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의 단절
(이 꿈 분석은 [채식주의자]의 내용과 연결성이 없을 수도 있다. 꿈 자체에 대한 분석이기 때문이다. 내가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에 입각하여 꿈분석을 하는 이유는, 한강의 소설을 해석하기에 멜라니 클라인만큼 더 좋은 이론이 없기 때문이다. 클라인의 입장에서 한강의 작품을 보면, 지금까지 알려진 관점과 전혀 다른 내용을 접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멜라니 클라인의 입장에서 한강의 작품을 보지 않으면, 소설 등장인물 또는 작가의 심리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어두운 숲이었어. 아무도 없었어. 뾰족한 잎이 돋은 나무들을 헤치느라고 얼굴에, 팔에 상처가 났어. 분명 일행과 함께였던 것 같은데, 혼자 길을 잃었나 봐. 무서웠어. 추웠어. 얼어붙은 계곡을 하나 건너서, 헛간 같은 밝은 건물을 발견했어. 거적때기를 걷고 들어간 순간 봤어. 수백 개의, 커다랗고 시뻘건 고깃덩어리들이 가느다란 대막대들에 매달려 있는 걸, 어떤 덩어리에선 아직 마르지 않은 붉은 피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어, 끝없이 고깃덩어리들을 헤 치고 나아갔지만 반대쪽 출구는 나타나지 않았어. 입고 있던 흰옷이 온통 피에 젖었어.
어떻게 거긴 빠져나왔는지 몰라. 계곡을 거슬러 달리고 또 달렸어. 갑자기 숲이 환해지고, 봄날의 나무들이 초록빛으로 우거졌어. 어린아이들이 우글거리고, 맛있는 냄새가 났어. 수많은 가족들이 소풍 중이었어. 그 광경은, 말할 수 없이 찬란했어. 시냇물이 소리 내서 흐르고, 그 짚으로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 김밥을 먹는 사람들. 한편에선 고기를 굽고, 노랫소리, 즐거운 웃음소리가 쟁쟁했어. 하지만 난 무서웠어. 아직 내 옷에 피가 묻어 있었어. 아무도 날 보지 못한 사이 나무 뒤에 웅크려 숨었어. 내 손에 피가 묻어 있었어. 내 입에 피가 묻어 있었어. 그 헛간에서, 나는 떨어진 고깃덩어리를 주워 먹었거든. 내 잇몸과 입천장에 물컹한 날고기를 문질러 붉은 피를 발랐거든. 헛간 바닥. 피웅덩이에 비친 내 눈이 번쩍였어.
그렇게 생생할 수 없어.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이 내 얼굴이, 눈빛이.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 아니야. 거꾸로, 수없이 봤던 얼굴 같은데, 내 얼굴이 아니었어. 설명할 수 없어.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생생하고 이상한 게 이상한 느낌을.
대상관계이론 창시자인 멜라니 클라인의 이론에서 꿈은 무의식적 불안과 욕구를 표현하는 것으로, 종종 유아기의 관계에서 비롯된 감정을 반영한다.
클라인은 사랑하는 대상에 대해 강렬하고 모순된 감정을 분리하거나 외부 대상으로 투사하는 방어 기제를 강조했다.
[채식주의자]에 나타난 영혜의 첫 꿈에서, 외롭고, 무성한 숲을 헤쳐나가는 장면과 부상에 대한 감정은 안전한 길을 찾으려는 내적 갈등과 초기 양육자와의 미해결 된 갈등을 상징하는 것 같다.
어두운 숲은 불안과 두려움을 상징한다.
혼자 길을 잃었다는 것은 초기 어머니의 따뜻한 품을 경험하지 못해 유아기부터 생존의 과제를 아기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음을 상징한다.
그 결과 꿈 주인의 유아기 이후 기본적인 정서로서 '불안'이 작동하고 있으며, 생존을 위해 '분열'을 방어기제로 사용할 수밖에 없게 되면서, 개인의 정체성이나 삶의 방향을 잃은 상태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뾰족한 잎이 돋은 나무들을 헤"쳐 나가는 모습은 유아기에 어머니의 품에 대한 느낌일 수 있다.
그 결과 아이는 온통 상처 투성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이 꿈속 숲은 억눌린 불안과 두려움, 아마도 양육자에 대한 분노를 내포하고 있다.
유아기의 상처는 성인이 되어서도 트라우마로 남아 있으며, 어두운 숲에서 헤매는 장면은 그녀가 그 트라우마를 피해 가기 위해 이리저리 방황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 트라우마는 유아기에 중요한 대상(엄마)으로부터 철저하게 보호받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아기가 첫 1년이 되면, 피부를 경계로 하여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얼굴과 팔에 난 상처는 유아기에 어머니로부터 제대로 거울반영을 받지 못했음(얼굴상처)과 현실상황을 내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되었음(팔 상처)을 의미한다.
어두운 숲에서 비어 있고 무관심한 배경은 양육 부재로 아직 현실을 알아야 할 필요가 없는 초기 시기에 원시적인 형태로 현실이 들어왔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채식주의자의 결말을 처음부터 드러내주는 암시가 담긴 부분이다.
'얼어붙은 계곡'을 지났다는 것 역시 유아기 어머니의 품에 대한 경험, 어머니 젖가슴에 대한 경험을 상징한다.
헛간 같은 밝은 건물 안에서 발견한 고깃덩어리는 생명과 죽음의 경계를 나타내며, 인간의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본능을 상징한다.
영혜는 고기와 같은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며, 이는 그녀가 사회의 기대와 규범에 대한 반발을 상징한다.
영혜는 인간의 폭력적 본성을 드러내는 고기를 거부하게 되고, 이는 사회를 향한 그녀의 내적 갈등과 사회적 압박에 대한 거부이다.
피가 떨어지는 모습은 잔인함이나 폭력성을 나타내며, 이는 내면의 갈등이나 억압된 감정이 표출되는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다.
피가 떨어지는 모습에서 보이는 것은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나오는 젖에 대한 느낌과 연결된다.
소설 속에서는 나타나지 않지만, 영혜가 유아기에 어머니의 품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도 안전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산모가 아기를 낳아 양육하는 첫 환경은 남편의 안전한 보호와 주변에 대한 철저한 경계를 필요로 한다.
우리나라 출산 문화에서는 심칠제라 하여 출산 후 21일 동안 아무도 양육공간 안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바로 이 시기에 어머니의 젖가슴에서 빨아들이는 젖을 피가 뚝뚝 떨어지는 모습으로 기억하고 있다면, 양육 초기부터 아버지나 주변 사람의 무자비한 폭력이 있었다는 말이 된다.
유아초기의 환경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폭력적이었는가는 이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보이지 않는 동기로 작동한다.
이렇게 볼 때, 영혜의 채식주의적 선택은 단순한 식습관의 변화가 아니라, 폭력적인 사회 구조에 대한 저항으로 해석될 수 있다.
꿈주인공은 그 숲에서 빠져나왔다.
계곡을 거슬러 계속 달린 결과 숲이 환해지고, 거기에는 아이들이 우글거리고 가족들이 소풍을 나왔다.
숲의 환한 모습과 어린아이들 존재는 순수함과 안전을 상징한다.
그렇지만 주인공은 피가 묻은 옷을 입고 있으며, 이는 내면의 갈등과 죄책감을 나타낸다.
그것은 영혜가 그동안 폭력을 상징하는 고기를 거부하지 못하고 계속 먹어온 죄책감을 드러낸다.
이는 클라인의 '분열'개념과 연결되어, 자아가 안전한 세계와 위협적인 세계를 구분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준다.
유쾌한 아이들과 소풍 나온 가족들의 화목한 장면에 꿈 주인공이 들어가지 못하고 나무 뒤에 숨는 장면은 외부 세계와의 단절을 의미하며, 사회적 관계에서 고립감을 상징한다.
고기를 거부하는 것이 사회적 관계, 타자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을 보여준다,
영혜는 이 꿈을 꿈으로써 더 이상 고기를 굽고 함께 먹으며, 함께 노래하고 즐기는 사회적 관계의 즐거움을 포기하게 된다.
꿈주인공은 그런 즐거움을 '무섭다'라고 표현한다.
이는 영혜가 지금까지 잘 살아온 일상을 잃어버림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꿈 주인공은 이제 정체성 혼란을 겪게 되었고, 그녀에게 존재론적 변화가 일어났다.
자신의 존재가 생소해졌음을 보여주는 대목은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분명 내 얼굴이었어."이다.
과거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 간의 단절을 느끼며, 이는 내면의 깊은 변화와 갈등을 반영한다.
'이빨에 씹히던 날고기의 감촉'은 과거의 식습관과 그에 대한 감정을 상기시킨다.
고기를 씹던 경험이 생생하게 느껴지지만, 그 감각이 이제는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녀가 과거의 자신과 단절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꿈은 영혜의 첫 꿈으로써 소설의 전반의 무드를 보여준다.
고기를 먹던 과거와의 단절, 이것은 아버지의 폭력에 저항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철수함으로써 폭력에 저항하는 방식을 선택했음을 보여준다.
유아기 초기 존재를 부정당함에 대해 공격성으로 분노하지 못하고, 수동적 공격성으로 자기 자신을 공격하는 형태를 선택할 것임을 암시한다.
그것이 바로 채식주의자가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