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소년들이 친구들과 만나 마구 떠들고 대화를 주고받고 수다 떠는 모습은 참 좋아 보인다.
생기발랄함은 바로 그들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서로가 거울 역할을 해 주기 때문에 서로를 반영해 주고 공감해 주고, 맞장구 쳐주는 등 리액션이 좋으면 분위기가 생동감이 흐른다.
어떤 젊은이들의 모임에서는 한 테이블에 둘러앉아 대화하기보다는 각자의 핸드폰을 열어서 각자가 원하는 SNS 자료를 검색하는 것에 바쁜 경우가 있다.
그들은 서로 거울 역할을 해 줄 만큼 유기적인 관계가 되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때 그들은 한 장소에 모여 있어도 그 장소는 서로가 공유하는 공간이 못되고 깨진 공간이 된다.
그들 사이에 있는 공간은 중간 공간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깨져 버리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공간만 깨지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깨지고, 일시적으로 관계가 깨지고, 존재가 깨진다.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상담자나 내담자가 제일 힘들어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침묵이다.
내담자는 이 침묵을 견디지 못해 상담을 오기 전에 '오늘은 상담 가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하며 이야기 전개를 위한 전략을 짜면서 온다.
숙련되지 못한 상담자 역시 침묵에 대해 힘들어한다.
미숙련 상담자가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과제가 바로 침묵이다.
내담자에게 있어 침묵은 불안의 수준으로까지 치닫을 수 있다.
그런데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라포가 형성되고 신뢰할 수 있는 관계로 가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과제가 바로 침묵이다.
내가 아는 어떤 상담자는 내담자가 오면 절대 먼저 말을 걸지 않는다.
처음부터 의외의 상황을 맞이한 내담자는 상담자가 말을 걸어주기만 기다리며 침묵으로 첫 상담을 시작했다.
10분쯤 지나니까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먼저 말을 걸기가 쑥스러워졌다.
상담이라고는 처음 받아보는 내담자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중에 시간이 너무 느리게 흐른다는 것을 직감했다.
20분이 지나도 상담자는 태연하게 버티고 있다.
이제야 내담자가 상담자의 의도를 파악했다.
'아하~ 상담이라는 것이 내가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 것이구나'
그런데 20분 동안 침묵하다가 이제 와서 말을 한다는 것이 또 쑥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내담자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몰라 그냥 침묵을 계속했다.
첫 상담은 그렇게 끝났다.
두 번째 상담시간에 내담자가 상담실로 들어왔다.
환한 미소로 맞아주는 상담자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지난 첫 상담과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내담자는 평소 숫기가 없는 사람이라 상담 회기가 계속될수록 침묵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렇게 상담이 9회기가 지나갔다.
10회기가 되는 때에 내담자의 입에서 드디어 말문이 터졌다.
"그동안 제 침묵을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때부터 상담실은 내담자에게 가장 안전하고 보호받는 공간으로 느껴졌고, 상담자에 대한 내담자의 신뢰가 극도로 올라갔다.
이런 상담자라면 내 인생 문제 전부를 맡겨도 되겠다 싶었다.
이제 그는 상담자에게 말하기 힘든 비밀 이야기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술술술 풀어낼 수 있었다.
침묵이 그 공간을 안전하게 지켜 주었던 것이다.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은 진정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내담자는
'어느 누가 그 긴 시간 동안 나를 이 침묵 속에서 나를 받아주고, 버텨주고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며 상담자에 대한 신뢰감이 크게 높아졌다고 한다.
나도 필요한 경우 상담 중에 이런 침묵을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내담자와 25분 동안 침묵해 봤다.
침묵 후, 내담자에게 침묵을 어떻게 견뎌 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 내담자는,
"처음 5분 동안은 제가 뭔가 말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제가 참 무능한 내담자로구나'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10분쯤 지날 때는 불안이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상담자가 원하는 이야기를 해 줘야 할 텐데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15분쯤 지나자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그냥 자포자기하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그리고 10분을 더 버틸 수 있었는데 그 10분 동안에는 상담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상태를 그냥 놔두시는 걸까를 생각해 봤어요."
역시 그랬다.
그 이후 내담자는 상담자로서의 나에 대한 신뢰가 매우 견고해졌다.
그리고 상담을 하는 중에 '말을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구나'하는 생각으로 자유로워졌다고 한다.
상담실에서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의 공간은 중간영역의 공간이다.
상담자와 내담자가 대화를 할 때는 그 공간은 언어의 주파수가 왕복하는 곳이다.
그렇다면 침묵하는 공간도 과연 그러할까?
침묵하는 공간 역시 두 사람이 공유하는 공간이다.
침묵이 '아무 말을 안 하는 시간'이라고 해서 그 공간 안에서 '아무런 일도 안 일어나는 곳은 아니다.'
침묵하는 중에도 두 사람 사이에는 전이와 역전이가 끊임없이 반복한다.
침묵의 시간 중, 내담자가 아무 말을 안 한다고 해서 상담자가 전화나 문자를 한다거나 SNS 검색을 한다거나 하면, 그 공간은 깨지기 마련이다.
상담실에서 두 사람은 침묵의 시간에 가장 자기답게 존재할 수 있다.
그 공간은 두 사람의 '자기 다움의 존재'를 서로 교환하기도 하고 존재가 뒤 섞이기도 한다.
침묵 초기에는 각자의 불안을 끄집어내어 중간 공간을 뒤 틀기도 할 것이다.
상담자의 불안이 내담자의 불안에 맞서 합이 맞는 칼싸움을 하면서 그 공간을 잠잠하게 만든다.
침묵이 오래 지속되는 가운데 상담자가 내담자의 불안을 받아내게 되면, 내담자는 불안의 강도가 약화되는 경험을 한다.
그 과정에서 내담자의 불안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다.
침묵이 길어지면서 내담자의 유약한 마음은 그만큼 강해지고 불안을 스스로 담아내고 견디는 내성이 생기게 된다.
마음이 잘 맞는 친구가 함께 있는다고 해서, 그 친구는 반드시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는 친한 친구끼리 서로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함께 평정심을 나눌 수 있다.
각자 개인 공간을 존중해 줘야 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러다가 한 친구가 SNS를 하는 순간, 공유하던 시간과 공간이 깨진다.
너무 심한 말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것이다.
(사진 ;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지면서 공간을 함께 공유하고 있다)
나는 소설가 백영옥의 칼럼(조선일보, 2019. 2.2일 자)에서 다음의 글을 보았다.
심리학자 셰리 터클의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에는 '퍼빙(phubbing)'이란 말이 나온다. 휴대폰의 '폰(phone)'과 '무시함'의 '스너빙(snubbing)'을 합성한 말로, 주변 사람들에게 냉담할 정도로 스마트폰에 열중하는 태도를 뜻하는 신조어다. 하지만 연구에 의하면 탁자에 놓인 스마트폰은 (심지어 꺼져 있어도!) 사람들의 대화를 변형한다. 방해받을 가능성만 있어도 유대감이 차단되는 것이다. 휴대폰은 침묵할 때조차 우리를 분리한다.
부부간에 대화나 침묵은 어떠한가?
내가 자주 하는 실수가 있다.
아내와 함께 대중교통을 이용하던 중, 딱히 이야기해야 할 특별한 주제가 없고, 서로 얼굴을 마주할 일도 없이 앞만 보고 가게 된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SNS를 하는 것이 공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핸드폰을 꺼내 이어폰과 연결하여 내가 원하는 주제의 뭔가를 시청하는 일을 자주 실행했다.
아내와 길거리는 함께 걸어가면서도 딱히 뭔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니 시간을 아낀다는 차원에서 혼자 SNS를 틀고 시청한다.
집 안에 들어와서도, 우리는 TV를 보지 않으니 각자의 SNS를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아내가 보고 싶은 것은 크게 틀어서 함께 듣는 것을 많이 하는 반면, 그런 와중에서도 나는 나의 SNS를 따로 시청하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아침마다 매일 한 시간 정도 뒷산을 오르는 데, 그때도 나는 아내보다 3~4 걸음 앞장서면서 SNS를 틀면서 나 혼자 시청하기를 즐긴다.
이런 일이 누적되다 보니 아내가 보골이 났다.
어느 날, 아내는 누적된 상황을 몰아서 한 번에 쏟아붓는데 나는 감당할 수가 없었다.
내가 그럴수록 아내는 '외롭다'는 것이었다.
이어폰을 따로 착용하는 순간, 아내의 존재가 딱 배제되는 느낌을 받는단다.
백영옥은 밤 10시 이후, 스마트 폰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다음, SNS와 관련된 앱을 모두 지웠다고 한다.
늘 시간 부족에 시달린다고 생각해 왔는데, SNS 앱을 지운 후, 그동안 부족해 보이던 '시간들'이 생겨나더라는 것이다.
그녀는 시간 부족으로 시달린다는 것은 시간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도 뭔가를 하다가 SNS를 보는 순간, 시간은 오염되고, 파편화된다.
내가 아내와의 관계에서 경험한 것은 시간만 오염되는 것이 아니라 공간도 깨지더라는 것이다.
또한 아내를 외롭게 만든다는 것을 보면, 순간적으로 관계가 깨지면서 존재가 깨지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부부간 대화도 중요하지만 침묵 또한 중요하다.
침묵하는 동안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SNS를 멀리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외로움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침묵하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도 끊임없이 서로를 향한 전이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부부관계가 탄탄할 수록 깊은 침묵은 존재를 풍성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