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이상을 바라보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렇다. 나는 내가 가장 바라는 건 나의 행복이다. 그것을 위한 수단이 돈이든, 성공이든, 명예든, 관계든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행복하고 싶다. 즉, 나는 나의 행복한 모습이 내가 간절히 바라는 이상인 것이다.
행복. 어쩌면 닿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는 가장 행복한 시절이라며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되었든, 행복은 지금 순간에선 닿을 수 없는 이상과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 플라톤이 말하길, 이상은 닿을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 했다. 어쩌면 행복은 그저 바라만 보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행복했던 적이 있을까? 여러 상황들을 상상해봤다. 기억이 거의 없는 유년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 모습은 한 없이 변해갔고 그 순간 내가 웃는 표정을 하고 있던 시절은 언제일까 고민을 했다.
생각보다 쉬운 문제였다. 아마 이 답은 학창 시절일 것이다. 생각나는 게 그뿐이었다.
신기하게도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했고 또 돌아가기 싫어하는 시절이 나에겐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다. 아마 함께라는 단어를 온전히 실행할 수 있었던 가장 순수한 시기였기 때문이 아닐까 추측한다. 얼마 살지도 않았지만 반 오십이 된 나는, 그 함께라는 말이 너무나도 절실해졌고 그 마음과는 무색하게 이기적이고 모순된 모습밖에 남지 않았다.
지인과 이야기 중 이런 말이 나왔다.
‘첫사랑이 왜 기억에 가장 많이 남을까?’
지인은 나에게 이렇게 답변을 해주었다.
“내 생각엔, 가장 순수한 시절에 만났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것도 재지 않고 오직 사랑만 할 수 있었잖아.”
나는 이 말이 공감 가는 동시에 아차 싶었다. 그 말은 즉, 지금은 조금이라도 다른 것을 염두에 두고 사랑을 하고 있었단 뜻이니 말이다.
내가 이 대화를 꼭 말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내가 학창 시절을 가장 행복한 시절로 생각한 이유가 첫사랑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내 우정의 첫사랑은 학창 시절이었다.
가장 순수했기에 철이 없었던, 철이 없었기에 즐거웠던, 또 가장 즐거웠기에 가장 행복했던.
힘들었던 수험생활과 그런 마음들이 맞물려 서로가 더욱 끈끈해질 수 있었다. 한 없이 힘을 복 돋아주고 공감을 해주던 그 시절. 아무것도 재지 않고 온전히 서로를 바라봐주던 친구들. 행복해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우리 많이 컸잖아. 이제 다르게 좀 놀아야 하지 않을까? 서로에 대해 배려를 가져야 할 것 같은데..”
“상처를 받는다면 말해줘. 그렇다면 사과하고 하지 않은 게 맞지. 근데 있잖아. 우리끼리라도 이렇게 놀지 않으면 언제, 누구랑 이렇게 또 놀 수 있겠어. 나는 사실 학창 시절이 가장 그립고 행복했어. 그런데 아쉽게도 그 시절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이제 딱 한 가지밖에 남지 않았어. 그게 지금이야. 너희랑 노는 지금. 근데 그것마저도 없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씁쓸하고 아쉽다. 그러니까 너도 지금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