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자기(4):사고(thinking)와 생각(mind)

사고와 생각


탐구자 : 유아기 때 아기가 거짓 자기로 순응하지 않도록 하려면 부모로서 마땅히 행할 바는 어떤 것일까요?


분석가 : 아기가 참자기로 살게 하려면 어머니가 거의 정확하게 유아의 욕망에 적응해 줘야 합니다. 어머니는 아기의 얼굴표정, 웃음소리, 몸짓, 만족스러움, 불편함 등의 신호들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합니다. 거짓 자기는 아기가 어머니에게서 이러한 경험을 해 보지 못한 결과로써 발생하는 것이죠. 아기가 오히려 어머니의 욕망에 적응하고,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게 되면 나중에 학교를 다니거나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존재의 욕망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요구에 맞춰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경험들이 그 아이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순응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탐구자 : 어머니는 아기에게 언제까지 완벽한 돌봄을 제공해야 하나요? 앞에서 어머니도 적절한 실패를 하는 때가 있다고 그러지 않았나요?


분석가 : 그렇게 말한 적이 있죠. 어머니는 ‘충분히 좋은’ 환경이어야 하는데, 완벽한 환경을 제공하게 되면, 아이는 ‘사고(thinking)’의 전능성에 봉사하게 됩니다. 어머니가 아기에 대해 적절하게 실패하지 않고 완벽한 돌봄을 제공하게 되면, 아기는 계속해서 ‘사고’를 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사고의 전능성은 곧 강박사고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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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자 : 사고를 하지 않으려면 사고 대신에 뭘 해야 하나요?


분석가 : 위니캇은, 사고를 한다는 것은 아기의 고유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철저한 모성적 돌봄과 적응을 해 주는 것에 대한 대용품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말하자면 어머니가 저렇게까지 나를 철저하게 돌봐 주는 데 나도 뭔가를 해 드려야 되지 않겠나 하는 의미에서, 아기는 ‘사고’를 하게 되는 겁니다. 이러한 사고는 아기가 자기 존재 차원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돌봄을 제공하는 어머니의 차원을 고려한 결과 아기가 실행하는 것이 됩니다. 이런 사고가 심화될 경우, 유사 자폐에까지 이르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유사 자폐아의 집에는 없는 장난감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장난감 중에 아기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장난감은 하나도 없습니다. 흩어짐이 없는 어머니는 집안에 있는 모든 것이 항상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야 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장난감조차도 놀이의 대상이 아니라 모두 정리의 대상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 결과 아기는 놀이 공간과 놀이 대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집안의 부모는 아기의 존재를 위해 ‘생각’을 해야 하는데, 어머니 입장을 집착하여 ‘사고’를 하고 있는 겁니다.


탐구자 : 그러면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분석가 : 보통 연애를 할 때는 남자가 여자의 마음(heart)을 얻기 위해 생각(mind)을 많이 합니다. 남자가 사고(thinking)만 작동시켜서는 절대 여자 마음 가까이 갈 수가 없죠. 왜냐하면 순수한 사고는 감정을 배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생각’을 한다는 것은 사고에 감정을 결합시킬 때에 일어나는 작용입니다. 사고와 감정이 결합할 때 두뇌는 마음과 연합을 하게 됩니다. 그때 생각이 작동하게 됩니다. 그 생각은 몸을 움직이게 만듭니다. 그래서 연애할 때 남자는 여자의 요구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을 하면서 제법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결혼을 하고 나면 좀 입장이 달라집니다. 초기에는 연애 때처럼 여자를 위해 봉사를 하기도 하지만, 세월이 지날수록 남자의 몸은 둔해지고 주말이 되면 좀 쉬어야 되겠다면서 잠만 자고…. 그렇게 소중하게 챙겼던 여자의 마음에 대한 관심은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립니다. 부부 사이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여자는 어느 시점이 되면 남편에게 요구하기를 포기하고 스스로 알아서 하는 독립적인 시스템을 구축해 가게 됩니다. 남자는 결혼하고 나면 서서히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는데, 남자는 중년기에 접어들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마치 남자의 본성인 양, 아내로 하여금 남편에게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을 포기하게 만들죠.


탐구자 : 남자들은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요?


분석가 : 나는 프로이트나 융이 공통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 남자는 사고이고 여자는 감정이라는 관점이라고 봅니다. 바로 위에서 말한 남자의 변질은 생각에서 사고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다르듯이, 사고와 감정은 서로 분리되어 있습니다. 특히 남자에게는 더욱 그러하죠.

그러나 융에 의하면 남자 안에는 여성성이 있고, 여자 안에는 남성성이 있습니다. 융은 사고와 감정을 서로 조화를 이루야 하는 것을 강조합니다. 생각이라는 것은 감정을 담고 있으나 사고는 감정을 담아내지 못합니다. 그래서 연애하는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감정을 품고 있으며 또한 몸의 움직임을 동반합니다. 여자의 여성성의 본질은 감정이기 때문에 남자가 여자를 살펴주기 위해 생각을 하게 되면 감정과 감정이 만나 서로 상통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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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자 : 그런데 세월이 지나면서 왜 남자는 사고적 본성으로 되돌아가게 되는 걸까요?


분석가 : 결혼 전에는 남자가 여자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나마 주관적 세계에 머물게 되면서 자신의 감정을 동원할 수밖에 없지만, 결혼 후에는 가정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객관적 세계(사회)로 나아가 자기 능력을 발휘해야 하기 때문에 거기서 많은 리비도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내의 감정이나 마음을 살필 여력이 없어지게 되면서 여자의 민감한 요구에 반응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내는 가사와 자녀 양육에 힘쓰고, 남편은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버는 등의 양분화된 시스템을 가동하게 되면서 부부의 역할 구분이 분명해지게 되고, 심리적으로도 각자의 본성을 찾아가는 쪽으로 기울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결과 남자는 밖에서나 집안에서나 사고만 하지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사고만 하는 남자는 감정을 배제하게 되고 집안에서 몸을 잘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고 자체가 ‘거짓 자기의 속성이다’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역으로 거짓 자기는 감정을 배제한 사고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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