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정확하지는 않다. 기일을 정하는 날이 사망 날짜인지, 발인 날짜인지 아직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마지막으로 친구를 본 게 3월 1일이고 그 날이 친구를 발인한 날이기에 3월 1일을 친구와의 마지막 기념일이자 기일로 기억하기로 했다.
벌써 1년이다. 1년 전 지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하룻밤을 지새우고 친구를 보내기 위해 교회로 향했다. 친구들을 만나서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친구들과 “결혼할 때 다시 만나기로 했는데, 이렇게 되었네.”라는 말을 주고받았고 멋쩍은 웃음으로 대화가 끝나버렸다. 그때가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를 화장시키기 위해 관을 들어 올렸을 때, 모두가 흐느적거리며 울음을 참고 있을 때, 뼛가루가 되어 나온 친구를 잠잠히 지켜볼 때. 모두가 슬픈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나는 무덤덤했다. 처음 맞이한 친구의 죽음에 난 의외로 담담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났다. 담담했던 친구의 죽음은 생각 외로 강했고, 한 달 내내 밤낮 설치며 나를 울게 만들었다. 한 번씩은 친구가 꿈에 나와 나를 괴롭혔고 집에 남아있던 친구의 물건들은 이사를 두 번을 거쳤음에도 내 주위에 맴돌고 있다. 1년이 지났어도 미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고 친구의 아버님을 뵐 때면 아버님의 고맙다는 말이 죄스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네 기일에 맞춰 처음으로 네가 있는 곳으로 가보기로 했지만 세상이 야속하다. 코로나가 설치고 있어서 나갈 수가 없다. 죽은 너에게 가려는데 죽음이 무서워 나가지도 못하고 있는 내가 참 못나 보인다. 그러면서도 너의 용서를 구하고 있다. 이해해주겠지, 용서해주겠지. 일 년을 기다렸던 오늘을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는 내 마음도 생각해줘. 이런 말로 위안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을 스스로도 용서할 수 없지만 너라면 용서해주겠지. 그렇게 또 너에게 가는 발걸음을 떼지 못했다.
이제는 너에 대한 이야기를 담담하게 해낸다. 감정이 복받쳐 오르지도 않는다. 길을 지나가다 너와 했던 추억들을 줄줄이 읊어낸다. 중3 졸업하고 방방을 탄 것, 그 후 한스델리에 가서 양식을 시켜먹은 것. 내 첫 여행지는 전주였고 너와 함께 했었다는 것. 대학에 들어가 우리의 만남은 잠잠했지만 내가 부산으로 입학하게 되어 조금은 더 돈독해졌다는 것. 홍콩 여행을 같이 다녀온 것. 홍콩 센트럴 파크에 있던 관람차를 타고 내가 무서워하고 있을 때 네가 날 놀렸던 것. 그리곤 관람차가 흔들거리자 너도 같이 무서워했던 것. 네가 대학교 졸업을 위해 9등급 받았던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는 것. 결국 몇 달간의 노력으로 토익 800점에 도달했던 것. 방학 때마다 내 자취방에 와 같이 살았다는 것. 졸업을 앞둔 시기에도 어김없이 찾아와 함께 했다는 것. 배 타는 시기가 당겨졌다는 것. 그렇게 두려움이 커졌다는 것. 아버지에게 말을 하러 구미에 갔다던 네가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게 됐다는 것. 괜찮은 줄로만 알았는데 사실은 내 착각이었던 것. 누군가 나에게 너에 대한 걸 물었을 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는 것. 나도 죽음을 생각하게 됐다는 것. 그럼에도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울기만 했다는 것. 그제야 너의 죽음이 실감 났다는 것. 그리고 떠나기 전 너의 모습에서 변화가 눈에 보였던 것.
담담해졌다는 건 괜찮아졌다는 뜻이 아닌 것 같다. 아직도 너의 이야기의 끝엔 슬픔이 묻어 난다. 한 번 더 꿈에서 만날 수 있다면 미안하다는 말과 이제는 괜찮냐는 말을 하고 싶다. 3월 1일. 내가 너에게 가서 물었어야 하는 말을 너에게 오라고 하니 이것조차 참 이기적이다. 언제나 이기적이고 못된 친구와 계속 지내줘서 고맙다. 다음 기일엔 내가 못 갈 것 같으니 그 전에는 꼭 만났으면 좋겠다. 핑계일지도 모르는 코로나. 조금만 더 잠잠해지면 그때는 꼭 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