는 불안, 즉 분리 불안이 있다.

박해 불안은 외부 상황에서 오는 불안이다.

아직 눈의 기능이 뚜렷하지 않아 주변을 살펴볼 수는 없지만, 주변에 배치되어 사물,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

처음 보는 이 모든 것들이 나를 향해 어떻게 공격할지 모르는 불안, 소위 '박해 불안'이라 부른다.

생소한 것들에 의해 내가 박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다음에는 '멸절 불안'이 있다.

'멸절 불안'이란, '나'라는 존재가 어느 순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다.

유아는 이런 여러 가지 불안들을 안고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숨을 쉬고, 엄마의 젖을 빨아댄다.

자궁 안에 있을 때의 안전함과 따뜻함을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엄마의 품뿐이다.

적어도 몸에 대한 <기초 이미지>의 형성은 최소한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

몸에 대한 <기초 이미지>와 관련된 장기인 폐, 심장, 간장, 비장, 신장 등은 엄마의 공감적인 젖 수유와 엄마의 따뜻한 품을 제공받으면서 불안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게 된다.

그때부터 숨 쉬는 것을 의식하지 않아도 무의식적으로 호흡을 하고, 심장 박동이 저절로 돌아간다.

저절로 돌아가니 불안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기초 이미지가 생긴다고 해서 모든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위에서 언급한 장기의 작동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의 불안은 해소되는 것이다.


몸의 <기능적 이미지>와 '주체 항진성'


몸에 대한 <기초 이미지>는 존재의 욕구와 관련된다면, <기능적 이미지>는 존재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

두 가지 이미지는 모두 프랑수아즈 돌토가 유아의 정서 발달 이해를 위해 제시하는 개념들이다.

욕구는 본능을 채워주면 되는 것이다.

식욕과 관련된 배고픔은 먹으면 해소되는 욕구이다.

수면욕도 충분히 자고 나면 해소되는 것이다.

이처럼 욕구는 신체와 직접 관련된다.


그런데 욕망은 정신적인 것이다.

욕망은 일차적 자기애, 근본적 나르시시즘과 연결된다.

욕구는 '나'라는 존재의 본능적인 면만 잘 챙기면 되는 것이지만, 욕망이라는 용어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뿐 아니라 타자로의 확장이 필요하다.

자기애가 '나'와 '타자'를 연결하는 매개가 될 때, 놓쳐서는 안 되는 개념이 있다.

돌토는 둘 사이 매개적 개념으로 <주체 항진성>을 제시한다.

욕망은 궁극적으로 타자를 욕망하게 되는데, 타자를 건강하게 욕망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주체 항진성>이다.

<주체 항진성>이란, 사람이 타자와의 관계를 욕망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기애를 먼저 채워야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성경의 교훈에서도 강조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 22:39)


는 구절에 <주체항진성>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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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네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네 몸을 사랑하는 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유아기야 말로, <주체 항진성>을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기회의 기간이다.

오직 몸에 대한 <기초 이미지>와 <기능적 이미지>를 형성하면서 '나 밖에 모르는' 자기애를 채우는 데에 엄마 아빠는 철저하게 적응해 줘야 한다.

젖을 먹을 때, 젖꼭지가 아프든 말든 엄마 사정을 봐주지 않고 마구 빨아대는 아기의 노력에 대해 엄마는 완벽하게 허용해 줘야 한다.

유아의 이런 노력에 대해 엄마는 오히려 칭찬해 주고, 공감해 줘야 하는 것이다.

사람이 일차적 자기애를 채우고자 하는 이유는, 그 자기 사랑을 가지고 이웃(타자)을 사랑하고 싶어서다.


윤리와 도덕의 분화


나를 사랑하는 '자기애'가 타자를 욕망하는 것으로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윤리와 도덕이 분화되는 지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자기애를 채우는 것은 윤리의 문제라면, 타자를 욕망하는 것은 도덕의 문제이다.

철학자들 중에도 윤리와 도덕을 구별하지 않고 혼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지만, 나는 이 둘을 분명하게 구별한다.


독일 국민은 다른 민족과 달리 매우 도덕적이다.

독일인들은 민족 우수성을 자랑할 때 높은 도덕성을 꼽는다.

심지어 나치치하의 독일군인들도 도덕성이 매우 높았다.

히틀러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수많은 유대인을 죽이면서 그 시체에서 금이빨을 수거해서 상부에 올리라는 지시를 내린 적이 있다.

이탈리아 인들 같으면 그런 금이빨은 상부에 올라가기 전에 밑에서 착복이 일어나서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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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독일은 다르다.

상부의 지시대로 수용소 시체에서 수거된 유대인의 금이빨은 하나도 빠짐없이 상부에 올라갔다.

그만큼 그들은 도덕적이었다.

그렇지만 나치 독일군에게 부족한 것은 바로 윤리의식이었다.

유대인도 엄연히 존엄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죽이는 데에 독일군인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을 가지지 않았다.

벌레 같은 유대인을 죽이는 것은 독일 사회 전체가 합의된 높은 도덕 수준에서 행해진 일이었다.

그렇지만 한 개인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보면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비인간적 행위이다.

쉰들러는 그 반대의 인물이었다.

쉰들러는 도덕적으로 매우 부패한 사업가였지만, 유대인들이 죽어가는 것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윤리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쉰들러가 타락한 독일장교에게 뇌물을 주며 매수하는 비도덕적 행위를 통해 유대인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하고자 하는 윤리적 행위를 감행한 일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까지 감동을 선사하고 있다.


장발장의 훔친 빵에 담긴 도덕과 윤리의 문제


돌토가 말하는 몸에 대한 <기능적 이미지>와 관련된 장기는 위장, 소장, 대장, 십이지장 같은 소화기관이다.

특히 위장은 우리의 욕망의 좌표가 분명한 표식을 가지는 핵심적인 장기이다.

인간의 욕망의 희로애락이 집중적으로 좌표 찍기를 하는 장소가 바로 위장이다.

물론 위장을 몸의 <기능적 이미지>가 아닌 <기초적 이미지>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것은 바로 거식증과 폭식증이다.

이 두 증상 안에는 생명본능과 죽음본능이 중첩되어 있다.

이런 경우를 제외하면 몸의 <기능적 이미지>는 욕망과 관계된다.

사람이 타자에 대한 욕망을 건강하게 가지게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애'가 채워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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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위고의 [장발장]을 살펴보자.

장발장은 굶주리는 일곱 조카들을 위해 빵 하나를 훔친 대가로 19년의 감옥살이를 한다.

장발장이 훔친 행위는 분명히 법에 저촉되는 범죄행위이며, 그것은 법과 도덕의 차원에서 규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장발장이 법을 어겨서라도 자신과 일곱 조카의 배를 채우겠다고 감행한 도둑질은 윤리적으로 거룩한 행위이다.

우리는 분명 타락한 인간이지만 우리의 몸은 거룩한 성전과도 같다고 생각한다면, 장발장은 사회적 도덕과 법을 어겨서라도 내 성전을 지켜야 하는 윤리적 요구에 순응한 것이다.

만일 장발장이 빵을 훔치는 대신 일곱 명의 조카들이 죽게 내 버려둔다면 그는 윤리적으로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장발장은 사회 법에 저촉된 범죄를 저지른 결과 19년 감옥살이를 하였다.

그는 마리엘 신부의 호의를 눈물겹도록 경험한 후, 사랑에 눈을 뜨면서 타자를 욕망하는 경건한 자리에 서게 된다.

장발장은 마들렌이라는 새 이름을 가지고 사업을 하여 큰돈을 벌어 선행을 행하다가 어느 날 마차에 깔린 어느 노인을 구하면서 그 일이 계기가 되어 시장이 되어 출세 가도를 달리게 된다.

어떤가?

[장발장]에 담긴 메시지는, 사람은 자기애를 채운 후에야 비로소 타자를 욕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기애를 채우는 일은 윤리의 일이라면, 타자를 욕망하는 일은 도덕의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윤리와 도덕은 나 안에서 통합되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잘 통합해 가기 위해서는 유아기에 엄마가 제공하는 따뜻한 품을 경험하면서, 몸에 대한 <기능적 이미지>를 건강하게 형성해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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