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딸 vs 어머니의 딸
현역 부사관이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뒤 여군으로 복무하겠다고 요구하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졌다. 16일 육군과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육군 전차부대에서 전차 조종수로 복무해 온 20대 남성 A하사가 지난해 11월 말 2주 간의 휴가를 얻어 태국으로 출국해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육군 부대는 지난해 7월께 A하사가 성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는 걸 파악했다고 한다. 부대는 A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위해 태국으로 향한다는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지휘계통을 통해 보고했다고 한다. A하사는 해외 수술 후 군 병원을 찾아 3급 심신장애 판정을 받았다. 육군은 이 하사에게 조기 전역을 권고했다. 하지만 A하사가 남은 2년여의 복무 기간을 여군으로 근무한 뒤 만기 전역하겠다고 요구하면서 논란이 벌어졌다.
군은 그동안 국방부령 ‘병역신체검사규칙’을 통해 성 정체성 혼란을 겪는 이들을 ‘성 주체성 장애’로 분류해 입영 대상에서 제외해 왔다. 성 정체성을 숨기고 입대했던 성 소수자들은 ‘관심사병’으로 군의 관리 대상이 됐다. 입대하기 전 성전환 수술을 받고 호적상 성별을 바꾼 사람은 아예 면제 처분 대상이다. 하지만 입대 후 성전환자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선 명시적 규정이 없었다. 이 때문에 A하사를 놓고 전역이 불가피하다는 군과, 계속 복무해야 한다는 성 소수자 지지단체 간 찬반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중앙일보, 2020.01.17 )
가끔 내게도 위의 사례같은 내담자가 있다.
남자 청년이 여자가 되고 싶다는 것이다.
왜 여자가 되고 싶으냐고 물으니, 그 청년은 '나도 여자 성기를 가지고 싶어요'라고 답했다.
여자 청년 중에도 남자가 되고 싶어 하는 내담자가 있었다.
이유는 똑같았다.
'남자 성기를 가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 제목의 글은 3회에 걸쳐 서술될 것이다.
그렇다고 트랜스젠더의 심리를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이 세 개의 글은 중년기의 심리성적 변화에 초점에 맞춰져 있다.
유년기의 트랜스젠더의 심리와 중년기 심리는 상호 유비적인 관계성 안에서 다뤄질 것이다.
프로이트의 논문 중, [성에 관한 세 편의 에세이]는 <유아 성욕>, <사춘기 성욕>, 그리고 <성도착과 변태>에 대해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프로이트는 <유아성욕>과 <사춘기 성욕>에서 음핵 오르가슴과 질 오르가슴에 대해 다룬다.
여성은 음핵 오르가슴에서 만족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되며, 질 오르가슴으로 발달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여성의 이러한 성적 발달은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
이 의미의 핵심은 여성의 '남근선망'을 이해하는 방식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아버지의 딸과 어머니의 딸의 차이를 먼저 이해해 보고자 한다.
유의할 점은, 아버지의 딸이라고 해서 꼭 트랜스젠더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머니의 딸은 트랜스젠더가 될 이유가 없고, 아버지의 딸 중에는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
음핵을 가지고 남성의 남근과 경쟁하는 여성 중 일부가 트랜스젠더가 될 뿐이라는 것도 알고 다음 글을 읽어 주기 바란다.
어떤 가정에서 부모가 아들을 낳기 원했지만 딸로 태어났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딸들 중에는 아들보다 나은 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경우가 있다.
이 딸은 보통 아버지의 딸이 된다.
어머니의 딸로만 가지고는 아버지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딸이 된다.
여성은 누구나 남근선망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여성들의 남근선망과는 개념이 다르다.
여성에게 음핵이 남근에 해당되는데, 이런 딸은 그 음핵만 가지고 남성의 남근과 경쟁하는 구도를 만들어낸다.
그녀는 자신이 아들이 아니라 딸이어서 실망한 아버지에게
"아빠, 걱정하지 마. 내가 열 아들 안 부러운 아빠 딸이 될 거야."
"나는 아빠가 항상 원했지만 얻지 못했던 아들만큼 훌륭하다는 걸 아빠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여성영웅의 탄생], 모린 머독, 교양인, 41)
라며 딸은 자신의 음핵으로 남성의 남근을 능히 이길 수 있음을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산다.
모린 머독은 자신의 모습이 바로 이러하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이런 여성을 '여성영웅'이라 부른다.
모린 머독에 의하면, 이들은 스스로 여성이기를 거부하며 남성의 언어에 갇혀 산다.
이런 여성은 일상에서 남자와 경쟁하며 자신이 남성보다 우위에 있음을 사회적 능력으로 증명하며 살아가는 데 목숨을 건다.
이런 여성들이 눈앞에 나타나는 남성들을 퇴패시키는 것이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며 산다.
이런 여성이 남성을 경멸하는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여성도 경멸한다.
여자로서 자신과 같이 살아가지 못하는 평범한 여성들을 경멸한다.
이런 여성은 아버지의 사회적 삶을 이상화해 왔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순종적으로 살아가는 어머니 역시 하찮게 여긴다.
"난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라는 것이 그녀의 삶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된다.
이런 여성은 대개 '알파 걸'이 되어서 사회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면서 자기 존재를 확인한다.
그녀는 능력 있는 남성들만 보면 경쟁심을 발동한다.
이들은 사회에서, 가정에서의 여성적 가치를 부정한다.
내가 여성이지만 남성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다.
여성영웅은 남자를 경쟁상대로만 볼 뿐, 파트너십을 가질 수 있는 대상으로 보기도 어렵다.
그래서 그녀는 남자를 결혼대상으로 삼지 않을 뿐 아니라, 결혼 자체를 아주 부질없는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리하여 그녀는 남자를 경멸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남성혐오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공주의 키스를 기다리는 개구리 왕자 이야기나 왕자를 기다리며 잠들어 있는 백설공주이야기를 코미디 정도로 여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여성영웅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교육대학 입시현장, 법조계, 의과대학교 등 경쟁력 있는 곳에 남성들은 알파 걸들에 의해 쪽을 못쓰는 현상이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언젠가는 여성영웅들도 힘이 빠지는 때가 온다.
내가 아는 사람이 **계에서도 매우 유능한 사람들만 모이는 직장에서 몇몇 여성들의 요청으로 악기를 가르친 적이 있다.
과거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업무적 성격으로 보아 그곳은 분명히 남성적 영역인데 거의 3/4이 여성들이다.
나이 50세 전후인 그들은 이미 탈진상태였고, 정서적인 에너지를 채워보고자 악기를 배우고 싶었던 것이다.
그들 간의 이야기가 이렇다.
"내가 나이 30세 될 때 결혼하자는 남자가 있었지만, 그때는 내가 이렇게 능력이 있는데 굳이 내가 남자라는 하찮은 존재와 부부로 살아가야 하는 것과 시월드에 고개 숙이면서까지 들어가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 내 모습이 매우 비굴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내가 젊을 때는 남자들과 경쟁할 때마다 에너지가 넘쳤는데, 지금은 경쟁할 남자들이 다 사라지고 나니까 더 이상 삶의 의욕이 없어 허무감에 빠지게 된다."
는 것이었다.
아버지의 딸은 경쟁할 남자가 사라지면 위기에 빠지는 것이다.
남성을 파트너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순적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현상을 위에서 언급한 프로이트의 관점으로 보자면,
'음핵 오르가슴에서 질 오르가슴으로 넘어가지 못했다'
고 말할 수 있겠다.
아버지의 딸은 남근 선망을 질로 남근을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음핵을 가지고 남근과 경쟁하여 남성의 남근보다 탁월한 음핵이 되고자 하는 형태로 남근선망을 가지는 운명을 살아가게 된다.
트랜스젠더의 심리가 바로 이것이다.
질 오르가슴 단계로 넘어간 여성은 남자의 남근을 선망하기 때문에 자신의 질을 채워줄 수 있는 남근을 가진 매력적인 남성과 결혼하게 되지만, 음핵 오르가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여성은 음핵으로는 만족할 수 없어 아예 음핵 대신 남근을 달아버리는 형태로 남근을 선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여성은 어머니의 딸이다.
어머니의 딸들은 일단 음핵 오르가슴에서 질 오르가슴 단계로 넘어간 여성이다.
이런 여성도 남성과 경쟁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있겠지만, 남성과 최소한 파트너십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여성은 어머니와 심리적 육체적 동체성을 이루거나, 또 어떤 여성은 어머니와 육체적 동체성까지는 아니더라고 심리적 동체성을 이룬다.
어머니의 딸을 이해하는 데 있어 중요한 핵심 개념은 바로 '엄마와의 동체성'이다.
질 오르가슴으로 넘어간 여성이라고 해서 성적으로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대로의 어려움은 따로 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깊은 통찰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여성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모성성을 차용해서 사용한다.
여자로서 그렇게 하는 것이 가부장적 질서를 상징체계로 삼고 있는 사회에서 가장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은 어릴 때부터 모든 면에서 순종적이고 모성적이며, 모든 것을 돌보는데 탁월하다.
여성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모성성을 차용해 오기 때문에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는 에너지보다 월등히 많은 리비도를 가지고 살아가면서 남성들을 압도한다.
여성은 어릴 때부터 여성의 연약함을 방어하기 위해 여성성으로 살지 않고 어머니에게서 가져온 모성성과 남성성을 사용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여성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정서적으로 체감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다.
여성성은 감정 그 자체인데, 여성은 어릴 때부터 남성화(히스테리화)되고 모성성을 차용해서 살아온 어머니의 딸들은 자신의 여성적 감정을 받아들이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
가장 비근한 예가 바로 여성의 월경이다.
월경의 시기가 가까워 오면 여성은 매우 예민해지면서, 짜증이 나고 싫은 감정이 올라올 것이다.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대부분의 여성들이 회피하고 싶은 시간이 바로 월경의 시기일 것이다.
왜 여성이면서 이런 것이 싫은가?
여성은 한 달 내내 모성성과 남성성으로 살다가 월경의 기간이 되면
'내가 여성이다'라는 사실을 딱 떠 올려준다.
이러한 여성적 감정을 극도로 싫어하는 여성일수록 생리통을 심하게 겪을 것이다.
소설가 이외수의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는 책 제목처럼 여성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월경의 차원을 넘어 성교의 차원으로 넘어가면 자신의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의 혼미스러움은 더욱 분명해진다.
어머니의 딸의 어머니와의 동체성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대상관계 부부치료](데이빗 샤르프, 질 샤르프 저, 한국심리치료연구소]에서 제시되는 다음의 사례를 살펴보자.
엄마와의 동체성의 사례
이 사례는 저자가 '딸의 어머니와의 동체성 문제'라는 주제로 제시하는 사례는 아니다.
이 주제는 내가 발견한 주제이다.
이 주제를 설명하기에 이 사례만큼 적절한 경우가 없다고 여겨지는 사례이다.
이 사례는 어머니의 딸이라고 해도 음핵 오르가슴 단계에서 질 오르가슴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 얼마나 큰 어려움이 있는가를 보여 주는 사례이다.
이 주제에 맞춰 이 사례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다.
델마와 입스라고 하는 결혼 6년 차 된, 자녀가 없는 부부가 가지는 성관계의 절차에 관한 이야기이다.
델마는 이런 고백을 한다.
"남편이 내 음핵을 애무하는 동안 제가 싫어하는 성적 환상이 떠오르는데, 그것이 저를 흥분시켜요. 저는 그것이 너무 수치스러워요."
즉, 일종의 양가감정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 양가감정은 매우 복잡한 양상을 가지고 있다.
그 수치심은 음핵 오르가슴에서 질 오르가슴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델마는 남근 삽입을 두려워하고 성교 자체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음핵 오르가슴에서 질 오르가슴으로 넘어가는 데 장애 때문에 발생하는 불안이다.
말하자면, 델마는 성교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이 바로 입스가 음핵을 애무해 주는 것이다.
음핵으로 오르가슴을 느끼지 않은 채, 입스가 성교로 바로 들어가면 델마는 마치 강간당한 느낌을 받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그것은 바로 델마는 자신의 몸이지만, 자신만의 고유한 몸이 아닌, 엄마와의 동체성의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수치심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자신의 고유한 몸이라면 성교를 통해 쾌감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이지만, 델마는 엄마의 몸과 겹쳐있는 동체성의 문제 때문에 수치심, 죄책감을 감수하면서 성교를 해야 한다.
그래서 델마는 질로 삽입을 하기 전에 반드시 세리머니를 해야만 한다.
델마는 유아기에 엄마와의 근친상간적 관계로 융합되어 있는(이것은 여성에게는 정상적인 과정이다) 상태를 떠나보내지 못한 채 동체성을 이루기로 엄마와 심리적 언약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어머니의 딸은 대부분 이러한 무의식 상태에 있다).
남성들은 어머니의 딸들의 이러한 심리적 상태를 잘 모른다.
델마가 음핵 오르가슴을 먼저 느끼게 해 줘야 질로 삽입 단계로 진입해 들어갈 수 있듯이, 남성은 여성과 성관계를 할 때는 반드시 전희를 해 줘야 한다.
어머니의 딸이라면, 자신만의 고유한 몸을 가지지 못한 상태의 여성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자신의 파트너와 특별한 성관계를 갖기 위해서는 그녀의 어머니를 잠시 떠나보내 줘야 한다.
그리고 성관계가 끝난 후에는 후희를 해 줘야 한다.
그녀에게는 잠시 떠나 있던 어머니를 다시 불러들여야 하는 세리머니가 필요하다.
그러면,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가?
그녀가 자신만의 고유한 여성성을 가지게 되는 때까지이다.
그때가 언제냐 하면, 중년기 후반, 갱년기의 시작 지점이다.
그것도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부부간의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는' 갈등 과정을 통해 아내가 모성성을 떠나보내는 시점이다.
이러한 과정을 겪어내지 못하면, (다음 글들의 주제인) 남편은 여성화되고, 아내는 남성화가 되는 중년기의 비극적 구조로 빠져 들게 된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