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공항이 나왔다. 일반적인 공항의 모습은 아니다. 공항 안에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한쪽은 국내선 플랫폼, 한쪽은 해외선 플랫폼이 있고 나머지 둘은 뭘 하는 곳인지 모르는 플랫폼이다. 나는 제주도로 가려고 티켓팅을 했다. 막상 들어가 보니, 제주도가 아닌 해외로 가는 플랫폼이었다. 나는 더 좋았다. 거기에 들어가서, 외국인 여성 2명을 만나 대화를 했다. 한 여성은 미국에서 온 여성이었고, 다른 한 여성은 내가 들어본 적도 없고, 그런 나라가 있을까 싶은 희한한 이름을 가진 나라의 여성이었다. 나는 영어가 서툴지만 아는 영어로 친하게 대화를 주고받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가 막 출발하려는 순간 잠이 깼다.
꿈 주인공은 30대 중반의 직장인이며 스포츠 복권 중독으로 상담을 청했다.
5년째 중독으로 많은 재물을 낭비했으며, 그동안 부모님이 목돈으로 수차례 갚아 줬지만 중독행위는 끊어지지 않았다.
지금은 친구, 직장동료에게 돈을 빌렸다 갚고를 반복하며 돌려 막기를 하고 있지만 중독증상의 지속적인 재연으로 복권을 사는 행위를 끊어낼 수가 없다.
주인공의 주변환경과 가족관계, 어릴 때의 양육환경 등을 점검해 본 결과, 나는 그가 겪는 증상은 중독이 본질이 아니라, 공격성의 억압과 불분명한 경계의 문제라는 초기 진단을 내렸다
나는 중독이 증상의 본질이라면 긴 기간의 치료가 필요하지만, 공격성 억압 및 경계의 문제로 이런 증상을 겪고 있다면 치료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내담자는 어린 시절 이후 한 번도 꿈을 꿔 본 적이 없었다고 하였으나, 나는 장담하건대 곧 꿈을 꾸게 될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 주었다.
그런데 세 번째 상담시간에 바로 이 꿈을 가져왔다.
내가 내담자에게 스포츠 복권 중독의 증상은 중독이 본질이 아니라고 진단한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신의 삶이 발전하지 못하고 답보적인 상황에 머물러 있어 더 이상 삶의 진전을 이룰 수 없어 나타난 증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예비 상담 외 두 번의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가족관계에서 중독의 원인이 될만한 뚜렷한 원인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한 요인이 될만한 질문들을 던졌지만, 해당되는 사항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상담의 방향을 바꾸기로 하였다.
증상을 추적하기 위해 무의식을 탐구하는 작업보다는 그냥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할 것을 권유했다.
그랬더니 내담자는 매우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나는 그런 이야기에 맞장구를 쳐 주는 정도의 반응을 해 주었다.
그런데 세 번째 상담에서 이런 꿈을 가져온 것이다.
놀라운 일이었다.
지금까지 경험한 다른 내담자의 경우 이런 꿈을 꾸기까지는 적어도 6개월~ 1년이 걸렸기 때문에 단 두 번의 상담을 했을 뿐이고, 특별한 이슈를 다룬 것도 아니었고 매우 일상적인 이야기를 다뤘을 뿐인데, 이렇게 삶의 중요한 변곡점을 맞이하는 꿈을 가져왔기에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를 통해 나는 내담자가 그동안 겪어 온 고통이 얼마나 컸으며, 그 고통이 자신의 내면을 얼마나 준비시켰는가를 느낄 수 있었다.
공항은 새로운 삶의 여정, 또는 새로운 내적 모험을 위한 새 출발점을 상징한다.
공항 플랫폼이 네 개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국내선이고 또 하나는 국제선이며, 나머지 두 개는 무슨 용도인지 알지 못하겠단다.
국내선은 자신의 내면에 대한 여행을 의미한다면, 국제선은 자신의 내면을 넘어선 외부 환경에 대한 여행을 의미한다.
제주도로 가는 티켓을 끊었는데, 해외로 가는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제주도라는 곳은 평소에 익숙한 곳이지만 의외로 제주도 가는 비행기 값으로 해외까지 가게 되었으니 횡재를 맞은 셈이다.
이것은 내담자가 상담에 대한 기대감과 다르게 나타나는 상담의 효과를 예측하는 장면이다.
이 상담에 대해 그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광범위한 치유 세계를 맛보게 되는 것에 대한 기쁨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그동안 살아오면서 미래를 꿈꾸어 본 적이 없고, 살아온 패턴에 갇혀 매너리즘에 빠져 새롭게 도전할 의욕도 새로운 목표도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복권중독으로 증상을 드러낸 것이다.
중독 자체가 마음의 병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중독은 무의식이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라고 하는 일종의 경고의 메시지에 불과했던 것이다.
두 번의 상담에서 특별한 상담 기법을 사용하거나 어떤 이론을 적용한 것이 아니라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뿐인데, 그의 무의식은 마치 이 상담을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을 하였다.
무의식의 반응은 꿈을 통해 매우 드라마틱한 변곡점을 제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는 사춘기 이후로 20년 넘게 꿈을 꿔 본 적이 없는 내담자에게
"분석을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꿈을 꾸게 되어 있어요."
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엄청난 변화를 지향하는 꿈을 꿔 온 것이다.
그는 분명히 제주도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그런데 막상 게이트를 들어가 보니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를 타게 된 것이다.
노선이 바뀐 것에 대한 느낌에는 불안은 없었고, 오히려 기뻤다.
나는 이렇게 노선이 바뀐 부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음을 언급했다.
첫째, 내가 그의 경제적 형편의 어려움을 감안하여 상담비를 저렴하게 책정한 것에 대해 가볍게 여기지 않고 귀하게 여겼다는 점이다.
둘째, 그가 이 상담에 대한 평가를 해 온 것보다 더 큰 효과를 바랄 수 있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해외로 가는 것은 지금까지 내담자 자신이 살아온 삶의 내용과 형태가 전혀 다른 매우 이질적인 영역으로 들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지금까지 너무 빤한 삶에 대한 회의와 지루함으로 중독으로 몰입되었다면, 새로움을 찾아가는 여정에서는 더 이상 매너리즘 빠져 중독적 행동을 할 이유가 없어지게 된 것이다.
외국인 여성을 만나 짧은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였다는 것은 이 꿈에서도 매우 극적인 장면에 해당된다.
꿈에서 남자가 동성을 만나는 것은 그 사람이 자신의 그림자임을 의미하지만, 이성을 만나는 것은 바로 여성성, 즉 아니마를 만나는 것이다.
남자에게 여성성은 삶의 생기를 주고, 새로운 활로를 터 주는, 자신의 내면 인격이다.
아니마의 등장은 오랜 세월 동안 외면해 오고, 억압되어 왔던 여성성이 자신의 삶에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다.
외국 여성으로 나타난 것은 그동안 여성성을 많이 외면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동안 무의식에 억압되어 온 여성성은 그만큼 이질적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짧은 영어로 외국 여성과 의사소통을 하는 데, 한 여성은 미국인이고 다른 여성은 전혀 알지 못하는 나라의 여성이었다고 한다.
미국 여성은 그동안 이질적이긴 하지만 자신이 필요에 따라 조금씩 사용해 온 여성 인격을 말한다.
나라 이름을 전혀 알 수 없으며, 마치 신비의 나라와 같은 느낌의 나라 여성은 그의 안에 있지만, 신비하고 깊이 숨어 있었던 여성 인격을 의미한다.
그는 지금 이러한 두 가지 여성성을 무의식 깊은 곳에서 의식세계 가까이 이끌어 낸 것이다.
그의 삶은 이제 새로운 활력과 생기로 채워져 갈 것이다.
일이나 작업을 해도 신바람 나게 할 수 있는 생생함을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더 이상 복권 중독에 시달릴 필요가 없어졌다.
내담자는 그동안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고, 인생 목표를 세워 늘 도전하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지 못했다.
부모에게서 받은 영향력이 그의 삶에서 끝나가고 있었고, 학교에서 배운 것을 사회적으로 응용해서 사회적 삶을 개척해 나가는 동력이 바닥이 나고 있는 상태였다.
그 결과 그에게 무엇을 하든지 욕망이나 의욕을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도박 중독에 한없이 빠져들었다.
그런데 이 꿈을 꾸게 됨으로써 그에게 활력을 주는 새로움이 내면 안에서 올라오기 시작했다.
공항을 통해 해외여행을 떠나는 그의 꿈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호기심이나 개방성을 열어 준 것이다.
짧은 영어로 여성과 대화를 나누고자 하는 시도는 자신의 내면세계와의 의사소통의 장벽을 넘어서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그동안 자신 안에는 새로움을 위한 어떤 동력도 자원도 없다고 생각해 온 것인데, 꿈을 통해 마치 그동안 땅에 묻혀 있던 지하차원을 캐낸 것처럼 삶에 신바람 나는 동기가 되는 여성성을 발굴해 내게 되었다.
이 꿈은 자신이 변화되어서 꾼 꿈이 아니라, 앞으로 삶의 변화를 가져올 요소들이 무엇이며 어떤 형태로 전개될 것인가를 미리 보여주는 꿈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의 꿈에는 공항 안에 '작은 공간'은 그의 내면세계가 너무 작다는 뜻이지만, 작다는 뜻은 앞으로 크게 발달해 갈 것에 대한 예고를 주는 힌트이다.
그리고 비행기가 출발하는 시점에 잠이 깬 것은, 아직은 멀리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니 '여기까지'라는 뜻이다.
이제 현실의 삶에서 새로운 도전을 위해 몸소 준비해야 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정말 여행을 떠나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꿈을 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항상 꿈을 연속성을 가진 시리즈로 꾸지는 않는다.
아마도 그런 내용은 다른 모양의 꿈으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