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란 삶의 반대쪽에 언제나 서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삶으로 시작하여 죽음이란 끝으로 걷고 있다. 다만 그 끝이 눈에 보이지 않으며 알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음에 대해 무감각할 뿐,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죽음에 더욱 가까워지고 있다.
친구가 떠난 후 죽음에 대해 부쩍 생각이 늘었다. 처음엔 살인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했다. 다음엔 천재지변에 의한 죽음. 이제는 자살까지. 어떻게 보면 내가 생각한 모든 죽음은 급작스러운 죽음이다. 이별을 가장 큰 고통으로 보는 나로서는 이러한 갑작스러운 죽음이 무의식적으로 가장 기피하는 것이 되었나 싶다.
나는 어떻게 죽을까? 나는 매 순간 삶의 끝인 죽음에 다가가고 있지만 그 결승선이 보이지 않기에 내 죽음은 언제나 막연하고 추상적인 현상이었다. 하지만 친구를 통해서 내가 결승선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부터 내 죽음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결승선이 아니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내 마지막 순간을 내가 알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 들었다.
최근 들어 힘든 일이 많았다. 죽으면 내 생은 끝이고 사후세계는 없으며 나는 무로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 잡으면서 자살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매일이 이토록 아프고 힘든 날 뿐이라면 정말 무서운 생각이지만, 어쩌면 내 삶의 마지막은 내 결정으로 일어날 것이라는 불확실한 예측을 했다.
유언장을 작성했다. 당장의 죽음을 바라보며 쓴 것이 아니라, 동아리에서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자는 관점에서 같이 유언장을 씀으로 각자의 삶을 통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유언을 쓰기 위해서는 하나의 가정을 세워야 했다. ‘나의 죽음’ 나는 죽을 것이라는 가정을 세웠다. 지금 이 과정에서 생각해 낸 죽음은 결고 보이지 않는 결승선이 아니었다. 필히 내가 만든 죽음 일터, 불명확성이 선명해질 것만 같았다.
편지를 쓸 수 없었다. 정말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내용으로 유서를 쓰고자 결심했다. 내가 죽음을 결심했다면 분명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을 알리기보단 내 죽음으로 다른 사람의 슬픔을 키우는 것을 막고 싶다. 그리고 먼저 떠나 간 친구에게 가장 듣고 싶은 말을 내 친구들에게 전하며 세상을 떠나고 싶다. 이 모든 말을 전할 수 있는 글을 적어내려 갔다.
쓰다 보니 내 삶의 마지막은 다시 보이지 않는 미지의 세계로 사라져 버렸다. 나는 스스로 부족한 사람이라 생각했기에 불행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활동 이후 난 생각보다 더 부족한 사람이었고 그럼에도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단 걸 깨달았다. 부족하지만 풍족했다.
예전부터 누구와 친하냐고 묻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무서웠다. 나는 친하다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그렇지 않을 거란 두려움이 나를 삼켜버렸다. 내가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걸 알게 됐을 때의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그 질문의 대답을 회피했다.
유서를 써보니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생각났다. 편지를 쓰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함과 미안함을 전하고 싶었다. 이것은 그 사람들이 나에게 의지되는 존재였으며 언제나 감사한 존재였다는 반증일 것이다. 비록 그 사람에게 난 그런 존재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그렇다면 이건 타인의 잘못이 아닌 내 잘못이다. 난 언제나 도움을 받았고, 도움을 되돌려주지 못한 부족한 놈이란 것이니까. 그래서 내 죽음은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사람들을 위해서. 세상을 한층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내 꿈은 오직 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꼭 이루어야겠다 다짐을 한다. 적어도 ‘나’라는 작은 세상에서는 그 사람들이 전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