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어디에 있나?
아이의 성적은 올랐다. 하지만 아이의 존재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아이는, 더 이상 자신을 말하지 않는다.
“너는 무엇을 잘하니?”
라는 질문 앞에서, 아이는 잠시 멈칫한다. 그 질문은 너무 오래 반복되어 왔고, 너무 많은 기대가 얹혀 있었다.
그 말은 사실,
“너는 사회가 원하는 걸 얼마나 잘 따라 하니?”
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아이는 그 뜻을 너무 잘 알아버렸다. 아이는 자기 존재를 위해 살지 않고, 사회가 요구하는 것에 맞춰 살아가는 법을 배워버린 것이다.
“의사가 되고 싶어요.”
"판사가 되는 게 제 꿈이에요."
그 말은 정말 아이의 말일까? 엄마의 생각을 집어넣은 결과, 아이는 엄마가 원하는 대로 생각하게 되는 투사적 동일시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정신분석학자 라캉은 욕망이 타자의 욕망을 거쳐 형성된다고 말한다. 부모의 기대, 사회의 기준, 친구들의 시선. 아이의 욕망은 그 모든 것의 합성물이다.
교육은 아이에게 묻는 척하지만,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회가 원하는 욕망을 네 욕망으로 착각해도 괜찮아.”
부모나 학교나 아이의 존재에 대한 존중보다는, '당장 내 앞에서 꽃을 피우기'를 원한다.
카이스트 김대식 교수는 말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욕망하지 않는 일에 노력할 때, 대부분 중간 정도밖에 해내지 못한다.”
이 말은 단순한 동기부여의 문제가 아니다.
욕망이 없는 노력은 방향을 잃고,
의미 없는 반복은 결국 AI가 더 잘하는 영역으로 흡수된다.
지금까지는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이 통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엇을 향해 열심히 하느냐’가 더 중요해진 시대다.
AI는 이미 평균적인 능력을 넘어서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중간 정도의 실력, 평균적인 성과, 보통 수준의 노력. 이 모든 것은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낼 수 있는 영역이다.
학교에서, 학원에서, 10년 넘게 열심히 공부해도 그 공부가 AI가 더 잘할 수 있는 일이라면, 그 노력은 결국 경쟁이 아닌 대체의 대상이 된다. 현재 하고 있는 식으로 교육받고, 힘써 노력하여 탁월한 경쟁력을 갖춘다 해도, 언젠가 AI에 의해 대체대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20년 가까운 시간을 교육에 투자하게 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그 긴 시간 동안 아이들은 대부분 자기 욕망이 아닌, 부모의 욕망을 수행한다.
“엄마가 짜준 시간표대로 움직이고, 엄마가 원하는 대학에 가고, 엄마가 바라는 직업을 향해 달린다.”
그렇게 해서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들어간다 해도, 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종종 허무감이다.
“이 모든 게 AI와 경쟁하기 위해서였나?”
“나는 언제 내 삶을 살아봤지?”
김대식 교수의 말에 의하면, '평균을 목표로 삼는 시대는 끝났다.' 앞으로의 시대는 ‘슈퍼스타 경제 시스템’이다. 무엇을 하든, 얼마나 잘하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중간은 의미가 없다. 중간은 AI가 대신한다.
지금의 10대, 20대가 앞으로 살아갈 100년의 삶에서 ‘중간’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0년 남짓이다. 학교에서 20년, 사회에서 10년이면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 이후는? AI가 더 잘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자기만의 존재 욕망이 없으면 설 자리가 없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기 존재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남들이 하니까, 안정적이니까, 부모가 원하니까.
이런 이유로 선택한 길은 AI가 더 잘할 수 있는 길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자신만의 욕망에서 비롯된 길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고유한 인간성의 영역이다.
이제 교육은 바뀌어야 한다. “너는 무엇을 잘하니?”가 아니라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 “너는 어떤 삶을 살고 싶니?”라고 묻는 교육이어야 한다.
욕망은 단순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방향이며, AI 시대에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마지막 영역이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다. 성적이 아니라 감정이다. 평균이 아니라 극단이다.
“너는 무엇을 잘하니?”가 아니라
“너는 무엇을 좋아하니?”라고 묻자.
그 질문이야말로, 아이의 욕망을 깨우는 첫 번째 문장이다.
[뉴키즈]에서 유재석이 빌 게이츠에게 물었다.
"자녀에게 물려주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혹자는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는 의외의 답변을 했다.
"호기심과 열정"
이 두 가지가 빌 게이츠의 답변이다.
지금의 교육은 여전히 묻는다.
“너는 무엇을 잘하니?”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너는 누구의 꿈을 살고 있니?” 또는 "너는 누구의 욕망을 위해 살고 있니?"
그 물음이야말로,
AI 시대의 인간이 다시 인간다워질 수 있는
첫 번째 교육 혁명이다.
내 꿈을 꿔야 하고, 나만의 고유한 존재 욕망으로 현실을 살아야 한다.
이것은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으나, 부모가 막고 있다.
더 이상 부모는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아이의 삶을 방향을 잡아가서는 안된다.
(참고 유튜브: https://youtu.be/mOGzaJRFv2E 김대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