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자기(5) : 문화와 거짓자기

문화와 거짓자기



탐구자 : 거짓 자기로 살아가는 사람은 문화적 상징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말하자면, 문화를 추구하는 사람을 참자기를 가진 사람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거짓자기로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는가를 질문하는 겁니다.


분석가 : 그건 한 마디로 ‘참자기는 이렇고 거짓자기는 저렇다’ 라고 이분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건 사람마다 거짓자기를 각기 다른 차원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의 경우는 거짓자기로 살면서도 문화를 추구하는 대신에 극도로 불안해하면서 집중력이 없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외적 현실로부터 침범을 끌어 모으려는 욕구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탐구자 : 외적 현실로부터 침범을 끌어 모으는 욕구로 살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런 사람은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는 것이 될 텐데 현실을 살아가기 쉽지가 않겠어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은 스스로 불행의식을 만들어내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죠. 또한 이런 사람은 가는 곳마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은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경향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탐구자 : 그런 사람은 왜 불행을 끌어 모으게 되는 걸까요?


분석가 : 생애 초기에 아기가 자기 존재를 세워갈 때, 여성적 요소를 발현하는 시기에 어머니가 아기와 융합하여 아이의 존재를 받쳐 주지 못했기 때문에, 타자를 침범당하지 않고 수용할 수 있는 심리적 구조를 만들어 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타자’를 일단 자기 존재를 침범하는 자로 개념화해 버립니다.

국가가 세워지기 위해서는 한 영웅의 탄생과 삶이 신화화되는 과정이 있어야 하듯이 ‘나’라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어머니와의 존재론적 융합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세계에 대한 불신을 일소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성적 요소를 발현하는 시기에 어머니와 존재론적 신화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그 아이는 외부 세계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당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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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자 : 그렇게 되면 그 아이의 심리구조는 어떻게 되나요? 심리구조의 층이 매우 얄팍해질 것 같군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심리구조가 얇아지게 진다는 표현이 적절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실적인 것에만 가치를 두고 허구의 세계나 가상의 세계에 대한 접근이 힘들어집니다. 문화는 상징의 세계인데, ‘사실’의 렌즈로 보면, 문화는 허구의 세계에 불과하죠. 그래서 이런 사람은 삶 속에서 문화적 상징을 사용하기는 힘들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사실의 세계에 살 수 있을 뿐, 정신적인 풍요함을 누리기는 힘들어집니다. 사실 세계의 관점에서 보면, 문학, 음악, 미술, 영화, 드라마 등은 모두 거짓 세계에 불과합니다.


탐구자 : 그러니까 거짓 자기를 가진 사람은 문화적 삶이 불가능하다고 말씀하시는 거잖아요? 그런데 최근에 연예계, 연극계, 문학계에서 지도자급의 사람들이 미투(me too)에 연루되어, 사회적 거세를 당하는 경우를 보면 그런 사람들은 문화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었지만, 참자기로 살았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군요. 그들은 차라리 거짓 자기가 그들 삶의 본질이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분석가 : 앞의 장에서 말했듯이 거짓 자기가 본질일 수는 없습니다. 본질은 참자기이지만 ‘참’의 결핍의 결과가 거짓 자기를 파생적으로 만들어낸 것입니다. 거짓자기를 가진 채 문화계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사람은 어느 정도 참자기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일 겁니다. 그런 사람은 단순히 참자기 거짓자기만으로 모두 설명될 수는 없어요. 성장 과정에서 공감의 부재의 문제, 자기애적인 부분, 약할 때 힘 있는 사람에 의해 휘둘려 본 악몽 같은 경험 등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바로 자신에게 힘이 생겼을 때, 그리고 갑을 관계에서 내가 갑이 되었을 때입니다. 바로 그때 그 사람은 그동안 자신이 당했던 억울함을 약자에게 힘을 행세하게 되는 것입니다.


탐구자 : 내가 힘을 가졌을 때가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를 맞이한 것이 아닐까요?


분석가 : 자기실현을 해야 하는 시점에 돈과 권력의 맛에 취해 버리는 바람에 내면의 요구를 무시하고 거짓 자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자기실현 대신, 자아실현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어린 시절에 돌봄을 받지 못하여 결핍이 많고, 폭력을 많이 당해서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고 쳐요. 그런 사람은 어릴 때부터 자기 존재감 없이 살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 사람이 이제 힘과 권력과 많은 돈을 가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까 말했듯이 심리구조의 층이 얇은 사람은, 갑의 자리에 있게 되면, 약자에게 갑질을 하게 되면서 자신의 자존감과 존재감을 회복하려고 할 겁니다. 정서적인 빈곤함을 사회적 지위나 권력, 또는 돈으로 채울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죠.


탐구자 : 이해가 갑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돈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부자답게 살지 못하더라고요. 옷차림도 늘 추리하고, 아랫사람들과 만나면 어른답게 밥도 사고 해야 하는데 늘 얻어먹든지, 아니면 회비를 걷어서 낼 때 자기 먹은 만큼만 내고 말더라고요. 부자가 부자답지 못하고, 어른이 어른 노릇을 못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의 정서적인 빈곤함 때문이라는 말씀이군요. 그 사람은 왜 늘 그 모양으로밖에 못 사나 하는 것이 제 의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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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가 : 바로 그겁니다. 그 사람 역시 자신 안에 있는 참자기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투에 연루된 문화인들은 그동안 입어 온 거짓 자기의 옷이 너무 두꺼운 겁니다. 거짓자기가 보장해 주는 허세가 너무 현혹적이었던 겁니다. 참자기로 살아가는 사람은 거짓자기를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인데, 그들은 참자기가 덮일 정도로 거짓자기를 지나치게 남용한 사람입니다. 정서적 빈곤함이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상에 대한 빈곤함입니다. 대상에 대한 빈곤함이 나타날 때는 대상을 착취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자신이 약할 때, 특히 어릴 때 권위자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착취를 당했기 때문에, 자신이 강해질 때 약한 대상을 착취하는 모양으로 되갚아 주는 것입니다. 그때 착취하는 사람은 자신이 거짓자기라고 여기지 않고 참자기로 여깁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착취하고 힘을 과시할 때가 가장 생생함을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탐구자 : 그렇다면 참자기로 살아가는 사람은 힘 있는 자리에 있어도 약자를 착취하지 않고, 오히려 도와주려고 하는 공감적 태도를 가지고 대할 수 있는 사람이겠군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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