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by 공기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너무 고전적이어서 오히려 더 낯설게 다가오는 이 문장.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같은 제목의 책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지만, 직접적으로 그 내용과 줄거리를 공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출발점이자, 감독 자신에게 던진 한 문장의 질문이었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영화는 마치 그 질문에 대한 자기 고백이자, 유언처럼 흘러간다.


새와 아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

이 작품엔 많은 새들이 등장한다. 왜가리, 앵무새, 펠리컨—그 어떤 것 하나도 무의미하지 않다. 왜가리는 늘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는 듯한 존재로 등장하고, 앵무새들은 익살스러운 말투로 진실을 감추며, 펠리컨은 혐오스러우면서도 마치 책임을 전가받은 자처럼 고독하다.
미야자키는 늘 동물들을 상징의 언어로 사용해왔고, 이번에도 새는 "중간자", 즉 현실과 환상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주인공 ‘마히토’는 살아가는 동안 너무 많은 죽음을 마주한다. 그리고 증조부가 지탱하던 이상 세계 속에 들어가, 그 안의 질서와 혼란, 악의 없던 순수한 돌들과 무너지는 구조물을 본다. 이 모든 장치는, 마히토 자신이 세상에 대해 배워가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느껴진다.


13개의 돌과 증조부의 세계

영화에서 가장 상징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13개의 돌'이다. 3일에 한 번씩 그 돌을 쌓으라는 말은 단지 구조물을 유지하라는 명령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지속에 대한 의지와 태도를 묻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쌓는다는 것.
악의 없던 존재들이 만들어낸 세계가지만, 결국 그 역시 유지되지 못하는 불안정한 세계였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

그 돌들은 미야자키가 직접 쌓아올린 작품들 같기도 하다. 그에게 '쌓기'는 곧 '창작'이며, 그 창작은 이상을 향한 기도이고,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온 행위다. 마히토는 그 유산을 물려받지만, 그것을 "이어받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대신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맞서기로 결심한다. 그 선택의 순간, 나는 마히토가 아니라 미야자키가 직접 관객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내가 만든 세계는 이제 끝났다.
하지만 너희는 너희 방식대로 또 살아갈 것이다."


증조부는 곧 미야자키,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

내가 이 영화를 보며 가장 울컥했던 부분은, 증조부를 통해 감독 자신을 떠올렸을 때였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온 세계를 곧 떠나야 하는 창작자. 그가 마지막으로 어린 자신에게 묻는다.


"고통이 있었던 그 시절로 되돌아갈래?"


그리고 그 아이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응, 돌아갈래."


그 말은 내 안에도 울렸다.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과거임에도, 그 안에 있는 나를 버리지 않겠다는 선택. 그건 용기였고, 동시에 창작자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형태였다.


그대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이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관객은 결국 한 문장과 다시 마주하게 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나는 대답할 준비가 아직 되지 않은 자신을 마주한다.
하지만, 괜찮다. 이 영화는 그 질문에 답하라고 재촉하지 않는다.
다만 그 질문을 마음속 깊숙이 심고,
우리가 쌓는 '돌' 하나하나의 의미를 자각하게 만든다.

우리가 언제 무너지든, 다시 쌓는 일.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면—
나도 조용히,
돌 하나를 더 얹고 싶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은 종종 동화처럼 시작해 철학으로 끝난다.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그 마지막 문장의 끝에서,
삶을 향해 아주 조용히 물러나듯, 하지만 깊게 남는 울림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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