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H 씨는 다른 사람을 돕는 일에 평생을 바쳤다.
그는 자신의 로펌을 비즈니스뿐만 아니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믿었다.
수년에 걸쳐 그의 회사는 성장했고 자선 활동에 더 많이 기여할 수 있는 능력도 커졌다.
직원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H의 문은 항상 열려 있었다.
그는 그들의 문제에 귀를 기울이고 확고한 지원을 제공했으며 종종 그들이 돌볼 수 있도록 추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H의 친절함은 직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는 소셜 미디어나 뉴스를 통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그들의 상황을 해결하는 데 아낌없이 상당한 재정적 지원을 제공했다.
옛 고향에서 H의 도움의 손길은 결코 멀지 않았다.
그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형제, 친척, 친구, 심지어 이웃까지 지칠 줄 모르고 도와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패턴을 발견했다.
그의 지속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그가 도운 사람들 중 누구도 지속적인 부를 얻거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가 그동안 도움을 주었던 사람으로부터 기대했던 감사는 어느새 불평과 비판으로 바뀌었다.
30년 동안 도움을 받은 후에도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재정적 어려움에 대한 책임이 그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들의 불만은 H가 일관성 있게 자신들을 도와주지 않았으며, 또한 효과적으로 도와주지 않아 H의 지속적인 도움이 오히려 자신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
끊임없는 비난은 H에게 부담이 되었고, 자신의 노력이 정말로 도움을 받은 자들에게 변화를 가져왔는지 의문이 들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법률 회사 내에서는 분노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H 씨의 무상 지원을 받지 못한 측에서는 그의 의도를 오해해 H 씨가 편애하고 회사의 결속력을 약화시킨다고 비난했다.
이로 인해 한때 단단했던 조직 내에 긴장과 균열이 생겼다.
불행하게도 H의 사심 없는 헌신은 그의 개인적인 삶에도 큰 타격을 입혔다.
그는 자신의 가족의 안녕을 무시하고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끊임없이 그들에게 희생을 요구했다.
아내가 불만을 표시하면, 그는
"그래도 우리 형편은 그들보다 낫잖아."
"우리는 먹고 살만 하잖아."
라며 불만을 무마해 왔다.
그의 결혼 생활에 대한 부담은 부인할 수 없었으며 정서적 피로가 가족의 유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아이들은 아버지가 사랑하는 사람보다 낯선 사람을 우선시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어 아버지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큰 아들이 결혼할 때 H 씨가 낼 수 있는 지원금은 고작 5000만 원에 불과했다.
회사에서 그의 불규칙한 재무관리는 결국 회사의 재정을 고갈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회사를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H 씨는 가족의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H는 일과 사생활이 동시에 붕괴되기 직전의 기로에 섰다.
그는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직시하고 가족과 회사 내에서 의도치 않게 훼손된 신뢰를 재건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지금은 회사와 가정, 어느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한쪽도 무너질 최악의 상황이 찾아왔다.
왜 그는 그렇게 이타적이어야 했는가?
그의 무의식을 살펴 본 결과,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는 그래도 형편이 좋아서 좋은 양육을 하였지만, 형과 누나는 핍진한 삶을 살 때라, 어머니는 늘 그들에게 좋은 것을 주지 못한 죄책감을 항상 안고 있었다.
H는 어머니의 이러한 생각을 투사적 동일시라는 정신기제를 사용해 유아기부터 항상 마음에 새겨왔을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 속에 첫째, 둘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죄책감을 H가 투사적 동일시 과정에서 그대로 가져왔다.
어머니의 죄책감은 H에게 '네가 잘되면 다른 형제를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유아기부터 심어 줬다.
어머니의 죄책감을 어떻게 H에게 심어 줄 수 있었는가?
아기는 엄마의 삶과 감정과 속으로 하는 생각들을 그대로 딥-러닝 한다.
그래서 아기는 어머니의 품안에서 어머니가 일평생 살아온 삶의 천국과 지옥을 맛본다.
H의 이타심은 어머니와의 뿌리 깊은 무의식적 연결과 형들이 직면한 재정적 어려움에 대해 느끼는 죄책감에서 비롯된다.
H는 유아기부터 어머니의 생각과 감정을 접했고, 자신이 더 나은 삶을 누리는 동안 형과 누나가 겪은 고난에 대해 유아기부터 무의식적으로 자각해 왔다.
H는 투사적 동일시라는 심리적 메커니즘을 통해 어머니의 죄책감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을 유아기부터 내면화해 왔다.
이 과정에는 다른 사람의 경험과 감정을 흡수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과 행동을 형성하는 과정이 포함된다.
H의 어머니가 H의 형과 누나에게 H를 잘 돌보듯이 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의 죄책감은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고스란히 H의 무의식적 감정으로 전달되었다.
그 죄책감은 H로 하여금 자신의 상황과 형/누나의 상황의 격차가 발생할 때 경제적 수단으로 보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다.
그러한 죄책감과 그에 대한 보상심리는 H의 가치관이 되고 인생관이 되었다.
이러한 죄책감에 기반한 공감은 H로 하여금 형과 누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 이웃, 친척, 회사 직원들까지 확산되었다.
H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을 때 죄책감을 느끼게 되고, 자기 주변에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베풀게 됨으로써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성취나 소유물을 완전히 포용할 수 없었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베풀고 싶은 충동을 끊임없이 느꼈다.
그럴 때마다 유아기에 어머니와 H자신의 관계에서 일어났던 투사적 동일시가 형/누나를 도와야 한다는 사고를 하게 되며, 형/누나의 자리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에게 또한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는 것이다.
어머니의 감정과 경험이 H의 정체성에 투사된 것은 그의 사심 없음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그것은 그의 가치관 및 세계관이 되었다.
이러한 가치관에 입각한 그의 이타적인 삶은 자신과 가족을 희생하며 남을 돕는 패턴을 만들어냈다.
사람은 자기 사랑이라는 빈 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 빈 그릇에는 자기 사랑으로만 채울 수 있다.
유아기일수록 사람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랑이 충분히 채워져야 한다.
아기는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절대 어머니의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아기가 울면 온 가족이 달려들어 아기가 처한 문제가 뭔지를 살피고 아기가 안전해 지기까지 돌본다.
이 과정에서 온 가족은 아기의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애'에 적응한다.
아기는 누구의 사정도 봐주지 않는다.
이에 대해 어느 누구도 불만을 가지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한다.
아기가 그 가정의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아기는 이런 과정에서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의 충분한 사랑과 공감을 받게 되고, 그 사랑이 어느 정도 충만해지면 자기애라는 빈 그릇이 채워지게 된다.
이렇게 채워진 자기애를 하인즈 코헛(Heinz Kohut, 미국의 자기심리학자)은 '일차적 자기애'(primary narcissism)이라 부른다.
일차적 자기애가 채워진 사람은 성인이 되어 남을 도울 때 자신 안에서 넘치는 사랑으로 돕는다.
이렇게 돕는 사랑은 절대 후회함이 없다.
그런데 H와 같이 자기애를 충분히 채우지 못한 채 남을 돕고 돌보고 재정지원을 하고 후원하는 등의 여러 자선 행위를 하게 되면, 갈수록 스스로를 고갈시킨다.
H는 그동안 넘치는 자기애로 이웃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채워지지 않은 자기애를 퍼내어서 베풀게 되었다.
그렇게 베푸는 사랑은 자신의 내면을 고갈시킨다.
H는 이런 사례의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한다.
그 자신이 피폐해졌을 뿐 아니라, 가족을 고갈시키고, 그가 세운 회사의 재정도 고갈시켰다.
나는 그에게 두 가지 돌파구를 제안했다.
"가정을 희생하고 회사를 살린 것인가, 아니면 회사가 망해도 가정을 살릴 것인가?"
이런 제안에 H의 고민은 깊어져 갔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남자가 세상에서 아무리 높아지고, 많은 재물을 쌓고, 업적을 쌓아 명성을 떨치고 존경을 받아도 그로 인해 아내와의 관계를 바르게 세우지 못했다면 그 남자는 인생을 잘 못 산 것입니다."
결국 그는 회사보다 가정을 선택했다.
이혼을 요구하는 아내의 마음을 달래고 부부관계를 다시 설정해 가기로 결심했다.
그런 방향으로 마음을 굳힌 그에게 또 하나의 희망을 주었다.
"만일 회사를 살리느라 가정을 희생하면 다 함께 망할 수 있지만, 가정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면 가정을 살리는 마인드로 회사를 소생시킬 수도 있습니다."
H는 나의 이 말에 큰 힘을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