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분열과 거짓자기
탐구자 : 자기에 대한 파생적 이원론으로서 앞에서 다룬 참자기의 이면인 거짓 자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것인가요?
분석가 : 거짓자기를 논하려면 먼저 초기 환경의 실패의 문제를 거론해야 되겠습니다.
탐구자 : '환경'이란 단어가 다 아는 단어이지만, 아기에게 환경은 주변 환경, 부모가 제공하는 생활조건, 뭐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분석가 : 아기에게 환경은 바로 '어머니 환경'을 말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아기에게 제공하는 모든 것이 다 환경이 되는 거죠. 특히 여기서 초기 환경이란 절대적 의존기(생후 첫 1년)의 ‘어머니’를 말하는 것입니다.
탐구자 : 어머니가 아기에게 초기환경의 실패를 하면, 아기에는 치명적일 수 있겠군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치명적'이라는 단어가 딱 적절한 개념입니다. 사람이 기억할 수 있는 상처는 그렇게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기억할 수 없는 상처는 매우 치명적입니다. 치명적이라는 말은 앞으로의 삶을 제대로 살아내기 힘들만큼 결정적인 상처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초기 환경에 실패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됩니다. 첫째는 ‘일차적 모성 몰두’의 실패, 두 번째는 ‘대상 제공’의 실패입니다. 첫째의 실패는 왜곡된 자아를 조직하게 되면서 분열적 성격의 기초가 됩니다.
탐구자 : 그렇다면 초기환경의 실패에 노출된 아이는 모두 다 그렇게 치명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것인가요?
분석가 :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정신분석학은 인과론으로 보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봐야 합니다. 초기 환경의 실패를 맛본 아이들 중에는 일평생 정신적으로 취약함을 보이지 않고 잘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히 있거든요. 그렇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정신적인 문제에서 못 벗어나는 사람들은 이런 초기 환경의 실패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탐구자 : 그렇다면 초기환경 실패의 첫번째에 해당하는 정신분열에 대해 말씀해 주실까요?
분석가 : 위니캇은 초기 환경을 제공받지 못해 자아조직의 왜곡을 일으킬 경우 정신분열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경우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위니캇은 '분열'에 대해 다음의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합니다.
첫 번째 범주는 유아 정신분열증이나 자폐증입니다.
이 범주에 속하는 유아는 초기 환경의 실패로 이미 상처를 크게 받았고, 불안에 크게 노출된 경험을 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정신적 분열을 야기하여 다시는 상처받지 않고, 그리고 극심한 불안을 다시는 경험하지 말아야 되겠다는 생각으로 자아를 ‘극단적 해리 상태’로 분열시키는 것으로 조직화 해 버린 것입니다. 그리하여 정신적 결함이 심한 분열증 환자나 자폐아는 더 이상 고통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절대 상처받지 않는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그 고통은 부모들이 평생 감당해야 하는 몫으로 되돌려 주게 된 것이죠. 그들은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자아를 성공적으로 조직화를 한 것입니다.
두 번 째 범주는 잠재적 정신분열증입니다.
이 범주에 속하는 사람은 겉으로는 정상적으로 보이는 아이지만 그 안에는 정신 분열이 숨겨져 있습니다. 나중에 청소년기나 성인의 삶 속에서 스트레스나 고통을 받을 때, 분열의 정도에 따라 어떤 사람은 1차 충격으로, 어떤 사람은 2차 충격을 받으면서 잠재되어 있던 정신 분열을 활성화하여 스트레스와 고통을 차단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살아가면서 잠재된 분열을 끌어 올릴 만한 충격을 받지 않으면 다행스럽게도 정상적으로 살아 갈 수 있게 됩니다.
세 번째 범주는 분열성 성격입니다. 이것은 ‘해리’보다는 덜 극단적인 형태이며, 일반적으로 성격장애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고 봐야 합니다. 위니캇은 건강한 사람에 대해서 “정신병과 함께 놀이할 수 있고… 정신병은 현실적이며 인간의 성격요소와 존재 요소에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단지 정신병이 없다는 의미에서만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면 우리는 참으로 빈곤한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적이고 정상적인 정신성만 가지고 살아가라고 하면, 우리의 정서적 세계는 빈곤해 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꼭 미치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누구나 그런 상황을 당할 수 있는데, 그때 미치지 않으면 진짜 미칠 수 있다는 겁니다.
데카르트가 말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명제를 정신세계의 정상적 범주로 확정하면서 살아가고자 한다면, 그 사람의 삶은 매우 빈곤해 진다는 말이죠. 위니캇은 사람이 때로는 아무런 생각 없이 오랜 동안 멍 때리는 상태에 머무를 수 있고, 때로는 퇴행하거나 신화적 세계에 머물 수도 있고, 때로는 미쳐 버리고 싶어 비명을 지를 수도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탐구자 : 절대적 의존기에 초기 환경의 실패의 첫 번째 경우, 즉 정신병의 차원을 다루어 주셨으니, 이번에는 그 두번째 경우, 즉 대상제공의 실패에 대해 말씀해 주시죠.
분석가 : 대상제공의 실패는 아이로 하여금 거짓자기로 살아가게 만듭니다. 거짓 자기는 ‘대상제공의 실패’에서 비롯됩니다. 대상제공의 실패는 아기에게 현실 모독을 가져다주게 되죠. 지금까지 배운 바에 비춰볼 때, ‘대상제공의 실패’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뭘까요?
탐구자 : ‘대상제공의 실패’라 할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거울 반영의 실패’입니다.
분석가 : 물론 그것도 포함됩니다. 대상제공이라 할 때, 가장 근본적인 것은 바로 ‘여성적 요소’를 거론할 수 있겠죠. 아기에게 여성적 요소를 잘 제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아기가 엄마의 품 안에서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기는 그런 안전한 품의 환경에서 '여성적 요소'를 획득하게 됩니다. 절대적 의존기 동안 유아는 어머니와 존재론적 안정감을 누리면서 유아 자신 안에 있는 여성적 요소를 자신의 존재의 기초로 세우기 위해 끌어 올리게 됩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변덕을 부리지 않고 존재 항상성(homeostasis)을 제공함으로써 아기가 ‘존재 연속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존재연속성은 어머니의 존재 항상성과 직결되는데, 이를 위해 어머니는 아기가 자기 동일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늘 동일한 존재로 있어 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어머니는 자기 시간개념, 물리적 시간 개념을 포기하고 아기의 생체 시간을 존중해 줘야 합니다. 물리적 시간은 변화가 본질이지만, 절대적 의존기에 있는 유아의 생체 시간은 ‘불변’이 본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