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자 : 분석가의 말씀을 가만히 듣고 보니까,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교육이라는 것이 끼어들면서 부모, 자녀 모두를 참자기로 살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에 오랫동안 성행해 온 조기교육이 바로 현상을 만들어내는 주범이 아닌가 싶습니다.
분석가 : 정치계에서 어떤 비리가 발견될 때 유행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몸통’과 ‘깃털’이라는 용어입니다. 우리나라 정치계에서 굵직굵직한 사건이 일어날 때는 대개 책임 있는 자와 힘 있는 자가 다른 경우들이 많았습니다. 이 둘 사이의 괴리는 정치계를 온갖 비리의 온상으로 만들어 왔습니다. 힘 있는 자는 책임 지울 자들을 세워서 일을 추진하게 만들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자가 물러나거나 처벌을 받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고, 힘 있는 자는 그 일을 맡을 또 다른 책임자를 세우면 그만이죠. 지금까지 있었던 정치계의 대형 사고들은 대부분 그런 숨어 있는 몸통에 해당하는 배후 권력들 때문에 일어났지만, 그런 사고에 대해 책임지는 사람은 늘 따로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몸통과 깃털의 관계입니다. 정치구조 속에서 책임만 있고 힘이 없는 깃털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소신껏 일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몸통은 비공식적인 힘을 가진 자로서 법의 범위 안에 들어오지 않는 초법적인 존재입니다. 이 몸통과 깃털의 관계가 우리 사회를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어느 정권에서는 대통령의 아들이, 어느 정권에서는 대통령의 형님이, 또 어느 정권에서는 여론 조작한 배후 세력이 끊임없이 있어 왔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대형사고가 터질 때 잘 드러납니다. 힘은 없으면서 책임만 있는 사람은 힘 있는 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그렇게 눈치 보는 사이에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지나가 버리게 되면서 조그만 사고가 대형사고로 비화되어 버리는 겁니다.
탐구자 : 그렇긴 한데 교육 이야기하다가 왜 갑자기 화두가 정치권으로 튀었을까요?
분석가 : 정치권에서 몸통과 깃털의 관계가 가정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양육할 때 자녀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책임을 질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내게 힘을 실어주는 부모가 내 삶을 좌지우지하게 되고, 그 결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힘 있는 자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 밖에 없다면, 이 자녀는 깃털에 불과하고 내게 힘을 실어주는 부모는 몸통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자녀는 절대로 참자기로 살아갈 수 없게 되고, 거짓 자기가 참자기인 줄 알고 살아가게 됩니다. 몸통에 해당하는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살아가면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전교권의 성적을 유지하고 부모가 시키는 대학과 학과에 들어가서 계속 성공적인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런 부모는 자녀가 직업을 찾는 일이나 배우자를 선택하는 일에도 직접 간여하게 됩니다. 그 결과까지 좋은 것으로 판명되었다면 평생 스스로 몸통이 되지 못한 채, 깃털로 만족하면서 거짓 자기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와 가정의 현실입니다.
탐구자 : 오늘날 많은 자녀의 현실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요즘 자녀들은 자신의 존재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택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아요. 그게 편하니까요.
분석가 : 부모는 자녀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몸통이 되어 존재가 요구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줘서 언젠가 부모 자신도 자녀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자녀도 부모를 떠나 흔쾌히 독립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요즘 부모들은 자녀를 꼭두각시로 내세우고 뒤에서 줄로 조절하는 인형극을 즐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탐구자 :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런 부모들의 조정을 받은 자녀들이 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있다는 게 문제인 것이죠.
분석가 : 앞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그렇게 획득한 지위와 능력은 그 유효기간이 기껏해야 40세 초반 까지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결국 그 유효기간 중에도 자신의 성공이 가짜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게 되면서, 술 중독에 빠진다거나 성적 사건에 휘말린다거나 하는 등의 인생의 굴곡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교육형태의 효력이 끝나는 시점이 되어서야 자신이 그동안 해 놓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허탈감과 공허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거짓 자기로 사는 것입니다
탐구자 : 신문에 난 교육 특집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어요.(조선일보, 2014, 11, 22, 제목: “내가 모르는 아이”) 그런 어머니를 ‘독친(毒親)’이라 부르더군요. 그런 어머니는 아들이 뭘 좋아하는지 뭘 궁금해하는지 관심이 없고, 오직 자신의 생각대로 아들의 학교스케줄, 학원스케줄, 미래계획까지 다 짜줄 뿐 아니라, 자녀가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킬 때조차 어머니가 다 해결해 주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그 아들의 일기장에는, ‘내 친엄마가 아닌 것 같다’ ‘엄마를 죽이고 싶다’고 써져 있더랍니다.
분석가 : 그 경우도 어머니는 자신이 아들의 몸통이 되고자 하는 것이고, 아들을 자신의 깃털로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 자녀는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다 해도 거짓 자기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탐구자 : 어머니가 몸통으로 자녀가 깃털로 산다고 할 때, 부모의 지시대로 따르며 순종하는 자녀들도 있지만, 반항심을 발동하여 가출하거나 부모가 원하는 방식과 정반대로 살아가려는 자녀들도 많지 않습니까? 우리 사회의 아이러니는, 부모가 시키는 자녀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반항하는 자녀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은 것 같단 말이죠.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건가요?
분석가 : 우리나라에는 비정상적인 천재가 두 사람이 있습니다. 최고의 IQ 210으로 기네스 북에 오른 김웅용 박사나 187의 송유근 같은 천재들 말이죠. 김웅용은 8세에 콜라라도 주립대학에 입학하여 석박사 과정을 밟고, 16세까지 NASA 핵물리학 분야 선임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고 주장합니다. 송유근은 천재적인 머리를 가지고 박사학위에 도전하다가 실패했죠.
탐구자 : 저는 늘 궁금했던 것이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같은 창조적인 일을 하지 못할까 하는 점입니다.
분석가 : 왜냐하면, 그들은 몸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을 빼앗겼기 때문에 깃털로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IQ만 높은, 부분적인 천재인 셈이죠. 김웅용 씨는 중학과정, 고등학교 과정을 검정고시로 합격하여 충북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공부하기가 힘들었던 것이 고등학교 수학이었다고 해요. NASA가 풀지 못해 던져주는 고등수학을 풀어낸 사람이 우리나라 고등학교 수학공부하기가 힘들었답니다. 그때 그는 수학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공식을 외워야 되는 과목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답니다. 김웅용 박사가 지금은 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대학교에 출근을 하다가 학교 운동장에서 공을 가지고 자유롭게 뛰어노는 학생들을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멍하니 쳐다보게 된답니다. 어릴 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은 바로 놀이였는데, 한 번도 놀아본 적이 없는 것이 김박사에게는 가장 큰 결여로 남아 있는 겁니다. 그는 놀아야 할 시기에 놀지 못해 몸을 빼앗긴 것입니다.
송유근(1997년생)은 만 7세에 대학에 입학, 그 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 입학하여 2015년에 논문 표절 시비에 휘말려 학위취득이 취소되었고, 다신 치른 학위심사에서 기본적인 질문에 답변을 못해서 학위취득이 무산되었다고 하죠(나무 위키 참조). 송유근의 경우, IQ가 높다는 것이 기억력이 좋고 계산을 잘할 수 있을 뿐, 창조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에 표절시비에 말려들게 된 것이라고 보입니다. 그도 역시 부분적인 천재일 뿐이기 때문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같은 다분야에 업적을 남기는 천재가 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도 역시 몸을 빼앗겼기 때문에 깃털로 살아온 것입니다. 그는 7세에는 대학을 들어갈 것이 아니라, 아이답게 놀아야 했습니다. 그래야 창조성을 몸으로 획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의 이웃으로 있던 아이 중에도 천재가 있었습니다. IQ가 170 정도 되는 아이인데, 그 집안 대대로 머리가 좋은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이 부모들은 절대로 아이가 천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게 키웠습니다. 또래 친구들과 뛰어놀게 만들고 학교 외에 학원 보내지 않고 그 아이가 원하는 대로 살도록 부모가 자녀의 존재욕망에 적응해 주는 데에 주력을 했습니다. 그 결과 그 아이는 평범하면서 나름대로 탁월한 아이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몸을 잃어버리지 않게 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창조적으로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된 것입니다. 그게 바로 부모의 역할이죠.
탐구자 : 그렇게 놀이를 할 수 있을 때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몸을 획득하는 것이군요. 그리고 그렇게 몸을 획득하는 것이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는 것이고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앞에서 플라톤의 교육론을 보았듯이, 초중고 교육에서 음악 미술 체육을 포함한 예술 교육이 선행될 때 자신의 존재와 참자기를 돌보는 기본 틀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됩니다. 사춘기가 되면서 부모님의 말씀을 더 이상 순종하지 않고, 반항, 분노, 원망과 고통을 SNS에 올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거나 일기장에 호소하는 자녀들은 나름대로 자신의 존재를 찾고자 함이요, 더 이상 내 인생을 휘둘리고 싶지 않은 것이고, 몸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거짓 자기로 살기보다는 참자기로 살겠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