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어른'과 '꼰대'

어른의 의미


어른이란,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국립국어대사전)

2.  다 자란 사람이나 나이,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을 이르는 말(YTN)

3. 결혼한 사람


위 셋 중 하나에 해당되면 어른이다.


요즘은 연세가 아예 많거나 하면 어른이라 부르기보다는 '어르신'이라 부른다.

내가 어른이라고 해도 나보다 연세가 많은 분이면 그분은 내게 무조건 '어른'인 것이다.


이런 개념은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일정한 나이에 이르면 무조건 '성인'(adult)가 되는데, 특히 서양에서는 성인의 나이에 도달하면 성인으로서 대접을 해 줘야 마땅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우리나라처럼 한두 살 많다고 해서 나이대접받으려는 자세는 서양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도 나이가 들어도 젊은 세대로부터 나이대접받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요즘은 어른들이 젊은이들에게 대접을 받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 젊은이들은 어른대접보다는 '꼰대'라고 몰아붙이기 일쑤다.

젊은이와 늙은이가 싸우면 젊은이가 늙은이에게 공격하는 공통된 무기는 '꼰대'라는 프레임이다.


젊은 세대가 어른을 공격할 때 쓰는 공통어, <꼰대>


며칠 전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젊은이와 노인이 싸움이 붙었다.

늙은이는 구청으로부터 길거리에서 샵을 분양받아 <구두수선>과 <열쇠복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젊은이가 자기 샵 옆에 자전거를 묶어둬서 아침 영업을 위해 준비하는 데에 방해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구두 수선 노인이 젊은이에게 한 마디 했던 것 같다.

노인의 목소리를 크지 않았지만, 젊은이의 분노에 찬 목소리는 젊음으로 나이를 압도하려는 듯 카랑카랑했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 되었다.


노인에게 건네는 젊은이의 어투는 첫마디가 반말이었다.


"니가 뭔데 나보고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야."


그러면서 점포 바로 옆에 세워놓은 조그만 전광판을 가리키며, 노인에게


"당신 말이야. 이거 불법인 거 알아. 왜 대답이 없어!! 내가 당신한테 묻잖아. 불법인 거 알아, 몰라. 말해 보라고 이 늙은이야!"


노인은 젊은이의 혈기를 당해내지 못해 절절 매고 있어 내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내가 그 젊은이에게 다가가서 한 마디 거들었다.


 : "이 분 나이를 보니, 당신 아버지 뻘은 되는 것 같은데 말이 좀 심하지 않나?"


(그는 혈기왕성한 얼굴을 내 얼굴 정면으로 가까이 대며 내게 말했다.)


젊은이 : "이 사람아~ 네 일이 아니면 그냥 꺼져!"


: "이 사람 좀 보소. 암만 봐도 내 막내아들뻘 밖에 안 되는 것 같은데, 첫마디가 반말에 막말이네"

젊은이 : "야! 너거들 늙은 것들이 왜 우리 같은 사람한테 욕먹는지 알아? 그렇게 쓸데없는 일에 젊은 사람 간섭하고 다니니까, '꼰대'라는 소리를 듣는 거야. 알아?"


30세도 안된 청년이 나를 비롯한 어른들에게 얼굴을 붉히며 훈계를 하고 있었다.


졸지에 나는 그의 앞에서 꼰대가 되었다

 

나는 평소 가지고 있던 <꼰대론>을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자네같이 분노도 조절 못하는 분노조절장애자, 어른도 몰라보는 인격파탄자, 자기 성질에 못 이겨 자신도 통제하지 못하는 성격파탄자보다는 내가 꼰대인 게 더 낫지"

  "그런데 젊은 사람들이 어른 몰라보고 다짜고짜 공격할 때, 제일 쉬운 방법이 무조건  <꼰대>라고 뒤집어 씌우는 거야. 그런데 정작 누가 꼰대인 줄 아나?"

 "자네가 어른을 어른으로 못 알아보는 것은 눈이 꼬였기 때문에 자네가 꼰대고, 자네 입이 꼬여서 어른을 존대할 줄 모르니 입이 꼬여 꼰대고, 자네 마음이 꼬여서 아버지뻘 되는 나이 많은 사람을 어른으로 대접할 수 없으니 꼰대인 거야."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 줄도 모르고 나이 많다고 다 꼰대로 몰아가면, 자네보다 5살 아랫사람에게는 자네도 꼰대인 거야."  


아침부터 길거리에서 난동을 부리는 젊은이를 보면서 누군가가 경찰을 불렀다.


내가 그에게 한 마디 더 했다.


"자네 아버지를 꼭 한번 만나고 싶군. 그리고 자네 아버지께 큰 절을 해야 되겠어. 집안에 큰 인물 났다고 말이야"


그랬더니 젊은이 왈,


"당신 아들 꼭 한번 만나고 싶네. 당신이 얼마나 꼰대인지 알려줘야 되겠으니까."


내가 말했다.


"우리 아들 정도면 자네 같은 막무가내도 사람으로 만들 수 있지."


그 사이에 경찰이 와서 사태를 수습했다.

나는 그 자리를 떠났고, 저녁에 그곳을 지나가보니, 젊은이의 혈기대로 상황이 정리된 것 같았다.

불법 전광판은 신고되었고, 그 전광판은 철거되어 <구두 수선소>의 낮은 지붕에 덩그러니 내 팽개쳐져 있었다.

그 젊은이의 분노로 자신의 뜻을 관철시켰지만, 그의 행위는 일평생 반복될 것이며, 결국 언젠가 그도 자기보다 어린사람한테 모욕을 당하며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결국 <구두수선> 노인은 그 젊은이를 건드리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억울한 일들이 다 일어난 셈이 되었다.

그런 결과를 보면서, 나 자신도 적절하지 못한 개입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하게 되었다.


차라리 그 상황에서 한쪽 편을 들지 말고 두 사람을 화해를 잘 시켰다면 최소한 노인은 전광판이 철거되는 것 같은 더 억울한 일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꼰대'와 '어른'


요즘 부모세대와 자녀 세대 간의 시각차는 엄청나다.

부모세대는 아날로그 세대라면, 자녀세대는 디지털 세대다.

상담을 받으러 오는 젊은이들은 부모님과 갈등의 크기와 깊이가  너무 크고 너무 깊다.

부모는 유교적 사고와 가부장적 질서라는 과거의 이념에 머물러 있고, 자녀는 앞으로 다가올 4차 혁명 시대로 인한 미래적 불안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


부모들은 자녀가 살아가는 첨단과학 기술에 적응해 가기가 너무 힘들다.

하다 못해 인터넷으로 주민등록등본 발급받는 데에도 자녀의 도움 없이는 처리하기 힘들다.

부모가 보기에 자녀는 인사도 잘 안 하고, 어른 공경이 뭔지도 모르는 싹수없는 세대라고 생각한다.


자녀들은 그런 부모를 보면서, 더이상 존경이나 효도를 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부모세대는 오히려 자녀세대에 의해 시대 흐름의 부적응자로, 내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보잘것없는 존재로  희화화되고 있다.

너무 빠르게 변하는 시대정신은 부모-자녀 관계, 늙은이와 젊은이 관계를 성찰하거나 묵상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만든다.

부모는 자기 사고방식으로 자녀들을 판단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녀들도 자신의 부모를 자기 시대의 부적응자로 낙인찍어 어른의 개념이 정착될 여지를 갖지 못한다.

젊은이들이 어른들을 볼 때, 핸드폰조차 전화기 기능 외에는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멍청한 사람, 시대적 낙오자로 밖에는 안 보일 것이다.

어른에 대한 존경 대신, 아버지 세대가 학교 선생님을 비꼬면서 사용했던 '꼰대'라는 용어를 가져와 자신의 부모, 사회의 어른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프레임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두 세대 모두 '꼰대'라는 단어에 서로 다른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대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지식이나 정보에 뒤쳐진 부모세대는 젊은이들이 '꼰대'라는 프레임을 뒤집어 씌우면 꼼짝없이 당하고 마는 것이다.


세대 차 극복 


지금은 작고하신 나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내게 많은 상처를 주셨지만,  아버지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꾼 후로는 그렇게 받은 상처를 분노로 쌓아두지 않게 되었다.  


내 시대에 비춰 아버지의 사고와 가치관, 양육방식을 생각하면, 아버지에 대해 억울한 상황들이 많이 떠오른다.

그렇지만, 내 시대의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 시대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가를 생각하면 아버지는 나에게 영웅이 될 수 있고, 나의 자부심이 되기도 하고, 나의 훈장이 될 수도 있다.


아버지가 사회에 남긴 업적도 지금 시대의 기준으로 보면 보잘것없는 것이겠지만, 아버지가 사시던 시대적 상황에서 아버지의 업적을 생각하면 아버지는 그 시대의 선구자였다는 점이 인정된다. (실제로 나의 아버지는 자기 분야에서 사회를 선도하는 선구자 역할을 하셨다.)


내 시대에 비춰 보면 ‘아버지’라는 존재는 일개 '꼰대'에 불과했지만, 아버지 시대에 최선을 다해 시대를 개척해 한 분야의 대가가 된 것을 생각하면 그 시대의 존경받아 마땅한 어른임에 틀림없다.


내가 이것을 깨닫는 데에 최소한 50년이 걸렸으니, 길거리에서 행패를 부리던 그 젊은이도 최소한 50세 이전에 아버지 세대를 아버지 시대에 맞춰 이해하는 방식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대차에 대한 이해를 바꿔야 하는 것은, 부모 세대가 자녀세대를 이해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젊은이가 어른을 어른이 살던 시대정신으로 바라보면, 자기보다 나이 많은 사람은 모두 '꼰대'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런 깨달음을 얻는 데 50년이 걸렸지만, 최소한 내 자식들은 나보다 더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시간개념의 차이


부모세대의 시간 개념과 자녀세대의 시간 개념을 보자.(핸드폰의 좁은 화면으로는 다음 표의 의미를 알 수 없다)


           부모의 과거            부모의 현재            부모의 미래

                          

                                         자녀의 과거           자녀의 현재            자녀의 미래



일본사람은 아들에게 '너는 장차 뭐 할거냐?'라고 물으면, 아들은 '아버지 하시는 가업을 이어야지요'라고 답변한다.

일본의 아버지는 아들이 가업을 이어가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아들이 동경대 법과를 졸업하여 성공적인 변호사 직을 수행하다가 우동집 하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변호사업을 접고 아버지가 하시는 우동집을 이어받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자들이 바로 일본인이다.  


그러나 한국의 아버지가 아들에게 같은 질문을 물을 때, 위와 같은 대답을 하면


"내가 그거 하라고 교육시키는 줄 아느냐?"


고 반문한다.

만일 우리가 조선시대에 살고 있다면, 할아버지나 아버지나 아들은 같은 목표와 가치를 가지고 살아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오로지 모든 세대의 유일한 목표가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일 테니까.


나의 시대만 해도 아버지의 훈계를 받고 아버지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도 크게 문제가 없었다

그렇지만 오늘날 한국사회는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우리가 겪은 최근 50년간의 시대 변화는 다른 시대로 말하자면 400~500년에 걸쳐 일어날 수 있는 변화에 해당한다.

앞으로 10년은 지금까지의 50년보다 변화 속도가 빠를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 지식의 반감기가 3년이라면, 2030년이 되면, 지식 반감기는 3일에 불과하다는 어느 철학자의 예견도 있다.


이 시대에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자신의 훈계와 교훈을 잘 따르기를 강요하면, 그 아들은 자신의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를 기획하기는 커녕 자신의 과거로 회귀하는 인생을 살게 된다.

꼰대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자기 시대의 가치관을 자녀세대에 강요하는 사람이 바로 꼰대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자녀가 부모의 교훈과 훈계에 무조건 순종한다면, 그 아이는 자기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를 열어가지 못하고 말 것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혜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꼰대의 욕망을 버려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옳다고 여겨 왔던 모든 합리성과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첨단과학기술의 변화 속도에 따리 시대정신이 너무 빨리 변화 발전해 가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상황에 맞지 않게 무지막지한 분노조절장애의 청년이  있기도 하지만, 전반적으로 보면 우리가 젊을 때의 자화상보다 지금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자화상이 훨씬 건강한 것 같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지혜로운 어른이 되어가기 위해서는 꼰대의 위치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탈각력을 점검해야 한다.

만일 자녀세대의 지혜나 시대정신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면 그때부터 나는 <꼰대>라는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힘들디.












 

   

 



매거진의 이전글 가족 로맨스(5) : 혁명적 사고와 숨바꼭질 놀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