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시대 젊은이들의 성적 가치관 변화
내가 20대 중반에 처음 직장에 입사하였을 때 과장님과 부장님이 모두 나의 대학 선배이셨다.
신입 사원 때 과장님을 보면서,
"아하 ~ 내가 10년 후에는 저 자리에 앉아 있겠구나"
해서 정말로 10년 후에는 딱 그 자리에 앉게 되었다.
과장이 되면서 부장님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했다.
"내가 10년 후에는 저 자리에 앉아 있겠구나"
그 이후 몇 년 후에는 사직을 하고 지금의 길로 들어오게 되었지만, 만일 진짜 10년 후에 부장의 자리에 앉았을 때, 그다음의 목표는 분명히 없었을 것이다.
20대의 목표는 30대의 선배와 경쟁하는 것이고, 30대에는 40대와 경쟁하며 나를 사회적 지위를 상승시켜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50대가 되었을 때, 과연 나의 경쟁상대는 60대일 수 있을까?
그렇다면 60대가 되었을 때 내 경쟁 상대는 70대일 수 있을까?
아니다.
내가 60대를 넘어서면서 나의 경쟁상대는 20대 또는 30대가 되었다.
나이 50이 되었을 때 이미 나의 인생선배들은 세상에 대해서 나보다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제 내가 배울 대상은 고개를 뒤로 돌려 자녀세대에게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꼰대는 바로 이런 방향틀기를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요즘 20대와 30대를 보면, 인생을 다시 배워야 하고, 세상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더 이상 내 시대의 가치관으로 이 시대를 보면 꼰대가 될 수밖에 없고, 젊은 세대와는 의사소통이 단절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요즘 자녀들에 대해 어느 것 하나 이래라저래라 해서 잘 된 경우가 없다.
내 판단보다 자녀들의 생각과 판단이 훨씬 탁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4차 산업혁명은 젊은 세대를 사로잡은 기술 발전의 물결을 불러왔다.
그 물결이 얼마나 거센지 나로서는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이다.
그렇지만 자녀들 세대를 보면, 그들은 거센 물결을 힘겨워하기보다는 오히려 유유자적하게 즐기는 모습이다.
21세기에 접어들면서 과거의 가치관, 특히 유교에 기반을 둔 가치관이 새로운 신념과 행동으로 서서히 대체되고 있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한 가지 눈에 띄는 변화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관계와 성적 본능에 대한 태도가 진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수세기 동안 동아시아 전통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유교는 도덕적 가치, 위계질서, 권위에 대한 존중을 강조해 왔다.
유교적 시대에는 젊은이들이 덕을 추구하고 관계에서 헌신과 신의를 지키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특히 성윤리는 유교적 사회에서는 그 사람의 존재 가치를 판단하는 중요한 판단기준이 되었다.
그래서 결혼의 조건으로 <혼전순결>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남성보다는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상담을 하면서 20년 전부터 제일 조심하는 부분이 바로 성윤리에 관한 것이다.
20년 전, 즉 새천년 이전에는 성적인 문란함은 상담의 중요한 주제가 되었을지 모른다.
만일 요즘 그런 상담을 하다가는 상담자는 쉽사리 고소를 당할 수 있다.
요즘 만일 20대 여성 청년이 상담을 왔다면, 20대 여성 10명 중 절반이상은 남자 친구와 만날 때마다 섹스를 즐기는 것을 일상적인 데이트 코스로 생각하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20대 30대 미혼자의 경우 성교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도구로 삼고, 헤어질 때도 쿨하게 헤어지면서 그동안 행했던 성교에 대해서는 서로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 뿐 상처로 기억하지 않는다.
이런 경향성은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 되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정신은 과거 유교적 가치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개인주의를 장려하여 과거의 구속적인 전통에 도전하고 있다.
관계에 대한 젊은이들의 태도에서 눈에 띄는 변화 중 하나는 성적 본능에 대한 접근 방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새천년 이전에는 남성들이 자기는 그렇지 못하면서 여성들의 순결과 자제력을 발휘해 줄 것을 강요했다.
그 당시 남성들은 결혼 전 성적 만족을 위해 수많은 여성들을 성적으로 섭렵하면서도 자신의 아내가 될 여성만큼은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새천년 이전에는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성적 자제력을 강요했다.
그래서 여성이 성적 자제력을 가지지 못하면, 그런 여성을 '문란한' 여성, '걸레 같은' 여성이라고 비하했다.
그것은 남성은 성적 자제력을 갖추지 못했으면서,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었다.
새천년으로 넘어오면서, 페미니즘의 도전을 받아들이면서 가부장적 질서가 많이 무너지게 되었다.
확실한 것은 전통적인 성규범이 해체되면서 여성은 더 많은 주체성을 갖게 되었고, 자신의 성에 대해 스스로 탐구할 수 있는 자유를 얻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연애 파트너가 더 자주 바뀌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여성의 내면이 남성보다 본질적으로 더 많이 파괴되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과거에는 여성들이 남성과의 성적 측면을 궁합으로 판단했지만, 요즘은 직접 성교를 통해 확인한다.
그렇다고 요즘 여성이 과거 여성보다 타락했다느니 문란하다느니 하는 판단의 잣대를 대지는 말자.
오히려 여성은 과거보다 주체성이 더욱 분명해졌고, 더욱 솔직한 인간성을 가졌음이 확인된다.
사회적인 측면을 보면, 여성들의 이러한 도약으로 도덕적 기준은 더 높아지고, 남녀평등 수준 또한 매우 팽팽해졌다.
4차 산업혁명은 가치관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변화하는 사고방식을 배양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기술은 전례 없는 수준의 정보 가용성과 연결성의 문을 열었다.
소셜 미디어 플랫폼, 데이팅 앱, 온라인 커뮤니티는 젊은이들이 자신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새로운 관점을 발견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었다.
이러한 디지털 환경은 젊은이들의 가치관에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을 모두 미친다.
한편으로는 탐험과 자기표현을 장려하고 전통적인 사회적 규범을 해체한다.
반면에 즉각적인 만족, 단기적인 관계, 잠재적으로 취약할 수 있는 인간관계에 집중하는 데 기여할 수도 있다.
꼰대는 과거 오래전 유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입력한 것을 가지고 현대 디지털 시대에 출력하는 사람이다.
과거에는 지식 장악력이 어른에게 있었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지혜자로 추앙을 받았다.
어른의 가치관을 가지고 젊은 세대의 사고와 행동을 판단해서는 안 된다.
어떤 내담자가 내게 자신의 아들에 대한 불만을 쏟아냈다.
"우리 아들은 얼마나 까칠한지 자기 방에 노크를 안 하고 들어 들어왔다고 불을 쏟아내면서 화를 내더라고요. 그래도 내가 지 엄만데, 노크 없이 지 방에 들어왔다고 그렇게 불을 뿜으면서 화를 내느냐고요. 정말 이해가 안 돼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들이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아들이 원하는 것이 뭔지를 파악했으면 그대로 존중해 주세요."
이미 시대정신이 다른 아들 세대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오늘날 젊은 여성들이 성적 주체를 찾아감으로써 사회적 수준은 더 높아졌고, 남녀 모두 개별의식이 더욱 선명해져 가고 있다.
여성들의 성적 도약은 도덕적 판단, 종교적 판단의 대상이 될 수는 있으나, 이제는 더 이상 판단하지 말자.
그 자체로 존중해 주고 이해하자.
그래야만 4차 혁명의 맥락에서 행복, 자기표현, 의미 있는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미묘한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다.
어른들은 자기 시대에 집단정신에 맞는 내러티브를 만들어가던 습관에서 벗어나, 젊은이들이 각자의 내러티브를 어떻게 구성해 가고, 어떻게 완성해 가는가를 지켜보자.
그렇게 되면, 우리는 자기 시대를 살아갈 뿐 아니라, 그다음 세대도 경험하는 소중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