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가 아닌 검을 쥐어 준 하나님
나는 국제정세에 대해서는 부분적인 지식만 가지고 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중동 전쟁의 뿌리에 관한 것이다.
이라크의 우르 지역에서 가나안 땅으로 들어온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의 후손에 대한 언약을 받았지만, 아내 사라가 늙어 아내와 합의하에 젊은 여종 하갈을 첩으로 들였다.
그렇게 태어난 아들이 '이스마엘'이다.
그 후 사라가 하나님의 언약 아래 끊긴 태가 살아나면서 이삭을 낳게 되었다.
두 형제의 싸움으로 이스마엘을 쫓겨나게 된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이스마엘에게도 큰 복을 내리신다.
하나님이 하갈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씨를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창 16:10)
“이스마엘에 대하여는 내가 네 말을 들었나니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생육하고 번성하게 할지라 그가 열두 두령을 낳으리니 내가 그로 큰 나라가 되게 하려라.”(창 17:20)
“일어나 아이를 일으켜 네 손으로 붙들라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 하시니라.”(창 21:18)
라고 약속하셨다.
야곱의 쌍둥이 형 에서의 후손이나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면서 세상이 멸망한 줄 알고 롯의 두 딸이 자손의 끊어짐을 면하기 위해 고육지책으로 아버지에게 독주를 마시게 한 후 동침하여 낳은 모압과 암몬이 있지만, 그들의 후손은 현대 중동 국가의 어느 나라 민족인지 특정되지 않고 있다.
넓게 봐서 오늘날 중동지역은 크게 보아, 이삭의 후손인 이스라엘과 이스마엘의 후손인 중동국가들로 나뉜다고 보면 되겠다.
인구로 볼 때, 이스라엘 국민은 2200만 명이라면 중동국가의 인구는 거의 3억 명에 이른다.
두 민족은 같은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 모두 하나님의 복을 받았지만, 두 민족은 서로 원수로 싸우고 있다.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아들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의 후사로 여겨진다(창세기 17:19-21).
하나님은 이삭과 그의 자손을 통해 특별한 언약을 이어가겠다고 말씀하셨고, 이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복의 통로가 될 것을 의미한다.
이 언약은 결국 이삭의 후손인 야곱, 이스라엘 백성에게로 이어지며, 그들을 통해 메시아가 오리라는 약속과도 연결된다(갈라디아서 3:16).
따라서, 이삭의 후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언약은 단순한 민족의 번성에 그치지 않고, 신앙과 구원의 약속을 포함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마엘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므로 그로 인해 민족이 번성할 것을 약속하셨다.
이스마엘은 열두 아들의 조상이 되어, 아랍 민족의 조상이 되었다고 전통적으로 이해된다.
이스마엘에게 주어진 복은 번성과 힘에 관한 복으로, 언약의 후사는 아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보호와 번영을 약속받는다.
이 복은 주로 물질적이고 민족적인 번영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이삭의 언약과는 구원의 성격이 다르다.
신학적으로, 이삭과 이스마엘의 복은 언약적과 일반적 축복으로 구별된다.
이삭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언약적 축복을 이어가지만, 이스마엘은 하나님의 일반적 은혜의 복을 누린다.
이는 하나님이 모든 민족을 돌보시지만, 구원의 약속은 특별한 구속사적 의미를 지닌 특정 혈통을 통해 이어진다는 것을 나타낸다.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롬 9:7-9)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에서 이스마엘과 이삭의 관계를 율법과 은혜의 비유로 사용하며, 신약에서 이삭의 후손이 신앙과 자유의 상징으로, 이스마엘은 육체의 자녀, 율법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23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 4:22-26)
(갈라디아서 4:22-31).
따라서, 이스마엘의 후손과 이삭의 후손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과 언약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속사적 의미와 구원의 약속에 따라 각각 다르게 구별된다.
아브라함 씨가 아무리 거룩하다 해도, 사라라는 여인의 밭에 심기우면, 거기서 나오는 아들은 약속의 씨, 자유하는 아들이 나오지만, 하갈이라는 여종의 밭에 심기우면, 거기서 나오는 아들마다 종의 자손이 나올 뿐이다.
중동전쟁은 이처럼 이복형제인 이스마엘의 후손과 이삭의 후손 간의 깊은 갈등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을 통해 각각 다른 방식으로 축복을 받은 두 후손에게 주어진 서로 상반된 축복은 형제간의 지속적인 갈등을 낳게 했다.
이삭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선택한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구속사적 약속을 통해 세계적인 신앙의 중심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영적인 중심성과 독점성을 지니게 되었다.
반면, 이스마엘의 후손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아 번성과 물질적 축복을 누리는 민족으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강한 자부심과 독립적 민족성을 형성하게 되었다.
이러한 구도의 차이는 두 민족이 역사적으로 갈등하고 충돌하게 된 주된 이유 중 하나로 작용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세운 약속이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과 이스마엘의 후손에게 주어진 큰 번성의 복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발현되어, 이들이 종말까지 갈등하며 각자의 길을 가는 운명을 보여준다.
성경적으로 보았을 때 이 갈등은 종말에 대한 예언과도 연결되며, 끝날 수 없는 갈등과 전쟁을 내포하고 있다.
특히 구약적 갈등의 잔인함은 이 싸움의 본질을 드러내며, 이스라엘 민족이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해 구속사의 구약적 형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신약의 영적 평화와 해방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계속해서 구약적 전쟁 양식을 반복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이 전쟁은 단순한 군사적 대결을 넘어서, 종교적, 민족적, 신학적 정체성의 싸움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 갈등은 이스마엘의 후손과 이삭의 후손이 각자의 영역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나름의 복을 받으면서도, 서로의 정체성에서 뿌리 깊은 갈등과 긴장을 지속적으로 겪는 운명임을 시사한다.
결론적으로, 중동 전쟁은 종말에 이를 때까지 지속될 운명적인 갈등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구약의 전쟁 방식과 잔인함을 통해 표현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메시아를 거부했기 때문에 그들의 갈등에는 용서와 화해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