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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현 Mar 31. 2019

가정 안 청소년도 종교의 자유가 있다

종교 강요는 아동학대가 될 수도 있다면?

지인 중에 목사 부모를 둔 사람이 있다. 그는 어릴 적에는 가정환경 때문에 교회에 나가고 개신교를 믿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줄 알았으나, 10대 무렵에는 개신교 신앙을 가지지 않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교회에 계속 나가야만 했다. 만일 더 이상 개신교를 믿지 않는다고 선언했다가는 부모가 적지 않은 압박을 가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교인들로부터 '자기 자식도 믿음을 갖게 하지 못한다'며, 부모의 목회자 자질이 의심받게 될 수도 있었기에, 그의 부모는 자식이 교회에 꼬박꼬박 나오도록 엄격하게 관리했다. 성경에 "매를 아끼는 것은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이 있어서 그랬는지,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 체벌 등 폭력적 '훈육'도 왕왕 당했던 그는 부모와 갈등을 빚기를 두려워했다. 결국 그는 독립해서 아예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나서야 원치 않는 종교 생활을 그만둘 수 있었다. 여전히 부모에게는 교회에 다니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그 지인의 경우는 부모의 직업적 평판 문제까지 얽혀서 더욱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어찌 보면 특수한 사례이긴 하다. 그렇지만 가정에서의 종교 강요 문제는 그렇게 드문 일이 아니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17년 한국 아동·청소년 인권실태 조사에 따르면 "가정에서 부모 형제와 상관없이 원하는 종교를 가질 수 있는지" 묻자 중고생의 19.1%는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2016년 조사에서는 초등학생의 28.2%가 "그렇지 않다"고 답하기도 했다. 대략 5명 중 1명 이상은 가정에서 충분한 종교의 자유를 가지지 못한다고 체감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강요와 교육 사이의 구분 


이슈가 된 여러 건의 아동학대 사건들 이후로 한국의 아동학대 관련 법령은 대폭 개정되어 아동학대의 개념도 보다 넓어지고 대응 시스템도 정비되었다. 이에 따라 2015년 3월 교육부는 '아동학대 예방 및 신고 의무자 교육 실시' 공문을 보냈다. 여기에는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아동학대의 유형으로 "보호자의 종교 행위 강요"를 예시로 든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자 일부 종교단체들은 "종교 교육을 범죄시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국교회언론회는 2015년 4월 논평에서 '아동복지법에는 종교에 관한 항목이 없다', '부모가 믿는 건전한 종교를 자녀에게 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부모의 종교의 자유 제한이다' 등의 논리를 펼쳤다. 이들의 거센 반발에 결국 정부는 해당 예시를 삭제하고 말았다.


'종교의 자유'는 타인에게 종교를 강요할 권리가 될 수 없다. 종교의 자유 보장의 취지는 오히려 종교에 대해 타인에게 강요를 당하지 않도록 보장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일부 종교계에서는 종교를 학교교육 등의 다른 권력과 결부시켜 강요하지 말라는 것을 자신들의 종교의 자유에 대한 침해로 오도하곤 했다. 종교재단이 설립한 사립학교에서 종교를 강요하지 말라고 사회적 비판이 일었을 때도 그랬고, 학생인권조례 등에서 학생의 종교의 자유를 명시하려는 것에 대해서도 그랬다. 가정 안에서의 종교 강요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의 태도를 보였던 것이다. 이쯤 되면 이들이 원하는 종교의 자유는 종교의 자유가 아닌, 자신들만의 '종교 강요의 자유'가 아닌지 의심스럽다.


주로 아동·청소년이 관련된, 학교와 가정에서의 종교 강요 문제가 불거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청소년에게는 좀 더 쉽게 무언가를 강요하고, 이를 교육이나 지도로 정당화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모습인 탓이다. 청소년에 대해 부모, 교사 등이 가지는 권력과 위계적 관계의 문제에 대해서도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종교 강요가 아동학대일 수 있다는 예를 들었더니 종교단체들이 '종교 교육', '종교 권유'를 범죄시한다고 반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폭력 등의 강제력을 사용한 강요와, 적절한 교육이나 설득, 권유 등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은 "부모는 자신의 신앙을 자녀에게 전할 때 '안내, 소개, 권유'까지는 할 수 있어도 '강요'(육체적, 정신적)는 안 되며, 나아가 이런 기준은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고 논평했다. 종교 강요를 금지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법령 해석에 반발하는 모습은, 가정에서 상당수의 부모들이 청소년들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며 종교를 강요하고 있다는 의심이 들게 할 뿐이다. 


인권을 현관문 안으로 


정부와 교육당국이 일부 종교단체들의 반발에 밀려 종교 강요가 아동학대에 해당한다는 내용을 삭제한 것도 우리 사회 청소년 인권 인식의 한계를 보여준다. 이런 조치가 부모가 자식에게 종교를 강요해도 괜찮다는 메시지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마저 든다. 대한민국 정부가, 청소년의 한 인간으로서의 종교의 자유보다도 부모가 자식에게 자신의 종교를 따르도록 할 권리가 우선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사회는 가족 안에서의 인권 침해 문제를 사적인 일이라고 사실상 묵인해 왔다. 그러다가 가정폭력 방지법이 제정되고 아동학대 관련 법이 강화되면서, 가정 안에서의 일이라고 해도 폭력 등 인권 침해의 문제는 사회가 개입하여 공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원칙이 세워지고 있다. 인권이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자라난 덕이다. 이에 따라 법적으로는 가정에서의 체벌도 금지되는 등 제도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의식과 현실이 제도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청소년에 대한 체벌에 찬성하는 여론도 적지 않고 가정 안에서 부모가 자식에 대해 행하는 폭력은 어느 정도 용인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뿌리 깊다. 그러한 인식의 배후에는 부모가 자식을 통제하고 지도할 권리가 있고 자식은 부모에게 딸린 존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청소년을 인간으로 대하는지 보여줄 척도 


종교 강요 문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종교적 믿음은 특히 획일적 성격을 띠기 쉽고, '구원'을 위해서 강제로라도 믿게 만들어야 한다는 정당화의 논리를 가지기도 쉽다. "이게 다 너를 위해서, 너를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라며 강압적 수단을 쓰는 것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육신의 안녕도 아니고 영혼의 구원과 영생을 위해서라고 믿을 텐데, 강요 좀 한들 어떻겠는가. 그리고 그와 그리 멀지 않은 연장선상에는 잠도 못 자고 공부하도록 강요하거나 원치 않는 진로를 강요하는 경우, 성적 지향이나 정체성을 강제로 바꾸려드는 경우도 자리할 것이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더라도 함부로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타인에 대한 존중의 태도는 청소년에 대해서는 쉽게 사라진다. 청소년의 인권과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해서 침해해서는 안 될 선을 정부가 제시하고 지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다. 


학교에서의 종교 자유 문제를 비롯해서 여러 학생 인권 침해에 대해서는 청소년들과 시민단체들의 비판으로 부족하나마 어느 정도 사회적 기준이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가정에서의 종교 강요를 비롯해서 체벌이나 사생활 침해 등의 문제는 그만큼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학교처럼 공적이고 공개된 장소가 아니라는 현실적 요인도 있겠지만, 부모 자식 간을 특별한 관계로 보고 그 안에서는 청소년의 인권을 유보시키려는 관습적인 태도가 작용하는 면도 분명히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고 이 사회의 시민임을 인정한다면, 자식에 대한 부모의 종교 강요 문제를 예외적으로 볼 어떠한 이유도 없다. 이 사회가 청소년이 독립적 인격체이며 인권의 주체임을 인정하는지 따져볼 수 있는 첫 번째 척도가 바로, 부모와 다른 사상·종교, 사생활을 가질 권리를 보장하는지 여부일 것이다.




※ 2019년 1월 〈프레시안〉에 쓴 글을 조금 다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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