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지옥(10): 꼰대의 조건

방탄 노년단


내가 꼰대라고?


내가 중학교 다닐 때, 학생들은 선생님을 비하해서 부르는 단어가 바로 '꼰대'였다.

대부분 학생들은 '꼰대'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었다.

당시 범생이었던 나는 학생들이 선생님을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매우 못 마땅했다.


그런데 선생님을 꼰대로 비하하여 불렀던 그 세대가 젊은이들로부터 그대로 되돌려 받는 용어가 되어 버렸다.

젊은 세대가 나이 든 세대를 공격할 때 반드시 들어가는 비난 중에 제일 으뜸으로 나오는 단어가 바로 '꼰대'이다.

선생님을 비하하였던 그 죄과를 그대로 되돌려 받는 꼴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어떤 유튜버가 꼰대를 이렇게 표현했다.


"입력은 없고 출력만 있는 사람이다."


매우 일리 있는 말이라 생각한다.


꼰대의 조건


꼰대라는 말은 세대차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용어인 것 같다.


조선 시대에는 증조할아버지나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에 이르기까지 세대차가 별로 없었다.

대가족 제도 안에서 여러 세대가 한 집안에 공존한다 할지라도, 그들의 살아가는 삶의 가치관과 목표, 이상, 기준은 동일했다.

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가 공존해도 각 세대가 안고 살아가는 시대정신은 동일했다.

그들의 일차적 목표는 과거시험을 통과하는 것이고, 그다음에는 관리가 되는 것이었다.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가치는 유교정신에서 찾았다.

그들의 학문적 가치는 오늘날같이 다양하지 못해, 오로지 성리학을 배우고 익히는 데에 있었다.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국시로 삼았고, 그 방법론으로 훈고학(한, 당)과 고증학(청)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어른의 말씀은 늘 권위가 있었고, 윗대일수록 말씀에 더 큰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추구하는 것 역시 옛 성현의 말씀일수록 더욱 깊이 새겨 들어야 하는 말씀이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40대 이전 세대일수록, 이러한 유교적 정신을 이데올로기로 뒤집어쓰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현재 60대 부모와 30대 자녀, 50대 부모와 20대 자녀, 40대 부모와 10대 부모가 남모를 세대 갈등에 휩싸이고 있다.

그들은 그런 갈등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생각조차 하기 싫다.


그래서 두 세대의 사고는 딱 정해져 있다.

부모 세대는 자녀 세대가 인사성 없고, 버릇없으며, 어른들의 말씀을 물로 안다고 생각한다.

많은 부모들이 다 키운 자녀로부터 효도를 바랄 수 없고, 더 이상 어른으로서 권위나 훈계가 통하지 않는다고 한탄한다.

부모들은 인사성 없는 자녀들 걱정스럽다.


"인사라는 것은 사회생활의 기본이고, 인사를 잘하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게 되어 있다"


고 주장한다.

이런 사고를 가지고 젊은 세대를 향해 한탄해하고, 한숨을 내쉬고 있다면 그는 이미 꼰대가 된 것이다.


말하자면, 그런 부모는 30~40년 전에 입력된 자료를 가지고, 지금 2020년대에 출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강박증 환자의 고통


약 15년 전에 나를 찾아온 강박증 환자가 있었다.

그는 10대 독자인 아버지 슬하의 둘째 아들이었다.

그의 가문은 99칸의 방을 가진 유서 깊은 한옥을 가진, 꽤 명망이 높은 명문가였다.

유교정신에 선비정신까지 받들고 살아온 아버지의 훈계는 환자의 어린 시절부터 유일한 가치관이자 세계관이었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했고, 아버지의 훈계는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명령과도 같았다.


거기다 어릴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서 중등부에 들어가면서 율법주의에 가까운 전도사님의 율법적 설교에 매어 '나는 죄인이다'라는 개념이 너무 가깝게 다가왔다.

율법을 조금만 어겨도 죄책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청소년 내담자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책을 읽고자 문장을 읽으면 한 단어 한 단어가 벽돌처럼 느껴지고, 한 단어를 읽으면 경직된 사고가 들어와 그다음 단어를 읽을 수가 없다.

그래서 책을 읽어도 의미 파악이 불가능했다.


이 아들은 아버지가 50년 전에 입력한 유교적 자료들을 가지고 나와서 '예의 바른 사람'이 되기를 종용했다.

교회 전도사님은 2000년 전에 입력한 율법적 사고를 이 청소년에게 주입을 하였다.

두 권위자는 이 청소년이 자기 시대에 맞게 현실을 살아가게 만드는 데 실패했다.


예의, 효도를 바라지 않는 자녀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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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흐름, 시대정신의 상이성을 이해하지 못해 가장 힘들어하는 한 사람을 꼽으라면, 그것은 북한의 김정은이다.

북한은 우리 사회처럼 문명이 발달한 곳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몰래 비밀리에 접하는 한류의 영향이 10대, 20대의 정신세계를 바꿔 놓았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김일성 우상화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70년 전에 입력한 우상화를 4차 혁명을 기다리는 세대에 심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요즘 부모 세대와 자녀 세대에는 서로가 납득할 수 없는 세대차가 있다.

그래서 두 세대 간에 대화가 단절된 집안이 많다.

이런 집안의 자녀들은 오히려 건강한 것이다.

만일 아버지 세대의 가치관을 자녀에게 훈계할 때, 그 훈계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는 자신의 시대를 생동감 있게 살아가기는 힘들다.

자신의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기거나 부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살아가는 자녀가 있다면, 그 자녀는 현실을 살아가기 힘들다.


나도 내 자녀와 이견이 생기고, 동일한 상황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다를 때 매우 당황스럽다.

이제 나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자녀가 나와 다르게 살아가는 것이 정상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

이제 부모는 어떻게 하면 내가 늙어서도 자녀의 신세를 지지 않고, 부담이 되지 않게 되기를 연구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교회의 가르침과 너무 다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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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얼마 전에 부모 걱정하고 부모 훈계에 따라 사느라 현실을 살아가지 못하는 청년에게 다음과 같은 처방을 내렸다.


부모에게 불효하라


그 말을 들은 그의 어머니가 항의차 내게 전화를 했다.

나는 그 청년의 정서적 어려움, 현실로 나가지 못하는 데는 부모에 대한 철저한 효도 개념 때문이라는 설명을 잘 해냈다.

그때 그의 어머니는 나의 모든 말에 대해 이해할 뿐 아니라, 공감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질문을 했다.


"교회에서는 효도를 가르치는 데 이런 모순을 어떻게 하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답했다.


"지금 부모세대, 그리고 그 윗 세대들은 효심이 없어도 효행을 잘 실천하였지만, 지금 자녀세대는 부모세대보다 사랑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효심이 있습니다. 효행을 하지 않을 뿐, 그 마음속에는 부모에 대한 효도하는 마음을 늘 가지고 있을 겁니다."


지옥으로 살아가는 부모세대


이런 시대를 바라보며 내가 부모에게 행했던 것을 내 자녀에게 기대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해 크게 실망하는 부모가 많아지고 있다.

어쩌면 지금 부모세대는 단군이래 가장 행복한 시대를 산 사람들일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자녀 세대는 자신들의 부모보다 더 가난한 생활을 영위해 가야 할 것이다.

국민소득이 높아진다고 해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 소득이 높아질수록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하고, 혼자서는 안되니까, 함께 맞벌이를 해야 겨우 생존할 수 있게 되는 시대를 자녀들이 살아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많은 재산을 물려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자녀들은 어른이 되어도 자신의 부모를 돌볼 여력이 없다.


이 시대의 과제는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서로로부터 독립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달려 있다.

부모세대는 자녀를 통해 영광을 얻을 생각을 멈춰야 한다.

오늘날 부모는 자녀가 자기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방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서 부모의 미래는 지옥일 수 있다.

부모가 자녀의 안녕을 위해 지옥살이를 감수하는 것은 마땅한 것일 수 있다.


방탄 노년단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를 보면서 한국의 중년인들은 놀라운 발상을 해 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이 생각처럼 진행되지 않게 되면서 수많은 병력 손실이 발생했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계속적으로 징집하여 죽음의 현장으로 몰아가 이러다가 세대단절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한국의 중년들이 어느 날 함께 식사를 하면서, 조직을 하나 뚝딱 만들어 냈다.

그것은 바로 '방탄 노년단'이다.


만일 우리나라에 전쟁이 나면, 젊은이들을 징집하여 죽음으로 몰아넣을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만큼 산 중년, 또는 노인들이 전쟁터에 나서 싸우자는 것이다.

젊은이들은 생산의 일에 참여하고, 늙은이들이 대신 전쟁터로 나가겠다는 말이다.

55세에서 75세까지 남녀를 불문하고 가입하여 젊은이들을 대신하여 노인들이 나라를 지키자는 것이었다.

목표를 100만 명을 모집하여, 자기 돈으로 훈련받고 국가에서는 훈련 중에 총기류만 제공하여 국가 안보에 앞장서자는 이야기이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지 말고, 그 사지로 아버지들이 자녀들을 대신해서 들어가서 싸우자는 것이다.

부모세대가 자녀세대를 대신하여 지옥을 감당해 내자는 말이다.


이런 사고의 발생이야 말로, 꼰대정신을 뒤 업는 획기적인 발상이다.

이런 어른들은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되면, 아마도 젊은이들도 어른들에 저항하는 단어인 '꼰대'라는 단어도 철수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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