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이별 그리고 죽음. 나에게 있어서 이 세가지 요소가 어우러진다는 건 거의 치트키나 다름없다. 누구보다 삶을 아끼고 이별을 아파한다. 그리고 죽음을 두려워 한다. 아픔의 강도를 타인과 비교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 이 아픔은 삶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고되다.
이 드라마를 보면 언제나 삶과 죽음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선다. 이기적인 선택과 이타적인 선택이 줄기차게 이어진다.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고 자신을 위해 희생을 강요하기도 한다. 수술비를 후원하기도, 사기를 쳐 타인의 돈을 뺏기도 하며 또한 사랑이란 이름으로 부담을 주기도 부담을 덜기도 한다.
삶과 죽음은 언제나 우리에게 가까이 있지만 또 멀게만 느껴진다. 허황된 의미에서 선택의 정답을 찾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희생을 해야만 사랑일까, 배려를 해야만 사랑일까, 부담을 덜어내야만 사랑일까.
사랑은 아름다운 게 분명 맞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사랑을 하는 것이라 단언코 말할 수 있다. 그렇기에 안타깝게도 가장 쓰라린 아픔도 사랑에 의해 만들어진다. 그 사랑을 이용하여 사람을 쥐락 펴락 한다는 게, 나는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사랑과 희생은 같은 선상에 있는 건가. 희생이 덜 하면 사랑이 덜 한 것인가? 희생이 죽음을 무릅쓴 것이라 해도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사실 드라마에서는 이런 아픔을 보여주는 것만큼이나 좋은 것들, 이를테면 분명한 사랑과 추억, 우정 등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괜스레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어떤 회차에는 어머니와 그렇게 싸우다가도 어머니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자식의 모습을 보여준다.
겉으론 표현하기 힘들지만 어찌되었든 사랑한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아이의 모습이 예쁘기만 하다. 이 드라마를 보며 이런 장면들을 볼 때마다 눈물을 조금씩 훔치기도 한다. 죄책감에, 감사함에, 사랑함에.
부모의 존재가 그렇다. 한 없이 미안하고 한 없이 사랑하지만 그럼에도 표현하기가 껄끄러운 그런 존재. 그렇기에 부모와 자식 관계가 가장 아름다운 관계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치트키를 쓰고 있는 이 드라마는 역시나 나에겐 최고의 드라마다. 웃음을 주기도 하고 감동을 주기도 하는, 한 번은 쓰라린 아픔을 그리고 사탕을 주듯 사랑스러운 모습들을 보여주는 그런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격리되어 있는 현재 내 상황에서 이런 드라마를 봐서 더 좋았던 것 같다. 원래도 사람을 좋아했지만 더 인류애가 깊어진 느낌이랄까.. 모든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고 건강했으면 좋겠다. 내 주위 사람들은 물론이고 곧 내 주위 사람들이 될 모든 사람들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