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대한 성애화 이미지(2)

감각의 성애화

프랑수와즈 돌토는 갓 태어난 아기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몸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갓 태어난 아기의 몸의 상태는 '산산조각 나 있는 상태', '모래알과 같은 상태', '파편화된 상태' 등과 같이 여러 가지로 표현된다.

아기 몸은 이와 같이 처음부터 분열되어 있다.

정신이 분열되었다는 것은 생애 처음 신체가 분열된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파편화된 몸 상태의 정서는 '불안' 그 자체일 수밖에 없다.

의지할 곳 없이 몸이 파편화된 상태라면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 불안을 담아주기 위해 엄마의 따뜻한 품이 제공되어야 한다.

만일 엄마가 아기를 따뜻하게 품어 주지 못하면, 불안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 불안은 엄마가 제공하는 공감적인 품을 통해 해소된다.

엄마는 아기의 불안을 지켜주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존재이다.


몸에 대한 성애적 이미지


아기는 엄마가 제공해 주는 공감적인 품을 통해 파편화되었던 몸을 하나의 몸으로 만든다.

아기는 몸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한데, 세 가지 이미지로 발전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몸의 기초적 이미지

둘째, 몸의 기능 이미지

셋째, 몸에 대한 성애적 이미지


아기는 엄마 품 안에서 이 세 가지 이미지를 만드는 과정을 거치면서 궁극적으로 하나의 <몸 이미지>를 창조해 낼 수 있다.


첫째와 둘째는 앞의 글에서 어느 정도 설명되었다.

이 글은 <몸에 대한 성애적 이미지>라는 제목의 두 번째 글이다.


바로 앞의 글에서 나는 성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그래서 나는 성애화라고 해서 꼭 성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몸에 대한 기초적 이미지는 간장, 심장, 비장, 폐, 신장과 연결되어 있다면,

몸에 대한 기능 이미지는 위장, 소장, 대장 등과 같은 소화기관과 연결된다.

몸에 대한 성애적 이미지는 위장과 관련된 입, 대장과 관련된 항문이, 그리고 각 감각기관이 추가된다.

성애적 이미지는 쾌감과 불쾌감이라는 두 가지 척도기준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입과 항문이 추가됨으로써, 신체의 외부에서 작동하고 있는 각각의 감각의 성애화로 확장된다.


감각의 성애화


감각의 성애화란 입과 항문을 포함한 각 감각기관이 그 자체의 기능이 원활하게 잘 작동하고 기관의 목적에 맞게 잘 활동하는 것을 말한다.

각 감각기관이 가지고 있는 자체 기능이 주어진 본성을 잘 발휘하는 것을 말한다.


입의 성애화는 먹고 빠는 기능을 잘 발달시킬 것이다.

청각의 성애화를 통해 주변에 들리는 많은 소리 중 엄마만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나머지 소리를 백색소음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갖춰간다.

촉각의 성애화는 엄마의 살을 만지는 쾌감, 또는 엄마에 의해 자신의 살이 만져지는 쾌감으로 나타난다.

촉각을 통해 성적인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손으로 뭔가를 확인하고자 하고 인식으로 연결시킬 때 느끼는 쾌감도 있다.

아기가 뜨거운 난로를 만졌을 때 오는 느낌은 성애적 만족의 반대의 느낌에서 오는 불쾌감이다.

아기는 후각을 통해 엄마만의 고유한 냄새를 맡으면서, 세상 속에서 엄마를 구분하여 엄마만의 관계적 배타성을 확보한다.

코의 성애화는 엄마의 몸에서 맡을 수 있는 냄새, 엄마의 옷에 묻어 있는 엄마의 냄새 등을 통해 엄마의 존재 연속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엄마가 직장에 나가느라 외할머니나 아빠가 대신 키워야 할 때, 반드시 아기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공간 내에 엄마의 냄새가 묻어 있는 옷가지 등이 있어야 한다.

미각의 성애화는 엄마의 젖맛을 구별하면서 구체화된다.

젖병 수유는 엄마의 고유한 젖맛과 멀어지면서 그만큼 미각의 성애화에서도 멀어지게 만든다.


감각 성애화를 통한 성적 코드화


독일어에서 우주에 속한 모든 명사가 남성명사와 여성명사, 또는 중성 명사로 구별되듯이, 감각이 성애화된다는 것은 신체를 성적 코드화 작업이 진행된다는 뜻이다.

감각이 성적 코드화 되어야 하는 이유는, 감각은 남성미는 작용여성 끌어당기는 작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밀고 당기는 힘이 작용하면서 쾌감과 불쾌감이라는 감정을 만들어 낸다.

남자는 힘으로 밀면서 쾌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여자는 끌어당기면서 쾌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래서 플라톤이 말했듯이, 남자는 사랑하는 자로, 여자는 사랑받는 자로 상호 균형을 잡는다.

감각이 성적 코드화를 진행하면서, 남자의 감각과 여자의 감각이 구별된다.

그리하여 세계도 둘로 나눠지게 된다.

남자의 세계와 여자의 세계.

똑같은 세상을 살아가지만, 남자가 보는 세계와 여자가 보는 세계는 엄연히 다르다.


눈, 코, 귀 등 감각이 성애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첫째, 사람은 관계를 욕망하기 때문이다.

둘째, 성애화됨으로써 감각이 예민하게 발달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감각 발달은 감정을 풍성하게 한다.

여자의 (피부) 감각이 남자보다 예민한 것은 그만큼 여자의 감정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성적 코드의 몸체화


감각발달 과정에서 성적 코드가 몸체화(embodiment)됨으로써 아기는 대상에 대한 애착을 가지게 된다.

아기는 감각을 발달시키면서 성적 코드를 만들게 되고, 그 결과 각자 성적 정체성을 형성해 간다.

유아기에 벌써 아들은 남자로서의 신체 감각, 딸은 여자로서의 신체 감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감각발달은 신체적인 것에서 시작, 성애화를 진행하면서 내면의 심리구조를 만들어 정신적인 작용을 가동하기 시작한다.

만일 유아기 때 감각발달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게 되면, 심리적 구조를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게 된다.

감각발달의 미비함으로 인해 심리적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외부에서 어떤 자극이 와도 그 자극을 감당할 수 있는 심리적 구조가 부재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오는 자극을 내면에서 소화해 내지 못하게 되면서 흥분을 제어하지 못하게 된다.

이때 신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 사이에 연결이 되지 못하게 되면서, 둘 사이에 불연속 된 공간에는 불안으로 채워진다.

이 둘 사이 연결이 제대로 되지 못하면, 최악의 경우에는 신체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이 뒤집히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 내용은 뒤의 글 중 샤이니 종현에 대한 이야기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될 것이다)


우울증은 피부 퇴화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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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적인 것은 감각적인 것으로서 피부로 표상된다면, 정신적인 것은 감정의 영역으로서 내장으로 표상된다.

우울증은 감정의 둔화로 나타나는데, 그것은 내장이 감정을 만들어내는 기능을 감퇴시키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삼투압 원리와 같이, 내장 기능 쇠퇴로 감정 리비도가 부족해지면서, 그 부족을 메우기 위해 피부에 머물러 있는 리비도를 내장으로 철수한다.

그래서 피부는 서서히 죽어간다.

얼굴은 창백해지고, 화장도 받지 않으며, 손톱도 툭툭 부러진다.


유아기에 내장에 몰려 있던 리비도가 온 몸으로 퍼져나가면서 피부를 경계로 신체적으로 '나'라는 정체성을 확보한 적이 있다.

리비도가 내장에서 피부로 확산되면서 몸 전체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우울증은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제 온 몸으로 퍼져 있던 리비도를 내장으로 철수하는 것은 생명력을 철회하고 죽음에 가까워지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정신적인 병은 대부분 생명을 살리기 위한 방어기제로 나타나는 것인데, 그 중 유일하게 우울증만큼은 자살에 이르게 하는 무서운 병이다.

피부에서 리비도가 철수되면 우울증이 되고, 거꾸로 우울증에 걸리면 피부에서 리비도 철수가 일어난다.


감각발달은 감정을 열어준다


감각의 발달은 감정의 발달로 연결된다.

융의 성격이론에 의하면, 직관과 감각이 한 축에 있고, 감정과 사고가 한 축에 있다.

강박증을 가진 사람은 사고를 너무 많이 한다.

사고를 많이 하는 만큼 감정은 발휘되지 못한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감정을 발달시키려면 사고를 멈추면 된다.

그런데 그런 방법은 100% 실패한다.

감정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는 감각기능을 높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감각기능을 높이기 위해 훌륭한 연주자가 연주하는 음악을 듣거나, 미술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는 것 등이 좋겠지만, 인터넷상에서 내게 전율을 일으키는 노래나 음악을 찾아 듣거나, 내가 직접 그림을 그려보거나, 찰흙을 가지고 손으로 직접 어떤 형상을 만들어 보는 것, 맨발로 흙을 밟는 것 등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된다.


감각발달과 언어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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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아기 감각발달은 언어 구사 능력과 중요한 포인트를 공유한다.

입의 성애화는 먹고 빠는 기능을 발달시킬 것이다.

처음에는 먹고 빠는 기능으로 전부인 입의 성애화는 9개월 이후에는 말하는 능력으로 나타난다.

입이 두 가지 기능(먹기와 말하기)으로 분화하는 기점은 이유기(젖떼기)이다.

먹고 빠는 기능을 할 때 입의 성애화는 감각발달과 관련이 있지만, 말하기로 넘어가면 입의 성애화는 감정 발달로 확장된다.

젖을 먹는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말하기가 지연된다.


청각을 통해 나타나는 성애화란,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싶은 것, 화음으로 어우러질 때 느끼는 감동 등의 형태로 얻을 수 있는 쾌감이다.

청각을 통해 주변의 많은 소리들 중 엄마만의 목소리를 찾아내고, 나머지 소리를 백색소음으로 처리하는 능력을 습득하면서 아기는 선택과 집중을 배우게 되며, 그는 그 능력을 평생 사용하게 될 것이다.


사람은 말하는 언어만으로 감정의 모든 것을 전달할 수는 없다.

그래서 청각을 이용하여 아기는 음악 언어, 즉 멜로디, 리듬, 박자를 창조한다.


아기는 처음부터 눈을 뜨기는 하지만 엄마를 뚜렷하게 보는 데에는 몇 개월이 걸린다.

처음에는 아기가 엄마의 젖가슴만 보다가, 6개월이 지나면서 엄마의 눈을 보며 시선을 교환하면서 엄마의 전체를 보게 된다.

아기는 눈을 통해 엄마에게 자기 마음을 보여주고, 엄마의 눈을 들여다보며 엄마의 마음을 안다.

아기는 시각을 이용해 마음으로 주고받는 언어를 배우고, 그 외에도 미술언어, 즉 색채감, 모양, 입체감 등을 창조한다.


후각, 미각 등의 발달은 훗날 음식, 음료, 술, 알코올, 와인 등과 같은 사회적 차원의 커뮤니케이션 언어를 만들어낸다.


우크라이나나 중동의 어느 전쟁지역에서 총소리와 대포소리를 듣고 자라는 아이들은 그 소리가 불안을 일으키고 불쾌감을 낳음으로써 청각의 성애화에 장애를 가지게 될 것이다.


오늘날 학교교육에서 두뇌, 입언어, 청각능력 등으로만 언어를 사용하는 것을 교육의 전부로 여기고, 그 외의 감각적 언어들은 선택사항 정도로 여긴다면 그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는 만큼 교육의 질이 떨어지고, 온전한 인격, 건강한 인격을 만들어내지 못하게 된다.


감각을 동원해 엄마를 기다리는 아이들


프랑수와즈 돌토는 아흐메드라는 아이에 대해 언급한다.

미혼모인 엄마가 아흐메드를 낳은 후 아기를 양육하기 위해 아기 혼자 남겨두고 돈을 벌러 나가야만 했다.

태어난 지 100일도 안 된 아흐메드는 늘 항문이 헐어 있어 병원 치료를 받아야만 했다.

아흐메드는 혼자 있을 때 손가락으로 항문을 팠는데, 그것은 곧 엄마를 찾는 행위였다.

생후 첫 6개월 동안은 엄마와 유아는 한몸으로 융합된 상태이기 때문에 엄마가 사라지자, 아흐메드는 마치 숨박꼭질 하듯이 엄마가 항문 안에 숨어 있는 줄 알고 자기 항문을 파헤쳐 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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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사라지면, 어떤 아이는 되새김질을 하면서 엄마 부재의 고통을 견딘다.

엄마의 부재 경험에서 오는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엄마가 아기의 내장에 남겨 두고 간 젖을 되새김질하여 엄마가 젖을 줄 때의 현존을 재현하고자 하는 것이다.

엄마가 오랫동안 부재하면, 아기는 엄마가 현존할 때 자기를 돌봐주던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먹은 젖을 다시 되새김하여 스스로를 위로하는 방법을 터득해 가는 것이다.

아기는 되새김을 통해, 젖을 줄 때 엄마가 제공한 품을 회상할 수 있게 되면서, 부재하는 엄마를 마치 현존하는 엄마로 인지할 수 있게 된다.


어떤 아이는 엄마가 사라진 이후, 엄마의 냄새를 찾아 화장품을 뒤지거나 이부자리를 뒤집어 놓는다.

엄마의 냄새를 통해 엄마의 존재 동일성을 확보해야 유아가 자기 존재 동일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혼자 누워 있으면서 바람결에 흔들리는 소리를 듣고 커텐의 흔들림을 보면서 엄마가 돌아오는 느낌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섬집 아기> 노래 가사를 보면 엄마를 기다리는 아기마음의 애처로움이 느껴진다.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 노래에

팔베고 스르르르 잠이 듭니다.


아기는 잠을 곤히 자고 있지만

갈매기 울음 소리 맘이 설레어

다 못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 옵니다.


사라진 엄마가 돌아오기만을 고대하지만 오랫동안 오지 않아 고통스러울 때 아기는 이런 여러 가지 환각적 방법을 취한다.


엄마가 부재할 때 겪는 아기의 고통을 생각해 보면 아기는 꼭 엄마가 키우는 것이 좋겠지만, 아기를 홀로 두고 일을 나가야 하는 엄마의 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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