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 심리조작
영화 <가스등>에서 그레고리 안톤(Gregory Anton )(Charles Boyer 분)이 그의 아내 파울라 알퀴스트(Paula Alquist, Ingrid Bergman분)에게 여러 모양으로 그녀의 인식을 조작한다.
영화 내내 Gregory는 Paula를 건망증과 망상에 빠진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일련의 기만적인 행동을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집안의 물건을 몰래 옮기고, 그녀에게 어떤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하고, 그가 실제로 숨긴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그녀를 비난한다.
그레고리는 그녀의 마음속에 의심의 씨앗을 심고 그녀의 정신적 안정이 약해지고 있다고 확신시킨다.
이 가스라이팅의 대표적인 장면은 부엌에서 일어난다.
이 장면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부엌의 가스 등을 사용하여 조명을 어둡게 하고, 그녀가 조리하는 동안 가스 등의 빛이 꺼져 있다며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러면서 남편은 가스 등의 문제가 Paula의 상상력에 의한 것이라 주장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남편은 아내를 자신의 말에 의존하도록 만들고, 그녀의 정신적 안정을 흔들어 놓는다.
영화 내내 그레고리는 파울라를 건망증과 망상에 빠진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일련의 기만적인 행동을 한다.
한 번은 그가 집안의 물건을 몰래 옮기고, 그녀에게 어떤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가 실제로 숨긴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그녀를 비난한다.
그는 또한 자기 의심의 씨앗을 심고 그녀의 정신적 안정이 약해지고 있다고 확신시킨다.
이 영화는 남편이 아내에게 행한 사건을 끊임없이 심리적으로 조작한다.
그리하여 이 영황에서 "가스라이팅"이라는 용어가 파생되었다.
이러한 가스라이팅의 장면은 영화에서 아내의 정신적인 약점을 이용하고, 그녀를 자신의 의지대로 조종하려는 남편의 음모를 보여준다.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영화 <가스등>은 가스라이팅의 개념과 효과를 강조하며, 이는 심리적인 조작과 권력 남용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영화에서, Gregory가 사용하는 가스라이팅 기술은 Paula 내부에 심리적 혼란을 일으켜 현실에 대한 자신의 인식에 의문을 제기하고 궁극적으로 그녀를 지도에 의존하게 만든다.
Gregory는 아내 Paula에게 가스라이팅을 가함으로써 그녀의 정신적 안정을 흔들고 자신의 말에 의존하도록 만든다.
이를 통해 그는 Paula를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게 하고, 그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그녀를 조종하려고 한다.
그레고리의 최종 목적은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의 보석 상자에 숨겨진 가치 있는 보석을 탈취하는 것이다.
그는 Paula의 건강 상태와 정신적 불안을 이용하여 보석 상자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여러 기회를 노린다. 그의 가스라이팅은 이를 위한 방법 중 하나이다.
따라서 영화 <가스등>에서 남편의 가스라이팅은 그의 이기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는 아내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녀를 조종하며, 가치 있는 보석을 탈취하려고 한다.
Gregory의 일차적 목표는 Paula의 정신적인 굴레를 통해 보석을 훔쳐내는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그를 위해 필요한 도구 중 하나로 작용하며, Paula를 혼돈과 불안정성에 빠뜨리고, 그녀의 인식을 왜곡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녀를 통제하려고 한다.
Gregory의 이차적 목표는 Paula의 의지를 굽히고, 남편에 대한 의존성을 높여 아내가 남편의 의도에 맞게 행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 자신의 아내가 자기 존재로 살지 못하게 만들고, 남편 자신의 존재에 맞춰 살도록 심리를 조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편은 아내를 노예로 만들어 자기 마음대로 조정하며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가스라이팅이 발생하고 있지만, 그것의 실체를 알지 못해 뻔히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경우가 많다.
누구나 잘 아는 대한항공의 땅콩회항사건이 있다.
그렇지만 그 일의 피해자가 매스컴을 타면서 입장이 바뀌게 되자, 그 피해자가 다시 가해자 위치에 서게 되면서, 그도 역시 가스라이팅으로 해 온 사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한다.
대한항공의 실력자는 단 한 차례, 과격한 가스라이팅을 하였다면, 그 피해자는 입장이 바뀐 후 지속적으로 가스라이팅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박사 공부를 해 보니, 수업할 때의 교수와 논문 심사할 때의 교수는 같은 인물이라고 해도 입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논문심사 교수는 논문심사하는 동안만큼은 절대 갑의 위치에 서게 된다.
잠시 신의 전능성을 맛보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다
석사든, 박사든 학위 공부를 해 보고 논문 심사를 받아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교수의 직을 수행하면서 수업을 진행할 때도 학점을 주는 권한을 가진 자로서 갑의 위치에 있기도 하지만, 논문 심사라는 위치는 절대 권력의 자리를 일평생 중 극히 드문 경험을 하게 될 때, 갑자기 갑질을 하는 모습에 크게 시달렸던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교수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상황에 따라 급작스럽게 태도를 바꾸는 논문심사 교수의 내면의 콤플렉스를 보게 되는 계기를 가지게 되었다.
부부관계에서도 크고 작은 가스라이팅이 많이 일어난다.
과거에는 남편에 의해 피해를 당하는 아내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그 반대현상도 일어나는 것 같다.
자신이 당하는 것이 가스라이팅인 줄 모르고 지내다가 갑자기 남편에게 저항하면서 자신도 예기치 못한 극한 행동을 하게 되면서, '내가 이상해졌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결과 정신병원 폐쇄병동까지 들어가야 하는 상황으로까지 전개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내가 이상해진 것은 맞지만, 내가 이상하게 된 것은 그만큼 내가 배우자로부터 지속적인 가스라이팅을 당해 왔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부모 자식 간에도 가스라이팅이 많이 발생한다.
부모의 가스라이팅을 인지하지 못한 채, 순종만 하다가 조현병을 일으키거나 가출을 하는 등의 누구도 원치 않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개중에는 부모의 가스라이팅에 저항하여 일탈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 폭력의 가해자는 부모의 가스라이팅에 당한 결과, 그 보복을 자기보다 약한 친구들에게 또 다른 형태의 가스라이팅을 행사하는 것이다.
학교 폭력의 피해자 역시 평소 부모의 가스라이팅을 많이 당해 온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
부모에게 온전한 사랑을 받은 자녀라면 결코 호락호락당할 리가 없다.
가해자나 피해자나 모두 가스라이팅의 피해자이며, 이들 피해자나 가해자나 모두 가스라이팅을 재생산하게 되어 있다.
최근에는 가족 간에 가스라이팅이라는 사실이 일찍 감지되어, 가족의 폭력을 막기 위해 경찰을 부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맞는 아내를 대신해서 자녀가 경찰에 신고하고, 무소불위의 아버지의 권력에 맞설 힘이 없어 경찰의 힘을 비는 아들의 판단도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