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와 창조(1): 놀이에 대한 철학적 견해

사람은 놀아야 해!!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


탐구자 : 분석가께서는 중간 대상에서 장난감의 세계로 넘어가는 중에, 부드러운 대상에서 딱딱한 대상을 찾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장난감의 세계에서는 혼자서 놀이하는 세계에서 함께 놀이하는 세계로 확장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발달과정이 되겠군요.


분석가 : 그렇게 발달해 가는 것이 자연스럽죠. 중간대상에서 장난감 개념이 나오게 되고, 그 장난감은 놀이 개념을 만들게 되죠. 놀이 안에는 세계가 들어있고, 나아가 우주가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렇듯 놀이 현장은 바로 세계와 우주의 축소 현상을 일으키는데, 그런 현상은, 앞장에서 말했듯이, 세계와 우주에 대한 상징화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어머니에게서 중간대상으로, 그리고 장난감으로 넘어가면서 놀이 개념이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되는데, 놀이는 반드시 타자를 부르게 되어 있습니다. 놀이 세계 안에서 너와 나의 교환이 일어나고 I와 Self 사이의 교환이 일어납니다. 아이가 놀이를 할 때 그 놀이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 환경조성이라는 것은 바로 어머니가 옆에 있어 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아기가 혼자 놀 때, 옆에 어머니가 있는 조건 하에서 아이는 ‘홀로 있을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놀이에 대한 철학자들의 견해


철학자 : 철학자 폴 리쾨르는 놀이에 대해, 놀이 안에서 세계의 변형이 일어나며, 나아가 자아도 놀이적 변형을 경험한다고 말했습니다. 리쾨르는 아이는 놀이를 통해서 세계를 자기화(appropriation, 전유)시키는 것이며, 세계를 해석하는 주체가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리쾨르는 놀이세계를 자기 욕망을 실현하는 장이라고 보았는데, 아이는 놀이를 통해서 자신이 세계를 욕망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탐구자 :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도 어린아이의 놀이에 대해서 말한 적이 있지 않나요?


철학자 : 니체가 놀이에 대해서 직접 이야기를 한 것은 아니고, 놀이하는 아이에 대해서 언급한 적이 있죠.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첫 장에 인격발달 3단계가 나옵니다. 사람의 인격은 먼저 낙타단계에서 사자단계, 그다음에 어린아이의 단계로 발달한다는 것입니다. 낙타단계에서 낙타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순응하죠. 아무리 많은 짐, 무거운 짐을 올려도 묵묵히 순응하면서 모든 짐을 감당해 냅니다. 주인에게 낙타는 매우 충성스러운 동물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이런 인격을 가졌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착하다는 말을 들을 수는 있겠으나 자기 자신이 주체가 되어서 살지 못하게 될 뿐 아니라 남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인생으로 살 수 있을 뿐입니다. 니체에 의하면, 이런 사람의 인격이 발달하려면 다음 단계인 사자의 단계로 넘어가야 합니다. 사자는 거친 공격성을 가진 존재를 상징합니다. 낙타처럼 순응적인 사람의 인격이 발달을 위해서는 거칠게 공격성을 드러내는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이 시기에는 남을 찢어발기고 싸우고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늘 흥분된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본인도 힘들고 주변사람들을 함께 힘들게 만드는 단계입니다. 그런 단계를 거쳐야 그다음 단계인 어린아이가 되는 겁니다. 이 어린아이는 새로운 인격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놀이를 하는 존재입니다. 놀이를 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어야 하고, 놀이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놀이에 참여한 구성원들은 조직화 능력을 배우게 되고, 무엇보다 규칙을 만들어 낼 줄 알게 됩니다. 어린아이가 이러한 놀이 세계를 경험함으로써 비로소 외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심리적 구조를 만들어 내게 됩니다. 세상이 나아가기에 너무 크고, 정복해 나가기에는 지나치게 광대무변하게 느껴져도, 그런 놀이 세계를 경험한 아이는 세상의 크기에 압도당하지 않고 세상을 통제할 수 있는 상징화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니체는 이 어린아이가 바로 ‘초인’(Übermensch) 임을 암시합니다.


탐구자 :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저서 [정치학]에서 놀이에 대해 말하기를 ‘기분전환을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현대 철학자 중에 아이들의 놀이 세계에 가장 관심이 많은 사람은 가다머가 아닐까요?


철학자 : 네, 하이데거의 수제자인 한스-가다머(Hans-Georg Gadamer, 1900~2002)는 자신의 저서 [진리와 방법]에서 놀이에 대한 철학적 해석을 했는데, 그 내용이 위니캇의 견해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어요. 그의 스승인 하이데거는 각종 예술 작품을 접할 때 감상자에게 존재가 들어온다고 본 반면, 가다머는 놀이를 할 때 존재가 들어온다는 주장을 합니다. 두 철학자는 이런 식으로 존재론적 관점의 차이를 드러냅니다. 하이데거는 작가가 작품 안에 담아 놓은 존재가 감상자에게 일방적으로 들어온다고 본 반면, 가다머가 놀이를 통해서 존재가 들어온다는 말은 놀이자와 놀이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나면서 존재가 들어온다는 말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놀이를 ‘기분전환’ 정도로 말했지만, 가다머는 놀이함 그 자체에는 신성한 진지성이 존재한다고 봤어요( 190). 가다머는 신성한 진지성을 원시문화의 제식(祭式)에서 ‘성스러운 놀이’와의 연관성에서 찾고 있죠. 원시부족들은 자신이 존재하는 것과 놀이함 사이의 개념적 구별을 하지 못합니다. 결국 가다머는 어린아이의 놀이세계가 바로 그러함을 보여주는 것이죠.



현대인보다 높은 원시부족의 삶의 질 ; 놀이 덕분이야


탐구자 : 오늘날의 원시부족들은 발달한 나라들의 문화를 받아들이면 급속하게 발달을 이룩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원시부족에서 태어난 아이를 대한민국 어느 가정의 양자로 들어온다면 이 아이는 그 짧은 기간 중에 석기시대에서 디지털 시대로 순식간에 건너뛰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철학자 : 그들에게는 놀이가 그들의 사유방식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존재와 사유가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문명 속에서 존재와 사유의 불일치를 겪는 우리보다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우리 현대인들은 본능의 욕구와 삶의 욕망 사이의 괴리가 너무 커서 불행해지고 있지만 그들의 삶은 놀이 자체이기 때문에 본능과 삶이 상호 간에 괴리가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것입니다.


탐구자 :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놀이가 삶 속에 많이 들어오면 되겠군요.


철학자 : 그렇죠. 우리의 현실을 보면, 학생들은 공부 때문에 놀이를 뒷전으로 밀어냈고, 놀이 대신 게임이 삶 속 깊이 들어와 버렸습니다. 이런 삶의 패턴은 존재를 밀어내고, 사유할 수 있는 능력마저 빼앗아 버립니다. 그리하여 생각 없이 충동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탐구자 : 요즘은 놀이도 관리 차원이 되어 버린 것 같아요. 어떤 어머니는 자녀의 일주일 스케줄을 다 짜주는데 공부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적절하게 놀이나 게임을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집어넣어 주더라고요. 자녀는 어머니가 짜 준 스케줄대로 실행만 하면 되는 겁니다.


철학자 : 그렇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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