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 컨버그의 정신분석학적 서술
외도를 할 때 남자와 여자의 반응이 다르다.
남자가 외도하면, 그의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질문은, '여자에게 마음을 줬느냐?'이다.
여자가 외도하면, 그의 남편이 아내에게 하는 질문은, '남자에게 몸을 줬느냐?'이다.
왜 질문이 다를까?
남자는 '마음과 몸이 따로'가 분리되어 있어서 다른 여자에게 몸만 주고 마음을 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여자는 몸과 마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남자에게 몸이 가면 자동으로 마음도 같이 간다.
그것은 아마도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인간이라는 종족 보존을 위해 취한, 일종의 묘수인 듯하다.
이처럼 외도의 심리를 보면 남자와 여자의 차이가 분명해진다.
남자는 여자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분열적이기 때문에 외도를 하면서도 아내를 사랑하는 마음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남자는 두 가지 여성상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엄마 같은 여자, 또 하나는 애인 같은 여자이다.
40대 이전의 대부분 남자는 결혼하기 전, 결혼 이상형은 '엄마 같은 여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2000년 이전만 해도 결혼 시장에는 모성성이 풍부한 여자가 주가가 매우 높았다.
남자는 왜 이렇게 엄마 같은 여자를 찾는가 하면,
첫째, 자신의 엄마를 사랑한 적이 있었던 유아기의 잠재된 기억을 가지고 여자를 보기 때문이다.
둘째, 남자가 엄마 같은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면, 안심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엄마 같은 여자는 모성성을 발휘하느라 바쁘기 때문에 여성성을 가꿀 여가가 없다.
또 엄마 같은 여자는 여성성 발휘를 매우 귀찮게 여긴다.
그리하여 여자는 40대가 되면 푹 퍼진 아줌마가 되기 십상이다.
남편 입장에서, 이런 여자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남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자 입장에서 보면, 아내를 놓고 알지 못하는 다른 남자와 경쟁할 이유가 없어지게 되니까, 자신의 사회 활동, 경제활동에 안심하고 주력할 수 있게 된다.
그런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엄마 같은 여자와 사는 남자는 성적으로 아내와 가까이하는 일에 소홀하게 된다.
젊었을 때의 남자는 왕성한 성욕 때문에 엄마 같은 아내와도 성관계를 하기는 하여 자녀도 낳게 되지만,
나이가 들수록 엄마 같은 느낌 때문에 아내와 성적으로 거리를 두게 된다.
이처럼 남자는 몸과 마음만.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엄마 같은 여자>와 <애인 같은 여자>로 분열되어 있다.
남자는 아내에게서 엄마 같은 여자를 찾지만, 애인 같은 여자에 대한 소망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 같은 아내와 사는 남자는 애인 같은 여자를 밖에서 찾는다.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시기가 되면, 남자는 중년기에 접어든 것이다.
정상적인 남자의 과제는 자신의 아내와의 관계에서 엄마 같은 여자와 애인 같은 여자를 통합하는 것이다.
남자는 이렇게 쉽게 분리가 일어나는데, 여자는 왜 분리가 되지 않고 마음과 몸이 하나로 가는가?
이에 대해 정신분석학자. 오토 컨버그(Otto Kernberg)가 자신의 저서 [사랑과 공격성](학지사, 285)에 가볍게 설명하고 지나간다.
물론 컨버그는 지금 내가 제시하는 주제로 이런 내용을 다루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컨버그의 이런 서술을 보면, 장차 남성과 여성의 사랑 관계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마음과 몸 사이의 심리적 구조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을 보여준다.
컨버그는 그 차이가 바로 청소년기 성장과정에서 발생하는 성적 소망의 차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설명을 한다.
좀 어려운 내용이지만, 내가. 잘하는 것은 어려운 내용을 일반인의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컨버그의 다음 이야기를. 살펴보자.
"초기 남자 청소년 집단은 잠재기 아동의 흥분적이나 여전히 항문기적인 성 개념을(다정함으로부터 해리된) 의식적으로 고수하면서 이성과 다정함이나 낭만적인 관계를 하고 싶은 열망을 안으로만 간직한다. 이는 초기 여자 청소년 집단에서 전형적으로 보이는 발달과는 대조적이다. 소녀들은 열망하는 남성 대상을 이상화하면서 낭만적으로 받아들이는데 이는 성기적 소망이 '은밀히' 사적으로 불러일으켜졌기 때문이다."([사랑과 공격성](오토 컨버그, 학지사, 285)
위의 글에서 먼저 남자 청소년에 대해서 살펴보자.
빨간색의 글을 보면, 컨버그는 남자 청소년의 성적인 몸의 상태와 마음의 상태를 분리시키는 현상에 주목한다.
즉 남자는 몸의 흥분과 지저분한 성 개념(항문기적 성 개념이라 함은, 마치 아무런 사랑도 낭만도 없는 포르노 영화처럼 지저분한 성 개념을 말한다)을 의식적으로 고수한다.
그래서 남자는 대부분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거의 100% 자위행위를 하는데, 주로 야동 또는 포르노를 보면서 자위행위를 실행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또는 죄책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하여 남자는 두 가지 방향의 욕망을 실현할 수 있다.
자기 앞에 성적으로 지저분한 여자가 나타나면 전자의 몸의 욕망을 실현하고자 하지만,
순수한 여자가 나타나면 후자의 다정하고 낭만적인 정서적 관계를 열망한다.
그래서 남자는 자기 앞에 어떤 여자가 있느냐에 따라 그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가 다 이렇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왜냐하면 남자도 삶의 경륜과 아내와의 관계 및 사회적 관계를 통해 성숙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남자들이 인격 성숙에 무관심하며, 그 결과 성적으로 이렇게 분열되어 있는 상태로 살아가게 된다.
그런데 여자의 경우는, 초록색의 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신의 성욕을 남성 대상을 열망하고 이상화하기 위해 그 대상에게 투사하는 데에 사용한다.
여자는 성적 흥분을 대상화시킴으로써 그녀의 성적 흥분은 감춰진다.
그래서 여자는 성적 흥분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해야 성적 흥분이 올라오는 것이다.
이렇게 여자는 성적 흥분과 사랑은 하나로 통합된다.
그리하여 여자는 낭만적 사랑만으로도 성적 만족을 대신할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오늘날의 20대나 30대 초반의 사람들은 이런 내용을 이해할 수 없거나 , 특히 그 나이의 여성들은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왜냐하면 요즘의 20대 여성은 성욕 추구에서 남자와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20대 여성이 그렇다고 말하면 그것도 큰 오해가 된다.
요즘 20대 여성들 중에는 과거의 남자들처럼 성욕과 사랑을 분리하는 것이 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문제는, 여성이 과거의 여성과 본성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젠더 개념으로 이데올로기화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이데올로기화 되면 당장은 남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동등함을 경험할 수 있겠지만, 그 내면에서 여자의 본성은 갈기갈기 찢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