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모습

by 공공이

나는 혼자서 밥을 잘 먹는다. 학교 생활을 하며 매번 친구들과 밥을 먹을 순 없었다. 처음에는 낯설었다. 혼자 가게에 들어가 음식을 시키고, 음식을 기다리면 매번 휴대폰만 쳐다보곤 했다. 음식이 나오면 허겁지겁 먹고 나왔다. 지금은 익숙한 듯이 먹고 싶은 음식을 결정하고 혼자 가게에 들어가 음식을 시킨다. 그리고는 몇 분 동안 가만히 있는다. 음식이 내 앞으로 도착하면 겸허히 음식을 받아들인다. 천천히 곱씹으며.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매번 레퍼토리는 같다. 밥은 잘 먹고 다니냐. 뭐 먹었냐. 요즘은 어떠냐. 매일 같은 질문을 받는 데도, 무슨 말을 원하는지도 알면서도 매번 같은 말을 반복한다. 잘 먹고 다닌다. 밥 먹었지 뭐, 그냥 그래. 혼자 밥 먹는 게 익숙해져도 엄마의 질문은 익숙해지지 않는 건가 보다. 어쩌면 엄마에게 하는 나의 표현이 익숙해지지 않은 걸 수도 있겠다.


한 번은 나도 물었다. 엄마는 밥 잘 먹고 다니냐고, 뭐 먹었냐고. 당연히 누군가와 같이 먹었을 줄 알았는데 혼자 집에서 남은 반찬으로 밥을 먹었다는 대답을 들었다. 분명 나도 그렇게 살고 있는데 내가 혼자 밥 먹는 건 아무렇지 않았는데 엄마가 혼자 밥을 먹었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쓸쓸함을 느낄 만한 상황에 내가 있는 건 아무렇지 않다. 나는 충분히 익숙하니까. 나 스스로가 그 상황에서 쓸쓸함을 느끼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 쓸쓸한 상황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그 모습이 너무 안타깝게 그려진다. 그게 엄마라면 더더욱. 마음 한편이 쓰라렸다.


생각해보면 엄마의 존재에 대한 초라함에서 나오는 어떤 기류가 이런 감정을 만든 것 같다. 영화에서 매번 등장하는 어머니의 특징들. 매번 희생하고 매번 불행하게 죽는 그런 캐릭터. 그 모습이 엄마의 모습과 오버랩이 되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그 모습들이 정말 엄마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는 동생과 엄마가 비 오는 날 길을 걷고 있었다. 우산은 하나밖에 없었고 동생이 같이 쓰기 싫다고 혼자 쓰고 가고 싶단다. 그걸 또 엄마는 혼자 쓰라고 줬다고 한다. 자신은 비 맞고 옷을 다 젖어 가면서. 엄마는 나한테 웃으면서 말해줬지만 나는 그 모습이 안타까웠다. 분명 이건 비와 젖음에 대한 인식 때문일 거다. 슬플 때마다 내리는 비, 눈물인지 비인지 모를 만큼 젖어있는 모습. 그 모습을 한 사람들은 모두가 슬프거나 힘든 감정을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엄마의 모습을 거기에 대입했다. 그때의 엄마의 심정이 어땠는지는 모른다. 엄마의 감정이 슬픈 감정이었을까 하며 혼자 상상했을 뿐이다. 나에게 엄마의 모습은 여전히 초라했다. 그리고 나는 여전히 슬펐다.



이제는 엄마도 행복해질 때가 되지 않았을까. 엄마라는 캐릭터도 행복하게 연출되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 캐릭터가 우리 엄마이길 바란다. 내가 엄마를 봤을 때 더 이상 초라한 모습이 아닌 행복한 모습이 떠올리길 바란다.


엄마에게 이제는 엄마의 삶을 살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이다. 엄마는 그냥 너희들 크는 것만 봐도 행복하다고 답변했다. 타인의 행복을 재단하거나 평가할 마음은 추호도 없지만 그 행복이 타인을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오는 것이길 바란다. 이제는 엄마가 우리가 없이도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으면 싶었다. 엄마를 초라한 모습이 아닌 행복한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말이다. 엄마 스스로가 그렇게 느끼지 못하더라도 내가 엄마를 그렇게 기억할 수 있게. 내가 이기적인 걸 수도 있지만 난 그게 진정한 행복이라고 믿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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