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말은 늘 옳은 말처럼 들리지만, 그 말이 여성에게 얼마나 무거운 짐으로 작용하는지 우리는 자주 놓치곤 한다. 이 글은 ‘좋은 엄마’라는 이름 아래 요구되는 사회적 이상이, 여성의 내면에서 어떤 심리적 긴장을 만들어내는지를 ‘자아이상’과 ‘이상적 자아’라는 개념으로 풀어낸다. 현모양처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존재 그 자체로 존중받기를 원하는 여성의 내면을 함께 들여다본다.
한국 사회에서 “좋은 엄마”라는 말만큼 무해하게 들리면서도, 여성의 내면을 압박하는 무게감 있는 말이 또 있을까. 누군가 “나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어요”라고 말할 때, 그 말은 한 개인의 소망처럼 들리지만, 그 이면에는 사회가 요구한 오랜 이상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때로 그 말을 내면 깊숙이 품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정작 묻지 않는다. 그 ‘좋은 엄마’란 누구에게 좋은 엄마인가? 나에게 좋은 엄마인가, 아니면 사회가 이상적으로 규정한 어떤 여성상인가?
이 글에서는 ‘좋은 엄마 콤플렉스’의 심리적 구조를 ‘이상적 자아(ideal ego)’와 ‘자아이상(ego ideal)’이라는 정신분석적 개념을 통해 조명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 콤플렉스가 어떻게 여성의 존재방식을 억압하면서도, 동시에 내면의 자각과 해방의 단초가 될 수 있는지를 살펴보려 한다.
정신분석에서 ‘자아이상(ego ideal)’은 내가 그렇게 되고자 하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이 이상은 나의 내면에서 자발적으로 생성된 것이기보다는, 사회와 부모, 문화가 기대하는 규범적 기준에 따라 구성된 외부의 이미지다. 자아 이상은 일종의 감시자이자 평가자 역할을 하며, 우리는 이 이상에 부합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억제하거나 억압하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좋은 엄마’는 전통적으로 ‘현모양처’의 이미지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왔다. 신사임당이라는 상징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는 자녀의 교육에 헌신하며, 가사와 가문을 돌보는 데 자신의 삶을 모두 바친 여성으로 이상화되었다. 이 여성상은 결혼 제도와 가부장적 상징계가 여성에게 요구한 ‘모성적 희생’의 표상이며, 수많은 여성들이 알게 모르게 이 자아이상을 내면화하며 살아간다.
이 자아 이상은 여성들에게 일종의 미덕처럼 주입된다. 참는 것이 사랑이며, 자녀를 위해 자신의 꿈을 미루는 것이 모성이고, 남편을 위해 감정을 절제하는 것이 아내의 도리라는 이름으로. 이러한 자아 이상은 여성으로 하여금 자신을 끊임없이 평가하고 검열하게 만든다. “나는 엄마로서 충분히 헌신하고 있는가?” “내가 나의 욕구를 먼저 생각하면 이기적인 엄마가 아닐까?” 이런 자기 검열은 때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지만, 실제로는 여성의 자아를 분열시키고 존재의 중심을 흐리게 만든다.
이에 반해 ‘이상적 자아(ideal ego)’로서의 여성상은 보다 자기중심적이고 실존적인 욕구에서 비롯된다. 이상적 자아는 내가 나로서 존재하고자 할 때, 자유롭고 온전한 나로 살아가기를 바라는 내면의 상이다. 이는 외부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남의 기대에 맞추기보다 스스로 의미를 느끼는 방식으로 삶을 구성하고자 하는 욕망과 관련되어 있다.
많은 여성들이 출산과 육아, 가사노동을 통해 모성을 체험하면서도, 그 안에서 오히려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경험을 하곤 한다. 그러나 그 안에서 다시금 피어나는 어떤 목소리가 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아이의 엄마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서 어떤 존재인가?”
이 질문은 바로 이상적 자아를 향한 내면의 부름이다. 모성은 여전히 소중한 가치일 수 있으나, 그것이 여성을 규정하는 유일한 이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모성은 선택될 수 있어야 하며, 여성은 모성이 아니라 존재로서 존중받아야 한다.
여성이 자신만의 욕구를 인식하고 표현하기 시작할 때, 그는 더 이상 타인의 기대에만 반응하지 않는다. 그는 더 이상 “집안의 안정을 책임지는 중심축”으로 존재하기보다, 그저 있는 그대로 존재(being)하기를 원한다.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모성적이면서도 자기중심적일 수 있는 복합적 존재로, 그는 자신의 내면을 살아가려 한다. 이것이 바로 이상적 자아의 실현이다.
여성이 자아이상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자신의 이상적 자아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배우자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남편은 종종 아내를 ‘가정의 기둥’으로 삼고 모든 감정적, 실질적 부담을 그녀에게 지운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이상적인 엄마’, ‘이상적인 아내’라는 자아이상을 그녀에게 투사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모름지기 이런저런 모양으로 살아 줬으면 좋겠어."
라는 남편의 요구는 아내로 하여금 한 여성으로 살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나 진정한 관계는 타인을 자아 이상이 아닌 존재 자체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먼저 남편이 아내에게 자아이상으로서 아내가 아닌 이상적 자아로 살아가는 아내가 되기를 바랄 수 있어야 한다.
남편이 아내에게 이상적 자아를 투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내를 ‘완벽한 엄마’가 아니라 ‘한 존재로서의 여성’으로 인정하고, 그녀가 스스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이다. 모성이라는 역할을 내려놓고도 사랑받을 수 있으며, 자기 욕망을 추구하면서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주어질 때, 여성은 자아이상의 감시로부터 벗어나 진정한 자기 자신을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남편의 보호란 경제적 혹은 물리적인 보호만이 아니라, 심리적 독립을 인정하고 내면의 주체성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아내를 ‘가문의 짐을 짊어진 존재’가 아니라, 홀로 서 있는 존재로 대하며, 가정이라는 공동체 안에서도 ‘엄마’라는 이름 없이 존재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보호다.
‘좋은 엄마 콤플렉스’는 단순히 육아나 가사에 대한 부담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성 내부에 자리한 이상과 현실, 자아이상과 이상적 자아 사이의 깊은 긴장을 반영한다. 한편으로는 누군가의 기준에 부합하고자 애쓰는 자아 이상이 여성의 삶을 지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 틀을 깨고 나와 존재하고자 하는 이상적 자아가 조용히 저항한다.
이제는 여성들이 ‘좋은 엄마’라는 이름으로 고통받는 시대를 넘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시대를 살아가야 한다. 그리고 그 길은 외부의 인정을 받는 삶이 아니라, 내면의 자아와 조우하고, 그 존재를 존중하는 삶으로 향하는 여정일 것이다. 진정한 해방은 ‘좋은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나’가 되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여정을 함께 걸어주는 관계, 그 안에서의 이해와 지지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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