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 사냥꾼의 유산인가 제약회사의 산물인가

‘다름’이라는 유산을 둘러싼 오해와 진실

ADHD, 질병인가 발명품인가?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는 오늘날 가장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심리 진단 중 하나다. 동시에, 가장 첨예한 논쟁의 대상이기도 하다. ADHD가 존재하는 ‘실제 질병’인지, 아니면 제약회사가 약을 팔기 위해 만든 ’이름뿐인 병’인지에 대한 질문은 아직도 명확히 결론 나지 않았다.


1970년대 이후 ADHD 진단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그에 따라 약물 처방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반면 ADHD라는 진단 자체가 과연 객관적인 기준에 기반한 것인지, 아니면 사회적 순응과 학업 성취라는 특정 가치에 맞지 않는 행동을 병리화한 결과인지에 대한 의문은 끊이지 않는다.


ADHD 진단은 마치 ‘사회가 용납할 수 있는 행동 범위’의 경계선을 의료적 언어로 그려놓은 듯 보이기도 한다. 과연 ADHD는 개인 내부의 결함일까, 아니면 외부 기준의 강압이 만들어낸 억압의 이름일까?


목표를 잃은 삶, 흩어진 주의력


ADHD의 증상은 종종 ‘주의력이 산만하고, 충동적이며, 일을 미룬다’로 요약된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의미 없는 일에는 집중하지 못하지만, 본인의 가치나 흥미와 연결된 일에는 놀라울 정도의 몰입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ADHD를 ‘의도 결핍 장애(Intention Deficit Disorder)’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는 알지만, 그것이 삶의 방향성과 맞닿아 있지 않으면 쉽게 동기화되지 않는다. 오히려 압박이 심해지는 마감 직전이 되어서야 뇌가 활성화되고 집중력이 폭발하는 ‘시한폭탄형 인지 시스템’을 갖고 있다.

즉, 이들의 주의력은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정렬되지 않은 상태일 뿐이다. ADHD는 단지 ‘주의력의 결핍’이 아니라 ‘의미와 연결되지 않은 삶’에 대한 내면의 저항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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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 대 농부: 진화의 관점에서 본 ADHD


ADHD를 ‘진화적 유산’으로 바라보는 이론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사냥꾼 대 농부 가설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ADHD는 단지 현대 사회가 규정한 병이 아니라, 인간이 수렵 채집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생존 전략의 흔적일 수 있다.

사냥꾼은 순간적인 집중력과 주변 환경에 대한 예민함, 빠른 판단이 생존의 핵심이었다. 그들은 특정 시간 동안 강한 몰입을 발휘하고, 위험한 상황에서 민첩하게 반응했다. 바로 ADHD의 특성과 일치하는 행동 양식이다.

반면 농경 사회로 넘어오면서 인간은 규칙적인 루틴과 지루한 반복을 견뎌야 했고, 이러한 생활에 맞지 않는 행동들은 ‘산만함’, ‘충동성’이라는 꼬리표를 달기 시작했다. 사회 구조가 바뀌면서 사냥꾼의 기질은 점차 병리화된 것이다.

즉, ADHD는 낙오자가 아니라 시대가 바뀌면서 방향을 잃은 진화의 유산일 수 있다. ADHD는 적응 실패의 증거가 아니라, 시대가 요구하는 적응의 방식이 달라졌다는 신호다.


병이 아닌 다름, 그리고 가능성


ADHD에 대한 최근의 접근은 신경 다양성(Neurodiversity)이라는 개념과 연결된다. 즉, 인간의 뇌는 다양하게 발달할 수 있으며, ADHD는 ‘정상’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변형된 정상이라는 관점이다.


이들은 창의적이다. 직관적이다. 한 번 불이 붙으면 누구보다 깊이 몰입한다. 예술가, 과학자, 창업가, 운동선수 등 기존의 틀에 도전하는 영역에서 ADHD적 기질을 가진 이들이 비범한 성취를 이루는 경우는 적지 않다.


이들은 실패를 자주 겪지만, 그로 인해 회복탄력성도 높다. 반복되는 오해와 낙인에도 불구하고, 다시 도전하고 스스로를 이해하며 타인을 더 깊이 공감하게 된다. ADHD는 약점만이 아닌, 다르게 생긴 강점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사회적 낙인과 제약회사의 그림자


하지만 현실은 이들을 환대하지 않는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게으르다’, ‘산만하다’, ‘자기 관리가 안 된다’는 오해를 받는다. 특히 성인 ADHD는 더 큰 오해 속에 방치되기 쉽다. 그들은 직장과 가정에서 이해받기 어려운 ‘문제적 인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한편, ADHD 진단의 급증과 약물 처방의 증가에 따른 제약 산업의 이해관계도 무시할 수 없다. 일부에서는 ADHD 진단이 지나치게 확대되었고, 약물이 남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아동에게 처방되는 약물의 장기적인 부작용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부족하다.


결국 ADHD를 둘러싼 진실은 진단의 과잉과 현실의 무지가 동시에 얽혀 있는 복합적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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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ADHD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우리가 ADHD를 마주할 때, 단순한 병으로만 보는 시각은 위험하다. 중요한 것은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그들이 가진 고유한 특성과 잠재력을 사회 속에서 어떻게 꽃 피우게 할 것인가에 있다.


학교, 가정, 직장 등 다양한 공간에서 한 가지 기준만을 강요하지 않고, 다양한 학습 방식, 업무 방식, 관계 맺기의 방식들이 공존할 수 있어야 한다. ADHD적 특성을 가진 사람들도 자신의 리듬과 방향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다름을 ‘교정’이 아닌 ‘존중’의 대상으로 삼을 때, 사회는 훨씬 풍요로워질 것이다.


결론: 사냥꾼의 후예로 살아간다는 것


ADHD는 질병이라기보다는 시대와 환경이 바뀌며 조명받는 인간 행동의 하나일 수 있다. 만약 우리가 모두 농부가 되어야만 인정받는 세상이라면, 사냥꾼의 자질은 필연적으로 병이 된다.


하지만 시대는 변화하고 있다. 창의성, 민첩성, 직관력, 회복탄력성과 같은 특성은 이제 미래 사회의 핵심 역량이 되고 있다. 사냥꾼의 기질은 결코 시대에 뒤처진 유물이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재해석되어야 할 인간의 또 다른 가능성이다.


ADHD는 더 이상 숨겨야 할 이름이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또 다른 인간 존재의 방식이다.

ADHD는 병이 아니라, 다름이다.

그리고 그 다름 속에서 세상은 더 넓어지고, 더 창조적으로 진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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