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실천은 남을 단죄하려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
운전면허를 땄다. 예전부터 운전면허를 가질 생각은 있었는데, 30대 후반에 접어들어서야 따게 된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그저 너무 바빴고, 돈(학원비 등)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에 따려고 했는데 필기시험에 합격한 뒤 팔을 다쳐서 운전을 할 수가 없었고, 그러다가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운전면허를 땄다는 소식을 알리자 주변에서 몇 번 '자동차를 살 것이냐'는 질문을 받게 되었다. 자동차는 사지 않을 계획이다. 나의 재산과 소득으로 감당할 수도 없을뿐더러, 기후위기 등 생태적 문제를 고려한 것이기도 하다. 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개인용 자동차를 소유하고 이용하는 것이 여러 문제를 낳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생계나 생활 측면에서 개인용(자가용 또는 영업용) 자동차가 굳이 필요치 않다. 10대 때부터 해온 생각이다. 그러면 운전면허는 따서 무엇에 쓸 거냐고? 1년에 2~3번 가족여행을 갈 때나 단체 활동 중에 자동차 운전이 필요할 때 빌려서 쓰게 될 듯싶다.
운전면허증을 받아들고 나오니 대략 15년 전(내 나이 20대 초중반)에 같이 청소년인권운동을 하던 동료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나와 나이가 비슷했던 그는 나에게 자동차를 사고 싶은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없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그는 운전면허는 딸 것이냐고 물었다. 운전면허는 딸 생각이라고, 있으면 쓸 일이 있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러자 그는 나에게 실망했다고 했다. 자동차의 해악이 큰데, 운전면허를 따는 것도 거기에 일조하는 잘못이라고 했다. 《녹색평론》이었나, 《영혼 없는 사회의 교육》이었나를 함께 읽고서 나눈 이야기였다.
그러면 운전면허는 따지 않고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개인용 자동차를 얻어 타고 다니는 건 괜찮은 일일까? 오직 대중교통만 이용해야 한다는 취지였을까? 아니면 운전면허를 취득하면 결국에는 자동차도 사게 될 거라는 '미끄러운 내리막길' 논리였을까? 사실 그 당시에도 '뭔 소리야, 이 자식은' 하는 생각이 들어서 별로 토론을 벌이지는 않았던지라 잘 모르겠다.
그 사람은 지금도 자동차도 없이, 운전면허도 따지 않고 살고 있을까? 얼마 안 가 (그 와중에 징계 등도 있었는데) 청소년인권운동을 그만두었고, 인권운동 관련 네트워크에서 소식을 못 들은 지가 10년도 넘었으니 알 길이 없다. 내 안에는 그가 자기 신념(?)을 지키고 있길 바라는 마음과, 그때 그렇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듯 말한 것을 반성하였기를 바라는 마음이 병존하고 있다. 자기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훨씬 클 것 같지만.
비슷한 경험이 또 하나 있다. 20대 초반 무렵, 거의 같은 나이의 남자 활동가 몇 명이 있던 술자리였던 걸로 기억한다. 한 동료 활동가가 나에게 군대는 어떻게 할 생각이냐고 물어서, 특별히 병역 면제를 받을 사유가 발생하지 않는다면 병역거부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 활동가는 나에게 그럼 병역거부를 하고 감옥에 갈 거냐고 물었다. 내가 그래야 할 것 같다고 대답하자 그는 나에게 그것도 타협이고 굴복이라고 언성을 높였다. 자기는 군대에도 감옥에도 잡혀가지 않고 숨어다니며 계속 저항할 것이라고 했다. 그때도 뭐 특별한 토론은 없이 '그러냐' 하고 지나갔던 것 같다. 표현의 강도나 어조는 술에 취해 나온 이야기임을 감안해야겠으나, 단지 술자리 농담은 아니었다. 그 활동가는 아주 진지했으며, 그 이후 다른 자리에서도 비슷한 이야길 반복했기 때문이다.
10여 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나는 2011년에 병역거부를 하여 1년 6월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1년 3개월가량을 감옥에서 보냈다. 나를 비판했던 그 활동가는, 역시나 그로부터 몇 년 뒤에 청소년인권운동을 그만두어서 자세한 소식은 모르는데, 전해 듣기로는 현역으로 병역 복무를 마쳤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나로선 당연히 '나한테 그렇게 비판을 하더니 자기는 병역거부조차 안 했네'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지금은 그가 자기 신념대로 살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과, (가능했을진 둘째치고) 국가의 징집과 처벌을 피해 도망다니는 장기간 고달픈 길을 택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마음이 반반이다.
"너무 강한 말은 쓰지 마…. 약해 보인다구."
일본의 저명한 학자(??) 아이젠 소스케의 유명한 대사.(만화《블리치》)
이런 말과 태도는 여러모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평할 수 있다.(나중에 행여 스스로 지키지 못했을 때 2배로 민망하다는 문제도 있다) 돌이켜보면, 이런 경험들은 나 스스로도 '혹시 나도 저랬던 적이 있나' 반성하고 조심하게 되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 신념의 위치나 실천의 강도에 관련해서 다른 사람을 쉽게 심판하거나 실망했다고 하지는 않았나, 내가 너보다 더 투철하고 강한 실천을 하고 있으니(할 것이니) 더 우월하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지는 않았나 하고 말이다. 아마 나도 어느 순간에는 비슷한 언행을 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이 기회에 미리 사과를 남겨 둔다.
흥미로운 점은, 경험적으로 저런 '강한 평가의 말'은 즉흥적이고 경솔하게 나올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심사숙고하고 오랫동안 활동해 온 문제에 관해서는 조금 더 신중하게 접근하고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너무 강한 말이 툭 튀어나갈 것 같을 때는, 내가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깊이 있게 고민하고 경험해 보았는가, 한 번 더 생각해 봐야겠다.
예전에 인권활동가들을 위한 입장문(성명서 등) 쓰기 교육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그때 너무 센 표현, 감정적으로 분개하는 등의 표현을 삼가라는 조언을 들었다. 글쓴이가 너무 흥분하고 있으면 독자는 도리어 거리감을 느끼게 된다는 지적이었다. 독자들이 주장에 설득되거나 공감을 느끼게 해야 하는데, 글쓴이 혼자서 너무 강하고 거친 말을 쏟아내고 있으면 그런 목적이 달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긴, 나도 너무 강한 표현이 많이 들어간 글을 보면 허세를 부리는 것 같고 자극적인 표현들로 눈길을 끌려는 것 같아서 괜히 내실이 없어 보일 때가 많다. 조금 성격이 다르지만 '너무 강하게 말하지 마'라는 지침이 어떤 의미인지 보여 주는 예이다. 돌이켜 보면 운전면허를 따는 것이나 병역거부 이후 처벌을 감수하는 것이 모자라다고, 실망이라고 하는 말에도 반감이나 허세 같다는 느낌이 더 컸다.
무엇보다도, 나는 우리가 운동을 도덕적인 일로, 남을 평가하고 심판하는 일로 혼동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운동은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실천이다. 사람들을 선악으로 판별하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이 착하게 살기 위해서, 자신의 삶이나 실천이 더 우월하다고 내세우기 위해서 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병역거부이든, 자동차 거부이든(혹은 대학거부, 탈학교, 비혼, 채식 등 여러 가지) 운동의 차원에서는 세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변화시키기 위해 하는 정치적 실천이다. 그런 실천들은 다양한 방식과 스펙트럼으로 나뉘는 것이지, 옳고 그름으로 이분법적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따라서 어떤 실천 방식을 평가하고 비판하더라도 그건 좀 더 구체적이고 정치적인 토론과 제안이어야 하지, 단순히 어느 선에 못 미치니 나쁘다는 식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운동의 이념과 세상에 비판적인 담론들을, 또 다른 도덕 교과서나 경전처럼 받아들이고 이를 기준으로 타인을 심판하고 단죄하는 것에 골몰하는 것은 운동이 변질되는 최악의 결과물 중 하나일 것이다. 하물며 '나보다 못하다'는 식의 이야기가 운동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이 점을 우리가 염두에 둔다면, 자연스레 운동 안에서 남에 대해 '너무 강한 말'은 잘 쓰지 않게 되지 않을까 한다.
※ 물론 이 이야기는 정치적(운동적) 실천에 관한 이야기이며, 윤리적 잘못이나 약속과 규칙을 어긴 등의 문제를 판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도덕'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이론적이고 추상적인 이야기를 정리하고 싶다는 욕심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는데 공부도 부족하고 여유도 나질 않아서 못 하고 있다. 이 글은 그런 생각을 간단한 에세이 형태로 담아 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