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자기(6): 일상에서 필요한 거짓자기

재능과 거짓자기

일상 속에서의 거짓자기


탐구자 : 뉴스나 신문을 보면 -위에서 말한 거짓 자기의 가면을 쓴 문화인까지는 아니지만 -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행동들, 각종 성적 사건이나 우발적인 범죄,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부정부패 등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많은 욕을 먹기 마련이잖아요? 하지만 곰곰이 살펴보면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아서 그런 것일 뿐, 속마음을 들여다보면 내가 만일 그 자리에 있었다면 나도 역시 그들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탐구자는 ‘페르소나(persona)’라는 단어의 의미를 아는지 모르겠어요.


탐구자 : 대충 짐작만 갈 뿐인 단어입니다. 사람의 외적 인격과 관련된 단어인 것 같은데요.


분석가 : 근접하게 알고 있는 겁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연극을 할 때, 한두 사람이 가면을 뒤집어쓰고 여러 역할들을 하게 되는데, 이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불렀어요. 원래 얼굴로 보면 같은 사람이지만, 가면이 바뀔 때마다 역할과 성격을 바꾸면서 연기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이 페르소나를 ‘사회적 가면’이라고 부르죠. 사회에서 나의 지위와 역할은 내 개인의 인격과 무관한 경우가 많은데, 그 경우는 페르소나와 나 자신과 괴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심리구조가 빈약한 사람은 페르소나를 자주 뒤집어쓰다 보면, 그 페르소나와 동일시된 삶을 살게 됩니다. 그 결과 그것이 나의 사회적 가면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사회적 모습을 마치 나의 본래적인 인격인 양 착각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럴 때 그런 모습은 바로 ‘거짓자기’를 자신의 ‘참자기’로 착각하고 사용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죠. 자신의 지위나 위치가 사회적으로 높아질수록 이런 착각의 수위도 또한 높아질 수 있습니다. 그런 현상은 자기 안에 미성숙한 자아를 돌보고 성장 또는 성숙시킬 생각을 못한 채, 사회적으로 높아진 자신이 본래적 자기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자신의 미성숙함은 페르소나가 빛나는 순간에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순간은 사람들이 본래적 나를 보지 못한 채, 나의 페르소나만을 바라보며 칭송하고 있기 때문이죠. 본래적 나와 페르소나 사이의 괴리가 클수록, 나의 미성숙함을 어두운 그림자 속으로 감춰버리고 싶어 집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내가 ‘본래적인 나’의 정체를 잊어버리고 페르소나가 나인 줄 아는 착각이 일어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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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자 : 거짓 자기는 꼭 사회적 사건으로만 드러나는 것은 아니겠죠? 가정에서 가족 간에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닌가요? 그리고 페르소나가 꼭 남자만의 것은 아니겠죠?



분석가 : 당연합니다. 조선시대 이래 1980년대까지만 해도 여자들은 ‘현모양처’로 사는 것을 여성으로서 가장 표본적인 삶으로 여겨 왔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결혼을 하면 마땅히 ‘희생적인 삶’을 살아야 했죠. 그러나 그것은 썼다 벗었다 할 수 있는 사회적 가면과는 달리, 어릴 때부터 인격화되도록 양육되어 왔기 때문에 현모양처가 마치 여성의 본질인 양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것은 198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현모양처가 참자기로 간주되었지만, 요즘은 그것은 거짓 자기로 통합니다. 그러나 1980년대까지는 나름대로 좀 순화된 미덕으로 추앙받아 온 거짓자기였던 거죠.


재능과 거짓 자기



탐구자 : 사람들 중에는 너무 탁월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그 재능을 발휘하느라 참자기를 드러내지 못하고 거짓 자기로 살아가는 경우도 있겠죠?


분석가 : 그런 경우에 대해, 위니캇은 '지능과 거짓 자기가 결합될 때 종종 특별한 위험이 발생한다. 거짓 자기가 매우 높은 지적 잠재력을 가진 개인에게 조직화될 때, 그의 지능 안에 거짓 자기가 자리 잡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경우, 지적인 활동과 정신-신체적 존재 사이에 해리가 발생한다'라고 경고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가진 재능을 발견하면, 그것을 가지고 자신의 참자기를 실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남다른 재능이 자신을 자만에 빠지게 만들고, 그것으로 사회적 페르소나를 강화할 수 있게 될 때, 거짓 자기로 사는 것이 일상화되어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런 사람은 거짓 자기로 사는 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여길 뿐 아니라, 도덕이나 윤리와는 상관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를 들면, 어떤 해커전문가는 낮에는 해커방지 지도강사를 하고 밤에는 어느 기업체에 고용되어 해커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이런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해리되어 분열된 자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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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자 : 소위 ‘사회적 성공’이라고 말할 때, 그것 자체가 거짓자기라고 말할 수 있나요? 사람들은 그것을 목표로 삼아서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분석가 : 사회적으로 성공 자체를 거짓자기라 하면, 그것은 일방적으로 몰아가는 겁니다. 건강한 사람이란 본래적 자아와 사회적 페르소나를 분명하게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구별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밖에서 ‘김전무’이면 집에서도 ‘김전무’로 호칭한다면 뭔가 좀 어색하죠? 그런데 밖에서 ‘목사님’인데 집에서도 아내가 ‘목사님’으로 호칭하는 경우는 자연스럽게 여겨지죠. 그렇게 자연스러운 것이 오히려 본래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를 구별하지 않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또 사회적으로 성공할수록 본인이 느끼기에 가짜 같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거짓 자기가 너무 발달해서 허망감과 절망감이 자리 잡고 있다는 표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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