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자기(2): 거짓 자기의 내용

순응과 착함


거짓 자기의 내용 : 순응과 착함


탐구자 :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가 한 말 중에 ‘신체 행위가 죽게 되고, 허위적이고 기계적이 된다’는 말이 있는데, 그게 바로 위니캇의 거짓 자기와 통하는 말이라고 보면 되겠군요.


분석가 : 그렇죠. 기든스는 자신의 사회학적 논리를 전개해 가면서 위니캇의 정신분석학을 많이 활용한 학자입니다. 기든스의 그 말대로라면, 아기는 자발적 몸짓의 죽음을 겪게 되는 것이며, 그 결과 공격성을 억압하게 되고, 감각 통합이 불가능해지며, 감정 표현에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아기의 거짓 자기의 상태입니다. 이때 유아는 자신의 존재 욕망을 포기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욕망에 맞춰서 살아가게 됩니다. 거짓 자기의 핵심적 내용은 유아의 순응입니다.


탐구자 : 순응이 착함으로 나타난다면, 많은 아이들이 거짓 자기 상태에 머물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착한 아이들은 딱 보면 알아요. 머리 뒤를 보면 하도 누워있어서 머리카락이 없죠. 사람들은 그런 아이를 보고 ‘순둥이’라고 부르면서 그런 아이를 좋아하거든요.


분석가 : 좋아할 뿐 아니라, 환호하죠. 착한 자녀 낳았다고 말이죠. 그렇게 착한 아이는 존재가 출발하는 유아기부터 환경에 대해 자기주장이나 자기 요구를 하지 못하고, 반대로 환경이 요구하는 대로 순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유아가 이때부터 거짓 자기를 만들어 내면서 관계를 왜곡시키게 되고, 그 왜곡된 거짓의 관계를 진짜인 것처럼 만듭니다. 그래서 그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 아기는 어머니나 아버지, 아줌마, 형 등 주변의 상황을 주도하는 사람과 동일시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유아는 너무 일찍부터 자기 존재의 고유성을 상실하고 지배력을 가진 누군가와의 존재 유사성만 찾아가면서 집단적인 삶, 거짓 자기의 삶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아이가 위로로 삼는 것이 있다면, 바로 어른들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착하다’는 말을 듣는 것이지요. 착한 아이가 거짓 자기로 살아가는 이유는 자신의 고유한 존재로 살아가지 못하고, 어릴 때부터 부모의 눈치를 보면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자기 동일성을 위한 불변의 시간


탐구자 : 이번에는 아기에게 시간 개념은 어떠한지를 한번 살펴보죠. 유아는 '불변적 시간'을 만들어낸다고 하는데, 시간 개념이 없는 유아가 어떻게 불변적 시간을 만들어내는 거죠? '불변적 시간'이란 바로 ‘영원’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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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가 : 맞는 말입니다. 불변적 시간은 영원을 의미하죠. 우리는 불변하는 영원과 변화하는 시간의 이분법만 가지고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은 누구나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영원’을 경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누군가 신을 만나는 순간, 그 순간은 원형적인 체험 또는 근원적인 체험을 하는 순간이죠. 그 순간 사람은 큰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 순간은 의미적으로 긴 시간으로서 마치 영원을 체험하는 것과도 같은 경우입니다.

아기에게 있어서 절대적 의존기는 바로 그런 시간이 멈춰 있는 불변을 경험하는 시기이죠. 이 시기에는 외부적 시간, 물리적 시간, 우주적 시간이 들어와서는 안 되는 겁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존재 연속성’이지 ‘시간 연속성’이 아닙니다. 아기는 불변의 시간을 체험하는 동안 불변하는 ‘자기 동일성’, ‘I am’ 확보하게 됩니다. 이 동일성은 어릴 때의 나, 성인의 나, 노년기의 나 가 시간의 흐름과 무관하게 ‘같은 나’ 임을 증거 하죠.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일단 아기는 어머니의 품을 통해 여성적 요소를 발현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품이 안전하지 못할 때, 어머니는 ‘대상 제공의 실패’의 상황을 만들어내게 되면서 아기는 불변하는 시간을 유지하지 못하고 현실이 그대로 들어와 버립니다. 그러면 아기는 ‘현실 모독’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어머니가 거울 반영에 실패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발생하게 됩니다. 아기는 어머니의 얼굴에서 ‘현실’을 발견해 버리게 되죠. 그러면 아기는 자신의 공격성의 좌절을 겪게 되면서 IQ를 작동시킴과 동시에 거짓 자기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아기는 너무 일찍부터 어머니를 전적으로 의존하지 못하고 스스로 돌보는 자기를 발달시키게 됩니다. 이 자기가 바로 ‘거짓 자기’입니다.


탐구자 : 그렇게 되면 그 아기는 참자기의 발달을 멈출 수밖에 없겠군요. 참자기는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리고 거짓 자기가 참자기를 보호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군요.


분석가 : 그렇죠. 원래는 아기는 참자기를 계속 발달시켜 가면서 자기를 더욱 견고하게 구조화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거짓 자기가 발동되면서 참자기의 발달적 구조화를 멈추게 되면서, 아기는 그 수준에서 스스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 가고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짓 자기가 너무 일찍 작동하게 되면 순응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아기는 공격성을 생생하게 드러내지 못하게 되고 소위 ‘착한 아이’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참자기를 계속 발달시켜 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아기는 어머니와의 존재론적 융합을 통해 어머니의 존재 깊은 부분까지 들어가서 어머니의 좋은 것을 공유하면서 마치 자기 것인 것처럼 사용하게 되지만, 거짓 자기가 작동하는 순간부터 어머니와의 융합상태에서 빠져나오게 되면서 어머니를 존재로 경험하지 못하고 어머니의 존재를 표면적으로만 살피게 됩니다. 이렇게 될 때 아기가 사물, 세상을 보는 시각이 표면적인 관찰에 그치기 십상입니다. 그 결과 세상이 보여주는 현상에 집착하게 되고 현상 이면에 있는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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