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도덕에서 오는 나르시시즘과 중년기 불면증

주인도덕과 노예도덕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두 가지 도덕을 제시했다.

그것은 곧 주인도덕과 노예도덕이다.

사람은 한 가지 도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 도덕 중 하나의 도덕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니체는 제1편 11장에서 다음과 같이 주인 도덕을 말한다.


"자신의 생명에 대한 책임은 언제나 자신에게 있고, 또한 그 책임은 누구보다도 더 극도로 무거운 책임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 자신의 주인이며, 나 자신의 노예이다'라는 말로 이 세상의 모든 도덕적 표본을 깨부술 것이다."


그리고 제2편 29장에서 다음과 같이 노예도덕에 대해 말한다.


"모든 고통, 모든 상처, 모든 악에서 가장 큰 것은 진실로 살아남기를 포기하는 것, 그리고 그 대신으로 자신을 구속하고 복종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복종하기 쉬운 것은 인정하지만, 그런 복종은 인간의 가장 심오한 창조성과 가장 깊은 인간성을 막는다. 이것이야말로 노예 도덕의 기원이다. 노예 도덕은 모든 인간을 소모시키는 독이다. 그리고 그 독에 중독된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건강한 삶을 살 수 없다."



주인 도덕의 양면성

주인도덕은 개인의 자유와 자기 결정권, 독립성을 중시하는 도덕 철학이다.

주인도덕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대로 살아야 하며, 타인이나 사회적 규범에 의해 제한받지 않아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주인도덕에서의 '주인'은 자신의 삶과 행동을 자기 결정하고, 책임지며, 무엇보다도 자신의 욕구와 가치를 자유롭게 추구하는 개인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개인은 자신의 가치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타인에게 복종하거나 속박받는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주인 도덕은 '타인을 지배하는 자기 의지의 도덕'으로 정의할 수 있다.

이 도덕은 개인의 자아실현과 자유를 중시하며, 개인은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자신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인도덕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당당함이다.

주인도덕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어서 중요한 가치를 무시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구체화할 수 있다.

또한 주인도덕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들을 위해 희생을 감수할 수도 있다.


주인도덕은 때로 뻔뻔하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이는 개인의 자기 결정권과 독립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충돌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주인도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때로는 타인과 상충되는 의견을 내놓거나, 다른 사람들의 규범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뻔뻔하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주인도덕은 또한 뻔뻔함이나 이기심, 독단적인 태도로 인해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가치를 무시하거나 타인을 지배하려는 경향을 보일 수 있다.

주인도덕의 당당함과 뻔뻔함은 그 양면성이다.


독재자는 주인도덕을 가지고 산다.

그는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자기가 하는 일은 옳건 그르건 마땅히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제 멋대로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노예 도덕


주인도덕과 노예도덕의 차이

주인도덕은 '그 자체로 이런 것이다'라고 주장할 수 있지만, 노예도덕은 그 기준이 타자에게 있다.

그래서 이 대목의 붉은색의 작은 제목도 볼 수 있듯이, 노예도덕은 주인도덕과의 비교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이다.

주인도덕은 개인이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창출하며, 자신의 선호나 필요에 따라 행동하려는 동기를 갖는 것이다.

반면, 노예도덕은 개인이 자신의 가치를 타인의 평가에 기반하여 결정하고, 타인의 선호나 요구에 따라 행동하려는 동기를 갖는 것을 의미한다.

노예도덕을 따르는 개인은 자신의 존재와 행동을 타인의 인식과 평가에 의존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려 한다.

주인도덕을 따르는 개인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창출하며, 자신만의 기준에 따라 행동하는 반면, 노예도덕을 따르는 개인은 일종의 무엇이 옳은지를 판단하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며, 타인의 기준에 맞춰 행동하게 된다.

주인도덕을 따르는 개인은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출발하며,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신의 신념과 목표에 따라 행동하는 반면, 노예도덕을 따르는 개인은 타인의 평가나 선호를 따르기 때문에, 자신의 내면에서부터 출발하지 않으며,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찾지 못하고 타인의 시선에 의존한다.


노예도덕은 타자의 평가와 비교에 대한 의존성으로 인해 자신의 행동과 생각, 감정을 결정하는 불건전한 도덕 체계를 의미한다.

이는 자기 스스로 주체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따라 자신을 정의하고 인식하는 태도에서 비롯된다.

니체의 노예도덕은 인간의 삶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가치 체계로, 인간을 "종속된 존재"로 만드는 도덕이라고 말한다.

니체는 이러한 노예도덕이 과거의 가치 체계와 종교적 신념, 문화적 전통 등에 근간을 두고 있으며, 인간의 자유와 창조적인 자아실현을 억압하는 요소라고 주장한다.

니체는 노예도덕을 따르는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나 수용을 바라며, 진정한 자기 계발과 자아실현을 포기하고 타인의 가치에 종속되어 삶을 살아가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노예도덕은 니체에 따르면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부정하며, 창조적인 열정과 자유로운 사유를 억압하며, 인간을 행복과 만족감으로 이끄는 길을 막는 것이라고 말한다.


노예도덕과 나르시시즘

자기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Heinz Kohut)은 자기애를 강조한다.

그런데 코헛의 자기애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로 인해 오해가 많다.

그 오해는 자기애와 나르시시즘을 분명하게 구별하지 못한 채 자기 이론을 계속 진행시키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자기애란, 글자 그대로 self-love이다.

나르시시즘은 자기애가 채워지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이런 구별이 되면 그다음부터 이해하기가 쉬워진다.


아기는 태어나면서 정서적으로 빈 잔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잔은 엄마의 칭찬, 찬사, 긍정, 박수, 인정, 공감 등으로 채워지는 잔이다.

이 잔에 엄마가 공급해 주는 좋은 정서들이 어느 정도 차게 되면, 그 아이는 '일차적 자기애'를 채우게 된다.

일차적 자기애가 채워진 사람은 그야말로 건강한 주인도덕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 활동에만 집중해도 타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다.

일차적 자기애가 채워진다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일차적 자기애는 온전히 한번 충전되면 영원히 충전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일평생 인생의 진정한 가치와 창조적인 열정, 그리고 자유로운 사유를 가지고 생생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야 말로 건강한 주인도덕을 가진 개인의 모습이자, 자기애가 채워진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다.


자기애를 채우지 못한 나르시시스트는 그런 삶을 살지 못한다.

그는 엄마의 인정과 긍정, 찬사와 공감을 받지 못한 사람은 일평생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타자의 인정을 받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지만, 성취 후 인정받고 나면 허무함을 느낀다.

왜냐하면 나르시시스트는 무언가를 열심을 다해 성취했지만, 알고 보면 남의 시선, 남의 요구, 남의 기준에 맞춘 것이라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노예도덕의 모습과 유사하다.


건강하지 못한 주인도덕은 유아론(solipsism)과 통한다


유아론은 '나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실재하는 존재이며, 다른 것들은 내가 만든 혹은 내가 인식한 것에 불과하다'라는 주장이다.

유아론자는 다른 존재나 사물을 무가치하게 여기거나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긴다.

이는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으며, 남을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볼 때, 데카르트의 주체 철학은유아론에 속한다.

데카르트의 주체(subject)의 반대편에 있는 객체(object)는 '아주 보잘것없는 것'이다.

즉 object란, 따뜻한 우유가 식으면 잔 위에 생기는 막과도 같다.

그것은 걷어내야 할 대상이다.

또는 객체란 과자를 먹고 남은 봉지 등과 같이 버려야 마땅한 것이다.

주체가 가치를 부여하지 않으면 보잘것없는 것이 바로 객체이다.

북한사회에서는 오직 한 사람만이 주인도덕을 가졌다.

오직 한 사람만 존엄이자 주체이고, 나머지는 다 객체이다.

그 객체는 모두 노예도덕을 가졌다.


중년기 불면증: 노예도덕, 나르시시즘의 결과


니체의 주인도덕과 노예도덕 이야기 하다가 갑자기 중년기 불면증 이야기가 나오니까 좀 뜬금없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불면증은 노예도덕, 그리고 나르시시즘과 너무나도 직결되는, 특히 중년기 여성에게 매우 현실적인 문제이다.

노예도덕의 사람, 나르시시스트는 자기주장과 자기 긍정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늘 타자를 의식하면서 산다.

주체적으로 자유로운 사고를 하지 못하고 늘 남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그들이다.


불면증은 신체적, 정신적인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수면 장애가 지속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정상적인 수면 패턴을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면 부족으로 인한 건강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노예도덕이나 나르시시즘과 불면증의 관련성은 노예도덕이나 나르시시즘이 개인의 내적 자유와 창조성을 억압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선택하고 살지 못하며, 대신 타인의 평가와 인식에 의해 삶을 지배당하면서 산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면증은 이들의 내적 불안과 스트레스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타인의 평가와 인식에 대한 불안, 자기주장과 자기 긍정을 유지하기 어렵다는 불안 등으로 인해 내적으로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며, 이는 수면을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들의 관계가 언듯 보면 직접적으로 연결성이 없어 보이지만, 한번 생각해 보라.


그(녀)는 낮에는 이 사람 저 사람 만나면서 온갖 눈치 다 보면서, 스스로를 긍정하지 못하고 자신의 행동과 판단 및 감정을 타자의 평가와 인정에 맞춰 지내다가 집에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다.


잠자리는 어느 누구도 신경 쓸 필요 없는 나만의 공간이자 나만의 시간이다.

그때만큼은 내가 주체가 되는 시간이다.

낮에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맞추느라 억압된 주체적 사고와 감정이 잠자리에서 억압에서 풀려나면서 낮 동안 억울했던 온갖 생각들이 다 떠오른다.

그 시간만큼은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나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감정을 떠올리게 된다.

낮에 겪었던 온갖 수모와 억울한 감정들이 머리로 올라와 뇌를 꽉 채울 뿐 아니라, 온몸 피부로 장기로 억울함의 감정들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잠자리에서 정신과 몸이 말똥말똥해진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당사자는 그게 바로 깊은 불면증으로 들어가지 않겠는가?

잠을 잘 때면, 우리의 몸은 심장 박동 수와 호흡 등의 생명 유지에 필요한 기능만 유지하고, 대부분의 근육은 이완 상태로 들어간다.

밤이 되면 낮의 활동과 스트레스 등을 정리하기 위해 대뇌피질의 일부에만 리비도가 활동하거나, 꿈을 꾸기 위해 각막에 대한 신경근육 활동이 증가하여 눈이 빠르게 움직이는 빠른 눈 깜빡임(REM) 단계 수면에 들어가는 데에 필요한 에너지가 움직이는 정도여야 한다.

그런데 노예도덕과 나르시시즘으로 밤에 리비도를 온몸으로 순환하게 만드는 불면증은 몸의 호르몬 분배와 정신과 몸의 균형을 깨뜨리게 된다.

50대 이상의 여성으로서 불면증이 있다면 노예도덕과 나르시시즘의 측면을 반드시 되돌아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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