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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 Dec 23. 2018

10년 넘게 두발자유 운동 중


‘어느 고등학생들이 세계 여러 나라의 청소년들이 함께 모이는 행사에 참석했다. 그런데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스포츠형 머리를 한 것은 한국 학생들뿐이었다. 다른 나라 학생들은 같이 앉아서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곤 했지만, 한국 학생들은 그 속에 섞여들지 못하고 유독 따로 앉아서 보고만 있었다.’


한국 학교의 두발복장 규제를 비판하면서, 한 교사의 경험담이라며 이런 내용의 일화가 인터넷에 퍼졌던 것이 벌써 십수년 전의 일이다. 이런 일화와 함께 2000년에 두발자유화를 주장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전개되자 많은 사람들이 참여했고, 두발규제는 학생인권 문제의 대표 격이 되었다.

2005년 5월 다시 한번 두발자유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고등학생이었던 내가 청소년운동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것도 그해였다. 그래도 그땐 두발자유화가 금방 될 줄 알았다. 헤어스타일은 개인의 자유로 보장되어야 할 문제이고, 학교들은 규제를 할 그 어떤 합당한 근거도 제시하지 못했으니까. 길이든 색깔이든 머리카락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같았다. 같이 활동하던 지인이 “두발자유를 위해 뼈를 묻을 각오가 있느냐”는 낯간지러운 질문을 했을 적에 나는 흔쾌히 그렇다고 대답했지만, 정말로 뼈를 묻어야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길어야 10년 정도면 되겠거니, 그렇게 막연히 상상했던 것 같다.

그런데 2015년 5월로 내가 두발자유 운동을 시작한 지 만 10년이 지났다. 10년 넘게 두발자유 운동을 해온 셈이다. 물론 성과가 없진 않다. 경기, 서울, 광주, 전북 4개 지역에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들은 두발자유가 인권임을 명시하고 있고, 실제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몇몇 학교에서 학생들의 노력으로 두발자유화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두발자유’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가령, 이명박 정부 당시 교육부는 학생인권조례의 발목을 잡으려는 의도로 두발에 관한 규정을 학칙에 정할 수 있게 법령을 개정했다. 그래서 전북 학생인권조례는 학교가 두발규제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식으로 조항을 쓸 수밖에 없었다. 경기도의 학교들에서는 “특히 두발의 길이를 규제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 것을 곡해하여 길이 외엔 마음대로 규제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되지 못했거나 교육감이 두발자유를 향한 의지가 없는 지역들은 말할 것도 없다.


2018년, 서울에서는 서울시 교육감이 '두발자유화 선언'을 발표했다고 호들갑을 떨었으나, 여론조사에 따르면 19세 이상 비청소년들 사이에선 반대 의견이 더 많다고 한다. 경상남도에서도 학생인권조례 제정이 논의되고 있으나 반대가 만만치 않다. 두발규제는 여전히 백만이 넘는 청소년들이 겪는 심각한 인권 문제이며, 심지어 교육부는 이런 인권침해를 고수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말로 내가 목숨을 바치고 뼈를 묻어서 두발자유화가 된다면 그러고 싶은 답답한 심정이다.

2015년 5월, 인천에서 ‘2015 세계교육포럼’이라는 행사가 열렸다. 일정 중에는 한국 교육의 발전 경험을 공유하는 특별세션도 있었다. 글쎄, 발전? 나에게 한국 교육은 10년이 넘도록 두발자유화 하나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반인권과 고집불통의 상징일 뿐이다. 과연 한국 정부는 똑같은 교복과 똑같은 머리모양을 한 한국 학생들의 모습도 세계에 자랑할 수 있을까? 세계에 한국 교육을 얘기하려면 각종 체벌이 공공연히 벌어지는 현실, 각종 차별과 비민주적 억압, 그리고 세계 최장의 학습시간에 시달리는 한국 학생들의 삶부터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 2015년 4월 〈한겨레〉에 기고했던 칼럼을 고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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