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청소년의 반사회적 경향성

울타리와 공간

반사회적 경향성이란?


탐구자 : 대부부의 청소년들에게는 기본적인 반항이 있잖아요? 그건 어디서 오는 것인가요? 성인들의 분노와는 또 다른 뭔가가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그 시기에 자연스러운 것인가요? 


분석가 : 청소년기는 다른 시기에 비해 좀 독특한 경향을 드러내는 시기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위니캇은 그것을 청소년기의 ‘반사회적 경향성’이라고 부릅니다.  위니캇은 그것을 유아 초기의 어머니의 실패와 인한 박탈감 때문이라 여깁니다. 초기 절대적 의존기의 실패는 ‘절대적 박탈’을 불러오는데 그것은 정신증의 상태까지 이를 수 있지만, 반사회적 경향성을 드러내는 것은 ‘상대적 의존기’에 어머니의 모성적 돌봄의 실패에서 비롯됩니다. 


탐구자 :  반사회적 경향성은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들로 나타나는 것인가요? 


분석가 : 이에 대해 위니캇은 어릴 때의 ‘침대에 오줌 싸기’로부터 시작해서, 아동기 청소년기로 넘어오면서 ‘ 훔치기 ‘거짓말하기’ ‘공격적 행위’ ‘파괴적 행위’, ‘충동적 잔인성’ 그리고 ‘성도착’등의 행동에서 임상적 징후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탐구자 : 청소년기에 많은 아이들이 그런 ‘반사회적 경향성’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상대적 의존기에는 어머니들이 돌봄의 환경 제공 실패의 경우가 많은가 봐요. 어머니들은 왜 그 시기에 그런 실패를 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아버지의 실패는 상관이 없는 것인가요? 


분석가 : 위니캇은 상대적 의존기의 박탈로 두 가지를 제시합니다.  첫 번째는 아이의 자아 욕구에 대한 어머니의 적응상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직장을 다니는 중에 아이를 낳고 출산 휴가를 1년 가졌지만, 그 이후에는 어쩔 수 다른 사람에게 아기를 맡기고 출근을 해야 하는 상황, 또는 동생의 탄생으로 어머니의 적극적인 돌봄을 상실하게 되었다거나, 아니면 어머니가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거나 큰 질병으로 장기 입원을 하였다거나... 등등의 이유로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을 때 그런 박탈감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어머니들도 상대적 의존기에는 어느 정도의 실패가 있습니다. 정도의 문제가 있을 뿐입니다. 

두 번째는 아이가 파괴되지 않는 환경에서 본능적 경험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환경의 상실로 박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본능적 경험은 남성적 요소에 속하는 것이며, 이때 파괴되지 않는 환경은 아버지의 역할과 관련됩니다. 


아버지는 울타리, 어머니는 공간

탐구자 : 어머니의 모성적 돌봄의 실패와 아버지의 부성적 본능경험 실패는 청소년기에 어떻게 나타날까요?  


분석가 : 위니캇은 어머니는 공간이고 아버지는 울타리로 비유합니다. 어머니 공간과 관련하여 나타나는 반사회적 경향성은 바로 ‘훔치기’입니다.  어느 청소년 드라마를 보면 청소년들이 백화점 물건을 훔쳐다가 태워버리면서 춤을 추면서 환호를 하는 장면이 나오죠. 


탐구자 : 저도 그 드라마를 봤는데, 걔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건가요? 보통 훔칠 때는 뭔가가 필요해서 훔치는 것이 아닌가요? 


분석가 : 생계형 도둑질과 정서적 훔치기는 다릅니다. 청소년들이 정서적 훔치기를 왜 하는가 하면 무의식 중에 뭔가 잃어버린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탐구자 : 잃어버렸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파악을 해서 그것을 사든가 부모님께 사달라고 하면 되지 않나요?    • 


분석가 : 그런 것이 아닙니다. 청소년들이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무의식 중에 기억하는 것은 바로 유아기 때 어머니의 품입니다. 이런 행위는 청소년기뿐 아니라 아동기에도 나타납니다. 서랍을 막 뒤지는 아이가 있어요. 어머니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5살 난 아이가 매일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은 서랍에 있는 것을 다 끄집어내어서 펼쳐 놓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화가 나서 아이를 때립니다. 아무리 때리고 또 때려도 아이는 반복적으로 서랍을 뒤져서 모든 것을 다 끄집어냅니다. 뭔가 박탈당한 것이 있음을 무의식적으로 보여주는 행위입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잃어버린 젖가슴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청소년기에는 보다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내는데 그것이 바로 이유 없이 훔치는 행위입니다. 


탐구자 :  청소년기에 그런 훔치기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것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그것은 용납해 줘야 하는 것인가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어른들은 청소년들의 그런 행위에 대해 눈감아 줄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우리나라 풍습 중에도 ‘서리’ 문화가 있잖아요? 수박서리, 참외서리 등… 그때에 이런 짓을 하는 이유는 바로 무의식적인 박탈감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동네 아이들이 그렇게 놀아도 좇아가서 잡는 시늉은 해도 잡아서 경찰에 넘기고 그러지는 않는 거죠. 왜? 자기도 그 시절에 그렇게 해 본 적이 있거든요. 


탐구자 : 신창원이 생각나네요. 전과 7범의 도적이 된 것은 바로 아버지가 수박서리한 아들을 파출소에 끌고 가서 죄를 자백하게 하고 소년원에 보내져서 거기서 온갖 범죄수법들을 터득했다고 하더라고요.  


분석가 : 맞습니다. 아버지는 어머니 없이 자란 아들을 반듯하게 키운다고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합당한 벌을 받아야 한다고 파출소로 끌고 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년원에 들어간 이후 주로 절도만 일곱 번 범했습니다. 신창원이 동거녀에게 ‘어려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매우 외로웠다’는 말을 했다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2년 6개월 동안 도망 다니는 동안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당시에 ‘신창원 팬클럽’이 생길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해요. (한겨레 21, 1998년 7월 30일 자) 


탐구자 : 저도 그 사건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신창원이 다람쥐처럼 도망 다닐 때, 언젠가는 잡히겠지만 마음속으로는 쉽게 잡히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의 도주를 응원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때 팬클럽이 생겼을 뿐만 아니라, 가는 곳마다 여자들을 만나면 여자들이 신창원인 줄 빤히 알고 있고, 또 현상금이 그 당시 5000만 원이 걸렸다면 웬만하면 신고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같이 지내는 것을 더 선호한 것을 보면 그냥 보통의 절도범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재미있는 것은 신창원이 체포될 때 입었던 ‘쫄티’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한겨레 21, 상동) 


분석가 : 그 모든 일들이 비상식적으로 발생하게 된 것은, 처음으로 돌아가서 말하자면, 수박서리 때문이죠. 그냥 웃으면서 넘어갈 수 있는, 일종의 ‘통과의례’인데 그것을 법적 조치를 취해 버린 데에서 한 인생을 망쳐 버린 것입니다. 


탐구자 : 그렇다면 신창원의 문제는, 그가 6세 때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것과 유아기 때 잃어버린 어머니의 품에 있다고 봐야 되겠군요. 품을 도둑질당해서 서리를 하게 되었고, 아버지는 그것을 통과의례로 넘겨주지 못한 결과 상습 절도범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봐야 되겠군요.   


분석가 :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 있죠. 아버지 문제입니다. 


탐구자 : 아버지 문제라면 수박 서리를 그냥 넘겨주지 못한 문제로 결론이 나온 것이잖아요. 


분석가 : 바로 그 문제를 가지고 위니캇이 말하는 아버지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성찰을 함께 해 보자는 겁니다. 가정 내에서 어머니의 역할이 ‘공간’이라면, 아버지의 역할은 ‘울타리’입니다. 울타리가 든든하면 아이는 어머니라는 공간을 마음껏 누릴 수가 있게 되죠. 유아기나 아동기에는 아버지로서 울타리가 있는 것 정도만 알 뿐, 아이는 울타리의 역할이나 기능에 대해 인식을 못합니다. 그것은 그 울타리가 그만큼 안전하다는 말이 되죠. 그런데 청소년기가 되면 이 울타리를 두들겨 보고 슬쩍 넘어서 보기도 합니다. 얼마나 견고한가를 시험해 보는 거죠. 만일 신창원의 아버지가 수박서리를 통과의례로 보고 모른 척 그냥 넘어 가 주었다면 아버지라는 울타리는 매우 견고해졌을 겁니다. 그러면 아들은 그 울타리의 경계 안에서 안전하게 놀게 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신창원에게 있어 아버지라는 울타리는 그렇게 견고하지가 못했습니다. 오히려 아버지는 아들을 법의 울타리로 넘겨주기까지 하면서 자신의 울타리가 견고하지 못함을 증명하고 말았습니다. 

탐구자 : 그렇다면 아버지와 법의 울타리 사이에는 어떤 울타리가 더 있나요? 


분석가 : 아버지 울타리 다음에는 학교 또는 교회라는 울타리, 그 뒤에는 사회라는 울타리, 사회 뒤에는 법이라는 울타리, 법 뒤에는 형무소의 울타리가 있죠. 아버지의 울타리가 견고하지 못하면, 자녀는 그 울타리를 훌쩍 넘어서 가 버리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자녀가 학교에서 여러 형태의 사고를 일으키면서 반사회적 경향성을 드러내죠.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면, 자녀는 사회라는 울타리로 나가서 사고를 일으키는 것이 됩니다. 미성년자의 경우, 학교와 사회 사이에는 긴 거리가 있지만, 사회와 법 사이, 그리고 법과 형무소 사이의 거리는 매우 짧습니다. 


탐구자 : 그중에 제일 견고해야 하고 또 융통성이 있어야 하는 울타리는 아버지라는 울타리로군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학교나 교회라는 울타리는 그래도 견고하지만 유연합니다. 그러나 그다음 울타리들은 견고한 만큼 유연성이 떨어져서 딱딱하기만 합니다. 


탐구자 : 아버지의 울타리고 견고하면서 유연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슨 말일까요? 


분석가 :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아버지라는 울타리가 견고해서 자녀가 그 울타리와 어머니라는 공간 안에서 문제와 갈등을 함께 씨름하고 타협점을 찾아갈 수 있는 경우입니다. 아버지의 울타리가 견고하고 유연한 만큼 자녀는 아버지에게 도전하고, 싸우기도 하고, 아버지를 넘어서기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자녀의 어떤 도전을 덤덤하게 받아주는 아버지가 있으면, 자녀는 밖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게 됩니다. 


탐구자 : 많은 아버지들, 특히 유교적 성향이 강한 아버지일수록 ‘무자식이 상팔자라더니,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로구나’ 식으로 한탄하면 자녀는 졸지에 불효자로 전락해 버리면서 당장 무릎 꿇고 빌어야 화난 아버지를 달랠 수 있는 상황이 전개되어 가더군요. 


분석가 : 아버지가 아들의 도전을 견뎌 주고 더불어 싸워주면 끝날 싸움을, 아들은 세상 밖으로 나가 오랫동안 힘겨운 싸움을 이 사람 저 사람 수많은 사람과 더불어 길게 싸워내야 하는 외로움에 사무치게 됩니다. 이런 자녀에게는 이런 분노와 적개심의 표출이 삶의 결이 되어 버립니다. 가정이란 자녀에게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원형적 공간, 기회가 새롭게 획득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 가족 구성원 모두가 더불어 성장해 가고 성숙을 이루어갈 수 있게 됩니다. 


탐구자 : 신창원과 아버지의 관계를 보면,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것을 둑으로 막아야 하는 결과가 된 것 이군요 


분석가 : 아주 정확하게 본 것입니다. 아버지라는 울타리가 견고 하면 될 것을 결국 형무소의 담장까지 뛰어넘게 만든 사건이 바로 신창원 사건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바늘도둑이라고 법의 처분에 맡기다가 소도둑이 되었고, 수박서리꾼을 살인자(최종선고: 강도치사로 무기징역)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탐구자 : 집에서는 착하고 얌전한 아이인데, 밖에서 사고 치는 경우는 바로 아버지의 울타리 문제로 봐야 되는군요. 


분석가 : 많은 부모들이 거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밖에서는 점잖은 아이가 왜 집에서는 그렇게 말썽꾸러기냐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바로 그렇습니다. 그 아이는 집에서 집안이 안전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고, 또 집 안에서 말썽을 부릴 수 있고, 그렇게라도 하게 되면, 굳이 밖에서 말썽을 일으킬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녀 공격성에 부모 살아남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