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성애화 이미지(1)
성(性)의 개념 확장
'섹시'한 피아노 연주
요즘 젊은이들의 언어생활을 살펴보면, 그들은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단어를 줄여서 쓰기도 하지만, 기존 단어의 개념을 달리 사용하거나 기존의 의미를 확장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단어의 개념을 확장한 대표적인 경우가, '섹시하다'는 표현이다.
이때 '섹시함'은 성적인 표현을 넘어서서 사용하는 경우가 나타난다.
누군가가 옷을 멋떨어지게 입었을 때, '아주 섹시한데?'라고 표현하면, 그것은 성적 매력을 잘 드러냈다는 의미도 되지만, 그 사람의 몸매와 옷이 매치가 잘 되었다는 의미로도 통한다.
어떤 사람은 친구에게 커피를 직접 갈아서 내려주니 첫 한 모금을 흡입한 후, 그가 하는 말,
"커피 맛이 아주 쉑시한데?"
라며 감탄했다.
내가 파악한 '섹시함'이란, 사람이나 사물이 자체 기능 또는 관계성을 효과적으로 잘 드러내어 누군가의 감탄을 이끌어낼 때 나올 수 있는 표현인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임윤찬이나 조성진은 각자 다른 맛을 보여주면서 각자 연주의 섹시함을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겠다.
성(性)이란 무엇인가?
특히 조선시대에 성(性)이란 말은 매우 폭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성리학(性理學)이 바로 그랬다.
조선은 성리학을 통치이념을 받아들였다.
성리학의 사상적 면모의 규모를 보면, 오늘날 다수결의 원칙을 근간으로 하는 민주주의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스케일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국회처럼 다수만 확보하면 민심이 어떠하든 해괴망측한 법안들을 만들어내어 별의 별짓을 다하면서도 부끄러움 한 점 없이 당당하기까지 해도 된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다수결이 절대적 가치를 부여해 주기 때문이다.
최근 최민식법(공교롭게도 나의 이름과 똑같다)이 발효되면서, 아이들 중에는 지나가는 자동차에 일부러 부딪혀 용돈을 벌어보겠다는 놀이를 실행하는 무리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상식적인 부모라면 아무리 법이 그렇다고 해도 그런 놀이를 하는 자식을 훈계하고 꾸짖어야 할 텐데 오히려 자녀와 합세하여 운전자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일들이 잦아지고 있다고 한다.
일종의 인륜을 어긴 법이라 해도 다수결로 통과한 법이기 때문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법안에 다수결로 통과되었다 할지라도 조선시대라면 정치인들은 천륜을 벗어난 이런 법을 가만히 둘리가 없을 것이다.
조선시대의 정치인들은 나라를 운영하면서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성리학을 근간으로 우주의 원리에 합치하는 지를 먼저 논했다.
성리학은 이기론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理)는 우주를 이루는 것이 무엇인가를 다루는 것이었고, 기(氣)는 우주가 돌아가는 운행 원리를 다루는 것이었다.
성리학에서 성(性)은 사물의 본성, 우주의 본성, 마음의 본성, 에너지의 본성을 의미한다.
이에 비하면 오늘날 현대 한국인이 생각하는 성(性)은 Sex 내지는 Gender 정도의 범주에 그친다.
그것은 성의 범주 중 극히 일부에 해당된다.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보면 명사는 반드시 성(性)을 가지고 있다.
남성 명사, 여성 명사, 어중간하면 중성 명사 등이 그것이다.
남성과 여성의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은 단순히 성적 관계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누구나 알 것이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인간으로서의 본성이라는 대전제가 있다.
그 아래 범주에서 남성의 본성과 여성의 본성이 있다.
그리고 결혼이라는 또 다른 제도적 본성이 있으며, 부부간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인들의 이합집산의 과정과 결과가 얼마나 남성과 여성의 본성을 초월하는 일이 발생하는지, 결혼한 사람이라면 다 안다.
성질(性質) - 성격(性格) - 성품(性品)
성질의 시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나는 유학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성리학의 리(理)의 관점에서 사람의 마음의 상태를 논할 수 있다.
나는 성리학을 잘 모르지만, 성리학적 관점을 잠시 취해보고자 한다.
그 관점으로 볼 때, 성질과 성격 그리고 성품은 우리 마음의 발달과정을 보여주는 개념이다.
1970년대나 1980년대 초반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성질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만원 버스에서 이 사람 저 사람 부딪기다 보면 싸움이 자주 일어난다.
"왜 남의 발을 밟고 난리야?"
"미안합니다"
"미안하면 다야?"
"미안하다 사과했으면 됐지 그럼 날더러 어떡하란 말이야?"
그다음부터는 멱살을 잡고 몸싸움이 시작된다.
불과 몇 십 년 전, 우리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
그 시대는 정말이지 성질의 시대였다.
성격의 시대
'성격'의 격(格)은 자리, 위치라는 의미이다.
우리 사회가 '성'으로 '격'을 따지게 된 것은 1990년대부터 2020년까지로 보면 좋을 듯하다.
국가 경제적으로 보면, 우리나라는 중진국으로 성장해 오다가1996년에 OECD에 가입하게 되었다.
성격의 시대에는 내가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발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에는, 상대방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손오공은 성격 장애자이자, 분노조절장애자이다.
그래서 자기 본연의 위치에서 벗어나 엉뚱한 짓을 하여 많은 사고를 친다.
그럴 때마다 삼장법사는 주문을 외워 긴고아(머리띠)가 손오공의 머리를 죄어 고통받게 했다.
손오공이 자기 위치를 벗어날 때마다 삼장법사는 이런 고통을 주면서 뉘우치게 만들었다.
세상에는 수평적으로 대등한 위치도 있지만, 수직적으로 불평등한 위치도 엄연히 존재한다.
학교에는 스승의 위치와 제자의 위치가 다르다.
가정에서도 부모의 자리가 있고, 자녀의 자리가 있다.
이 관계는 평등할 수 없으며, 불평등하다.
그렇다고 불공평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갈등이 있으면 싸울 수도 있다.
아무리 격렬하게 싸워도 누가 봐도 '저 싸움은 부모-자식 간의 싸움이구나'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여성 청년 내담자가 엄마와 싸운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 싸움이 도를 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 청년에게 물었다.
그 싸움이 '누가 봐도 엄마와 딸의 싸움이구나' 하는 느낌을 줄 수 있느냐는 질문을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제가 엄마한테 마구잡이로 싸운 것 같거든요."
내가 보기에 그 청년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엄마로서의 자존감까지 무너뜨렸기 때문에 자신의 억울함이 엄마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결과를 낳았던 것이다.
나는 청년에게 '그 싸움은 잘못된 싸움이다'라는 점을 분명하게 말했고, 그녀는 이를 받아들이며 반성의 기회로 삼았다.
성격의 시대에 사는 사람은 각자의 합당한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 살아야 한다.
그래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된다.
성격 차원에서 필요한 것은 '에티켓'이다.
에티켓(etiquette)이란, 서로 간에 합당한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성품의 시대
성격 다음에는 성품의 차원이 있다.
2022년 대한민국이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의 선진국 그룹으로 진출했다. UNCTAD 설립 이래 개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가 변경된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선진국의 시민은 마땅히 지켜야 할 격이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선진국의 시민으로 자신이 누리는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혜택에 걸맞은 품위를 지켜야 한다.
격을 지키기 위해 에티켓이 필요했다면, 성품의 시대를 사는 사람은 매너(manner)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에티켓은 상대방의 격에 맞춰 지키면 되는 예의범절로서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나 매너는 이런 에티켓과는 다르다.
매너는 상대방이 내게 어떤 태도를 취하든 관계없이 나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나만의 매너가 필요한 것이다.
지하철 타고 가는 중에 누군가가 내 발을 밟았다면, 품위를 갖춘 사람이면 내가 먼저
"아이코,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무리 무례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예 시비를 걸어오는 일이 없게 된다.
그 결과 발을 밟은 사람은 더 미안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상황이 발생하면, 인과 관계를 따지기 전에 나의 품위를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그것은 이미 품위를 갖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도로에서 흔히 발생하는 자동차 충돌 사고를 보면 시대적 변화가 확연하게 느껴진다.
성격의 시대만 해도 성질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았다.
자동차 사고가 나서 자기 성질대로 사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속설을 신봉하여 무조건 소리 지르며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자동차 사고가 나도 서로를 배려하며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 혜택을 입고 사는 선진국 시민의 면모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누가 더 잘못했나를 따지기 보다 보험회사를 불러 그들이 상황정리해 줄 때까지 얌전하게 기다린다.
품위 있는 사람은 자신의 형편도 살피겠지만, 그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어떤 문제가 발생했는가를 살피며 서로 배려하며 이미 발생한 상황이 합리적으로 정리되어 가기를 바랄 것이다.
물론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이렇게 되기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세계에서 유일하게 선진국에 진입한 저력을 가진 시민으로서 성품의 시대를 맞아 품위 있는 삶을 살기를 소망하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졌으면 좋겠다.
유럽 같으면 스위스와 같이 6만 불 시대가 도래했을 때 나타나는 성품의 시대가 우리에게는 3만 불 시대에 성큼 도래했다.
성품의 시대에 우리는 남 탓 하지 않고, 남 눈치 보지 않으면서,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사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성품의 시대에도 여전히 성질 시대 사람처럼 자기 성질대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정치인들이다.
정치인만큼은 성질의 시대에 살건, 성격의 시대에 살건, 성품의 시대가 도래하건 상관없이 정치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여전히 유치하고 천박하기 짝이 없다.
사회가 고도로 분화되어 가는 시대를 살면서 많은 문제들을 만날 수 있는데, 수학의 차원을 들어 비유하자면, 미적분으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을 가감승제의 산수실력으로 해결하려는 미성숙함을 그대로 보이는 사람들이 바로 오늘날 정치인들이다.
국민은 사회가 발달하는 만큼 성장해 가는 성숙한 정치인을 보고 싶지만, 정치인들 중에는 아직도 어른이 없다.
그것은 어느 정권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여당 야당이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정치인의 의식 수준은 국민의 평균 수준은 되어서 최소한 성격의 시대 정도는 반영해 줘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성품을 발휘해야 할 시대에 자기 성질대로 사는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무리들이 정치인 부류다.
품위 있는 정치를 해 달라고 국민들이 달아준 배지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걸어준 것만큼 어울리지 않는 꼴값이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