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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 Apr 14. 2019

학생의 결사의 자유, 교사의 노조할 자유

한고학연의 경우, 전교조의 경우

2005년,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의 일이었다. '한국고등학교학생회연합회'(한고학연)라는 고등학교 학생회 연합 단체가 출범을 했는데, 언론 등에서 정말 난리가 났다. 어느 방송에서는 한고학연을 가리켜 고등학생판 한총련이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썼고, 그 배후엔 전교조와 연관된 괴단체가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헛소문을 보도하기도 했다. 당시 〈사립학교법〉개정 논란과 학생 자치 보장을 위한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국회에 상정되어 있던 상황과 연관 지어 가며, 한고학연이 열린우리당이나 전교조와 연계된 단체라는 식의 해석도 나왔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뒤에도 몇 년 동안 한고학연 배후에 전교조가 있다고 아무런 증거도 없이 중상하는 글들이 인터넷에 떠돌았다. 


이 모든 것은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다. 한고학연은 '고등학생 권리 찾기'를 위한 학생회 연합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고등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학생회 연합 조직이었다. 참여하는 사람들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아 출범 당시 대중조직이라고 볼 수도 없었다. 실제로 출범 이후 한고학연은 '비정치성'을 강조했다. 활동 내용도 여러 교육 현안들에 대한 학생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권리침해 신고를 받아서 대처하고, 학생회 운영 노하우(기법)를 나누는 캠프를 여는 정도였다. 나름의 의의가 있는 단체였고 그 가치를 깎아내릴 생각은 없는데, 어쨌건 몇몇 언론의 보도처럼 교육 문제나 사회 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운동을 하려 했다거나 전교조와 연계되어 있다거나 무시무시한 힘을 가진 단체는 아니었다. 아마 '학생회연합'이라고 하니까 언론에서 지레 대학생운동의 학생회총연합 같은 것을 떠올리고 자극적인 기사를 쓴 것 아니었을까 싶다. 물론 거기에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학생회 연합 같은 조직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청소년에 대한 편견도 반영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는 단지 '해프닝'이 아니었다. 한고학연은 이런 의혹(?) 때문에 출범식 장소를 빌리는 것에도 어려움을 겪었고 예정된 출범식 일정이 늦춰졌다. 한고학연 출범을 준비하던 사람들은 학교에서 교사, 교장 등에게 탈퇴를 종용당했으며, 경찰로부터도 조사를 받았다. 출범식에도 교육청에서 장학사가 파견되어 감시를 했다. 이런 과정에서, 청소년들의 결사의 자유는 완전히 무시당했다. 제 뜻대로 모여서 단체를 꾸리는 것은 누구나 자유로이 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고학연은 정부로부터 학교로부터 많은 방해를 받았다. 그리고 이에 대해 한고학연은 한 번도 제대로 사과를 받지도 못했다. 한국의 청소년들에겐 실질적으로 결사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사건이었다.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느끼는 동병상련


그로부터 8년이 지난 2013년에는 전교조가 정부의 도마 위에 올랐다. 정부가, 〈교원노조법〉상 해고된 교사는 노조에 가입할 수 없으니, 전교조가 조합원들 중 해직된 사람들은 쫓아내도록 규약을 바꾸지 않으면 노조로서의 법적 지위를 취소시켜 버리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전교조 규약은 "조합원이 조합 활동을 하거나 조합의 의결기관이 결의한 사항을 준수하다 신분 또는 재산상의 피해를 본 경우 규정이 정하는 바에 따라 조합원 신분을 보장하고 조합원 또는 그의 가족을 구제한다"고 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조 활동을 하다가 해직당한 조합원 9명이 전교조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사학비리를 고발하거나 학생인권 문제 등으로 비판적 활동을 했다가 해직당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제노동기구(ILO)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정부에 의견을 보낸 것이나, 초기업적 노조의 경우는 해직자나 구직자 등도 조합원으로 포함될 수 있다는 것이나, 수년 전에 정부도 교사 노동조합에 해직자를 포함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합의를 했었다거나, 그런 여러 가지 이야기들은 이미 많이 나왔으니 굳이 하지 않겠다. 그저 나는 이번에 전교조가 노조 설립 취소 위기에 몰린 것을 보면서,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적에 목격했던 한고학연의 일이 연상되었다.


상상을 해 보자. 만약 초·중·고등학생들이 실질적인 학생들의 대중조직으로서 수만 명이 가입한 '학생연합' 같은 것을 만들어서 정부의 교육 정책에 대해 비판을 하고 집단행동을 한다면, 우리 사회와 한국 정부는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학생회들이 연합해서 단체를 만들고 학교 운영이나 교육 정책 결정에 참여할 권리를 요구한다면? 일단 그 단체의 간부를 징계하거나 퇴학시키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그들을 학생들로부터 떼어놓고, 이제 학생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학생이 아니니까 그 '학생연합' 단체와 대화 같은 것을 할 때도 그 사람들은 배제하라고 할 가능성도 있다.


이것은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리 허황한 상상이 아니다. 실제로 학교들 중에는 학생회 임원이 뭔가 학생 인권 같은 것을 주장하며 활동을 하면 그 사람들을 징계하고 징계 전력이 있으니 학생회 임원이 될 자격이 없어졌다며 학생회에서 배제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또한 1989년에 광주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광고협), 부산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부고협), 마산창원고등학생대표자협의회(마창고협) 등이 출범하자 실제로 학교는 그 간부들에게 퇴학 등 징계를 가했고, 정부에서는 수사와 구속을 하기도 했다.


전교조가 탄압을 받는 모습을 보면서, 청소년운동의 입장에서 교사들에게 '동병상련'을 느끼게 되는 까닭이다. 결국 교사들의 조직이건 학생들의 조직이건, 탄압을 받는 이유는 다양한 목소리들을 없애고 싶어 하는 한국 정부·교육 체제의 독재적인 사고방식 때문이다. 노동조합을 비롯하여, 사람들의 결사의 자유를 제대로 보장하지 않는 한국 사회 때문이다.


누구나 결사의 자유를 보장받아야


나와 같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는, 중학교 때 전교조 교사에게 체벌을 당했던 기억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어느 행사에서 그 교사가 전교조 지회장이라고 소개를 받는 것을 보고, 전교조가 나쁜 조직일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전교조가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라고 생각한다. 전교조는 교사들의 노동조합이고, 그중에는 다양한 교사들이 있을 것이다. 청소년인권과 관련해서 전교조의 공과 과를 평가하자면 복잡하다.


그러니 전교조가 착하고 좋은 단체라서, 뭐 촌지 근절에 기여한 단체라서 지켜야만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전교조가 노조로서의 법적 지위를 박탈당하고 탄압당해야 할 이유는 되지 않는다. 내가 전교조 법외노조화에 반대하는 것은, 교사들도 학생들도 비슷한 방식으로 교육체제 안에서 결사의 자유를 무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정부가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한 빌미란, 전교조 조합원들 중에서도 그나마 학생인권, 학교 민주주의 등에 대해 관심을 갖고 활동을 하다가 해직당한 이들을 조직에서 배제하라는 것이었다. 이는 전교조 안에서 그런 문제들에 대해 남아 있던 조금의 의지와 관심마저 버리라는 압박과 다름없다. 전교조의 해직 조합원 중 1명인 인천외고에서 학생인권 보장을 주장하다가 해직당한 박춘배 교사 같은 사람을 생각하면 청소년운동을 하는 이들이 더더욱 침묵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전교조가, 더 정확히 말하면 교사들이 지금보다 더 학생인권에 대해서 교육도 많이 받고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과 별개로 교사들의 노동조합의 권리도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것이다. 요컨대, 나는 전교조를 보면서 자꾸 한고학연이 떠오르고 광고협, 부고협, 마창고협 등이 떠오르는 것이다. 학교에서 결사의 자유를 무시당하는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의 공감이라고나 할까? 오지랖이 넓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교사의 권리조차 무시하는 정부가 학생들의 권리라고 존중해줄 것 같지는 않아서 그런다. 결사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아니라고 한마디 해주고 싶다. 그러면서, 내 마음 한편에서는 전교조 또는 교사들 역시 학생들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는 조직을 만들고 결사의 자유를 행사할 때 기꺼이 지지하고 힘을 보태주지 않을까, 뭐 그런 희망을 슬쩍 가져 본다.  




※ 2013년 10월 〈프레시안〉에 쓴 글을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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