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의 <정신현상학>이라는 책은 인간의 정신발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중 이후 웬만한 철학자마다 한 번씩은 언급하는 대목이 있다.
그것은 바로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Master-Slave Dialectic)>이다.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두 남자가 서로 마주하고, 날카로운 칼을 가지고 생사를 건 결투를 벌이고 있다.
각자 눈에는 살기 위한 필사적인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으며, 그들의 호흡소리와 칼의 충돌 소리가 귀를 찌르며 울려 퍼진다.
그중 한 남자가 칼에 찔리면서 무릎을 꿇고 쓰러져 버린다.
다가온 죽음을 직시하며, 그는 상대방에게 다가가 자신을 구해달라고 애원한다.
"만일 당신이 내 목숨을 살려준다면, 나는 일평생 당신을 주인으로 모시고, 오직 당신에게만 충성하는 노예가 되겠습니다."
그 말에 상대방은 주저하며,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그를 살려주기로 한다.
생명을 구원받은 그는 무릎을 꿇고 상대방에게 충성을 맹세한다.
노예는 자기를 살려준 주인에게 충심을 다해 섬기고 주인의 명령에 철저하게 복종한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도 노예의 충심을 변함이 없다.
오직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뿐이다.
15년이 지나고 20년이 지나면서 노예의 마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러나 주인이나 노예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의 위치가 바뀌어 있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자각하게 된다.
주인이 할 줄 아는 것이라고는 명령하는 것 밖에 없다.
그렇지만 노예는 오랜 세월 동안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일을 수행하다 보니, 그 과정에서 주인이 가진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는 것을 물론, 사물을 조작하고 다루는 능력을 획득하게 된다.
이쯤 되면, 주인은 노예의 눈치를 보게 되고, 노예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주인과 노예 사이의 권력관계는 역전된다.
노예는 자유를 찾아 주인에게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반란은 주인-노예 관계를 뒤바꿔서, 주인이 노예가 되고 노예가 주인이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 과정에서 노예는 주인의 힘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며, 이를 통해 스스로 자유를 획득합니다.
헤겔은 노예의 이러한 발전은 사회의 발전을 촉진하고,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인간 정신 발달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부부관계의 변증법
부부 관계에서도 주인-노예 변증법이 일어날 수 있다.
부부관계는 주인-노예 관계처럼 상하관계가 아닌, 서로 동등하며 사랑하는 관계다.
이러한 부부의 속성에만 충실할 수 있다면, 관계의 역전이나 주인-노예 변증법이 적용되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대부분의 가정에서 이러한 관계 역전, 권력의 이동 현상이 일어난다.
그 말은 부부관계에도 동등이나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권력관계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남자는 수컷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서열 싸움을 하는데, 부부간에도 예외가 될 수 없나 보다.
남편이 일을 하러 출근하기 전 아침에 아내가 준비해 놓은 식사를 먹고 나서는 남편은 출근을 위해 나가게 되고, 아내는 집안일을 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남편은 집안일을 하지 않고도 출근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아내는 집안일을 하지 않으면 가정이 굉장히 어려워지므로 집안일을 할 줄 아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부부 관계에서, 남편은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움을 누리지만, 아내는 집안일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의무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남편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얻게 된 능력을 갖추게 된다.
아내가 가사와 가정의 모든 일에 대해 책임지며, 남편의 취향에 맞게 요리를 하고 집안을 정돈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사 능력과 조리 능력, 가정적 지혜와 상황 판단력을 향상하게 된다.
또한, 아내는 가정에서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므로, 가정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한 지식과 이해력이 높아진다.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서 아내는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을 관리하면서 경제력을 갖추게 되고, 남편이 가진 권력을 이용해 자신만의 권리와 영향력을 얻게 된다.
남편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해서 돈만 벌어다 줄 뿐 가정 경제를 책임지거나 가정 내에서의 일정을 정하거나 자녀의 교육에 관한 모든 일에 대해 책임지는 역할은 아내의 몫이 된다.
그 결과 아내는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한 결정권과 통제력을 획득하게 된다.
아내가 주인으로 등극하게 될 때에는 가정 내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맡게 되며, 남편은 아내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 정도 되면, 남편은 가정의 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게 되고, 자녀들도 이미 엄마 편이 되어서 아빠 편이 되어 줄 자식이 없다.
이미 아내가 자녀들의 삶의 구석구석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고, 자녀들은 엄마 말만 잘 들으면 만사오케이다.
중년기, 남자는 갈수록 외롭다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은 아내에게 돈만 벌어다 줄 뿐 갈수록 가족관계에서 소외되고 있고, 자신의 존재는 가족 내에서 투명인간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자녀들의 일상을 아내가 다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로서 자녀들의 삶에 개입해 들어갈 여지가 없어진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갈수록 수컷사이의 경쟁관계가 되어서 만나기만 하면 서로 으르렁 거린다.
아들은 엄마의 권력의 보증을 받아 아버지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아들은 그때가 딱 사춘기 중반을 넘어가고 있어 키도 아버지보다 크다.
아들은 기본적으로 아버지 때문에 야기되는 엄마의 고통을 보며 아버지에 대한 원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아들은 아버지가 살짝 건드리기라도 하면 언제든지 덤벼들 태세다.
아버지와 딸 사이는 더욱 멀기만 하다.
남편으로서는 아내를 이해하기 힘든 하나의 우주인데, 세대차까지 벌어져 있는 딸을 이해하기란 아예 다른 은하계에 있는 별이다.
늘 10시에 퇴근하던 남편이 모처럼 7시 칼퇴근하여 집에 도착하니 8시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여는 순간, 자신의 제외한 모든 가족이 모여 식탁에 앉아 저녁밥을 먹으며 화기애애하게 웃고 손뼉 치며 떠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자기 가족이 나만 빼면 저렇게 행복해한다는 장면을 현장으로 목격하면서 1차 충격을 받았다.
가족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시간에 아버지가 현관들어오는 순간, 가족은 만면에 머물던 함박웃음을 목구멍으로 삼키고 정지화면이 되어 침묵으로 일관한다.
갑자기 다들 일어나더니 밥상을 정리한 후 각자 방에 들어가서 서로 카톡으로 남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각자의 방으로 흩어진 가족들이 주고 받는 '카톡!' '카톡!' 소리와 서로 맞장구치듯 킥킥거리며 웃는 소리에 아버지는 거실에서 멍하니 앉아 2차 충격을 받는다.
남편이 장악한 것은 거실의 TV와 리모컨 그리고 텅 빈 소파뿐이다.
불행한 것은 대부분의 남자는 내가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그리고 내가 가족을 위해 이렇게 희생했는데, 자신이 왜 이런 꼴을 당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더 답답한 것은 남자는 그냥 억울해 하고 분노를 품을 뿐, 내가 뭘 잘못했는지에 대해 아무런 의문을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내가 23년간 상담을 해 오는 동안 이런 상황까지 가지 않으려고 애쓰는 수많은 아내들이 상담실 문을 두드렸을 뿐이다.
지금까지 어떤 남편도 이런 상황에 처하고도 자신의 문제가 뭔지를 알고자, 또는 부부문제를 해결하고자 제 발로 찾아온 경우는 없었다.
딱 한 사람 빼고.
딸과 나
그래도 나와 딸은 관계가 다른 부녀관계보다는 나은 편인 것 같다.
하루는 딸과 둘이서 치킨을 시켜서 함께 먹고 있었다.
와중에 딸한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구 : 뭐 해?
딸 : 응, 아빠랑 치킨 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고 있어.
친구 : 아니, 그게 가능해?
딸 : 뭐가?
친구 : 지금 너네 아빠랑 치킨 먹으면서 대화를 한대매? 그게 가능한 일이냐고...
당연한 일을 의심받는 세상이 되었나 보다.
주인과 노예변증법에서, 생사를 건 결투를 하고 주인과 노예가 되는 장면을 헤겔은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가?
주인과 노예 변증법에서 생사를 건 결투는 노예의 자유를 위한 심판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결투는 노예가 생명을 건 도전을 하여 주인과의 싸움에서 승리하게 되면, 노예는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헤겔은 이 결투를 "죽음의 위험에 빠져 있는 것이 자유를 위한 상태인 것처럼, 자유를 향해 행동하는 것은 항상 생명을 건 갈등에서 이루어진다"는 의미로 묘사합니다. 이 결투는 노예가 자유를 얻기 위해 불가피하게 거쳐야 하는 위험한 과정으로, 노예는 이를 통해 자유로운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는 인간이 자유를 얻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해야 한다는 헤겔의 철학적 입장을 나타내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