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에서의 공격성에 대하여
(사진: pexel)
우리 주변에도 <잡음>은 얼마든지 있다.
TV를 틀었을 때, 프로그램이 진행되지 않을 때 '삐~' 소리와 모든 프로그램이 끝난 후의 "치직~"하는 소리, 그리고 녹음을 하면 산뜻하게 되지 못하고, '치익~'하는 소리. 이런 것들이 바로 그런 잡음에 해당된다.
아무리 조용한 자연이라 할지라도, 그곳에는 사람소리, 물소리, 바람소리 같은 아무런 소리가 없어도 그곳에서 고성능의 녹음기로 녹음을 하면 잡음이 들리게 되어 있다.
전문가들은 이 잡음을 없애기 위해서 많은 노력들이 있어 왔지만, 그 소리는 없앨 수 있는 소리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일종의 <우주 잡음>인 것이다.
그 잡음은 우주 어디를 가나 존재한다고 한다.
단지 모양과 상황에 따라 소리가 다를 뿐인 것이다.
잡음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창조의 결과로 남은 흔적이 바로 잡음이다.
즉 잡음은 새로운 '창조'를 요구하는 소리이다.
TV 방영이 끝나는 시간과 방영을 시작하는 시간 사이에 '칙~' 하는 소리가 나는 시간은 새로운 프로그램 방영을 기다리는 시간이다.
잡음은 새로운 창조를 기다리는 사인이다.
(사진 : pexel)
인간관계를 계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인성 밑바닥에 있는 <잡음>이다.
아이가 태어날 때 잡음을 내면서 어머니를 부른다.
아기는 어머니를 찾으면서 비명을 지르지 않는가?
아기가 어머니를 필요로 할 때마다 잡음을 낸다.
아기는 그렇게 어머니와의 관계를 창조해 가는 것이다.
어머니는 아이의 잡음을 잠재울 줄 아는 유일한 대상이다.
어머니는 유아가 내지르는 잡음의 의미를 알고 리듬을 탈 줄 알게 되면서, 아이의 잡음을 다루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그것은 엄마가 아이보다 더 큰 잡음을 냄으로써 아이의 잡음을 압도하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의 잡음에 휘둘려 주는 법을 터득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3세가 되면서 아버지가 이 엄마-유아의 2자 관계 속으로 의미 있는 존재로 들어오면서, 아기는 3자 관계에 진입한다.
그때 아이는 또 한 번의 엄청난 굉음을 경험한다.
아이는 이 과정에서 천둥 번개를 맞은 듯,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이런 과정을 겪게 되면서, 유아는 2자 관계에서 생물학적 존재에서 3자 관계의 사회적 존재로 변화되면서, 복잡한 인간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아이는 이 과정에서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원리를 터득하게 된다.
즉, 아버지라는 관문을 통과하면서 아버지 뒤에 펼쳐져 있는 세상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상징화시켜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능력을 갖추게 되면, 세상이 들려주는 잡음에 압도되지 않고 넓고 광대한 세계를 자신의 눈앞에 펼쳐져 있는 세계로 축소할 줄 아는 상징능력을 갖추게 된다.
아이의 무의식적 지식 속에는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3자 관계의 확대에 불과하다는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짐으로써 세계를 상징화시키는 능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가 가정과는 전혀 다른 시스템을 가지고 있어도 3자 관계로써 풀어갈 줄 알게 되면서, 세상의 복잡함을 현실 관계를 통해, 그리고 교육이 전개되는 구체적인 내용들 속에서 확인해 나가게 되면서, 자신감을 얻게 되는 것이다.
사춘기를 지낸다고 하는 것은 청소년이 몸과 정신 간의 불균형에서 오는 잡음을 견뎌내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 잡음을 통해 '나'라는 새로운 주체, 빛의 질서로 창조해 내어야 하는 것이다.
부모의 양육을 받아 온 아이가 6세가 되면, 이미 어머니의 문제(콤플렉스), 아버지의 문제(콤플렉스)를 내면화하게 된다.
그래도 6세를 지나 아동기를 살면서 어머니 아버지는 여전히 오류가 없는 5미터 거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아이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지나게 된다.
그때부터 청소년은 내면의 통제할 수 없는 분노와 상처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야 하는 이유는, 알고 보면 어머니의 문제, 아버지의 문제를 안고 살아오다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자각하면서 밖으로 투사해야 하는 분노와 상처들 때문이다.
그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내면 안에 내재된 부모의 문제를 벗어버리기 위해 아버지의 것은 아버지에게로 되돌려 주고, 어머니의 것은 어머니에게 되돌려 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춘기 자녀는 부모를 향해 엄청난 공격성을 드러낸다.
부모를 향해 공격성을 직접 발휘하지 못하는 청소년은 반사회적 경향성을 드러내면서 이런저런 모양의 사고를 일으킨다.
이것이 사춘기에 존재론적으로 발생하는 잡음이다.
사춘기를 지내면서 아무런 공격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아이는 건강하지 못하다.
분노를 억압하고 부모의 권위에 순종하는 모범생으로 사춘기를 지내는 청소년은 그다음의 인생 여정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다.
자신이 힘이 있는 위치에 서게 될 때, 그는 갑질을 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약한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그동안 억압해 온 분노와 상처를 드러낼 것이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는 청소년은 각종 잡음을 표출함으로써 부모에게서 받은 각종 문제들을 떨쳐버리고, 자신만의 고유한 존재로서, 고유한 삶을 살아가는 방향성을 정해 간다.
이런 불편한 과정을 거치면서 청소년은 자기 정체성을 확립해 간다.
청년기가 되면 이성교제를 하면서 자신 안에 잠재해 있던 여성성과 남성성을 '빛이 있으라'는 내면의 명령을 수행한다.
여성은 자신의 남성성에 걸맞은 남성을 찾아 아니무스(남성성)를 투사한다.
남성은 자신의 여성성에 걸맞은 여성을 찾아 아니마(여성성)를 투사한다.
두 남녀는 심혼(아니마, 아니무스)을 투사할 수 있는 대상을 찾아 환상의 틀 안에서 결혼한다.
결혼할 때만 해도 그들은 천년만년 아무 문제 없이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각자 아니마와 아니무스가 걷히면서, 환상을 투사하며 봤던 배우자가 더 이상 환상적 존재가 아니며, 배우자의 현실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발견해 간다.
"빛이 있으라" 했던 빛의 질서가 물러나고 부부관계 안에는 온갖 잡음으로 가득 찬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면서, 그 가정은 두 사람의 유아기부터 비롯된 잡음들이 집결되는 가장 안전한 장소가 된다.
결혼 전에 매력적으로 보였던 배우자는 자신의 잡음을 드러내기에 가장 적절한 대상을 찾았던 것이다.
결혼은 각자의, 그리고 서로를 위한 성숙을 위한 검투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