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도 작동법이 필요하다
1절. 정상이 아닌데 ‘그냥 산다’는 말
“그냥 그래. 어떻게든 살고는 있지.”
내가 가장 자주 했던 말이었다.
무심하게,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누가 내 안부를 물을 때마다 그렇게 대답했다.
‘어떻게든’이라는 말 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사실 너무 많은 말들이 숨어 있었다.
감정은 느껴지지 않고,
하루하루가 버티는 일이 되어버린 삶.
잘 웃지도 않고, 잘 울지도 않으며,
어디 아픈 건 아닌데,
계속 피곤하고, 가끔은 그냥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
무언가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나는 그걸 설명하지 못한 채
그저 “살고 있다”고 말하며 스스로를 진정시키고 있었다.
어느 날, 내 입에서 그 말이 또 나오고 있는 걸 들었다.
“그냥… 뭐, 살아는 있지.”
그 순간 스스로 놀랐다.
나는 지금 ‘살고 있다’는 말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사는 중’이긴 했지만,
그 삶은 작동하고 있지 않았다.
출근도 했고, 사람도 만났고, 일을 해냈지만
내 안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감정은 흐르지 않았고,
욕망은 말라붙었고,
생각은 굳어 있었다.
어쩌면 나는
아픈 걸 알면서도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처럼,
삶이 멈췄는데도, 그냥 계속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누군가 그랬다.
“기계는 멈출 때 수리하지만, 사람은 멈춰도 그냥 산다고.”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그동안
내가 아픈지도 몰랐다.
아니, 몰랐던 게 아니라
인정하기 싫었을 뿐이다.
왜냐면,
그걸 인정하는 순간부터
모든 걸 다시 봐야 하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도,
내가 당연하게 여긴 감정 반응도,
내 하루의 루틴조차 전부 낯설게 점검해야 하니까.
그건 두렵고, 번거롭고, 외로웠다.
그래서 그냥
“살고는 있지”라는 말 뒤에
나를 숨겼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말이 내 안에서 오래 울리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 울림이야말로
삶이 더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분명한 신호였다는 것을.
2절. 깨달음 — 삶에도 구조가 있다면?
하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삶이 하나의 기계라면, 나는 어떤 상태일까?”
이상하게도 그 질문은 나를 오래 붙들었다.
기계에는 매뉴얼이 있다.
작동법이 있고, 점검 주기가 있고, 고장 진단법도 있다.
그런데 내 삶엔,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구도 가르쳐준 적 없고,
어디가 고장인지, 언제 멈췄는지
나 스스로조차 모른 채 무작정 움직이기만 했다.
내가 살아온 방식은
입력보다는 출력 중심이었다.
해야 할 일 → 해냈다.
말을 걸었다 → 반응했다.
요구받았다 → 맞췄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반응’하며 살아왔고,
언제부턴가 스스로 나를 입력하는 법은 잊었다.
쉬고 싶어도 참았고,
화가 나도 이해하려고만 했고,
슬퍼도 그냥 넘겼다.
감정이라는 에너지원은 계속 고갈되고 있었는데,
나는 충전이 아닌 사용만 반복했다.
기계로 비유하자면,
나는 매일 구동되는 회로였다.
고장은 났지만, 사용자는 눈치채지 못한 채
계속 전원을 켰고,
속에서는 점점 불꽃이 나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삶은 ‘느낌’으로 버틸 게 아니라,
어떤 구조와 흐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단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내는가’에 대한 작동 설계도가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그걸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그냥 보이는 대로, 느껴지는 대로, 남들 하는 대로
살아왔을 뿐이다.
그러니 지금의 나는
내가 고장 난 게 아니라,
설계 없이 살아온 방식 자체가 문제였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3절. 회고 — 내 삶의 구조는 어디서부터 어긋났나?
돌아보면, 나는 처음부터 무리하고 있었다.
학창 시절, 나는 “잘해야 한다”는 말이
누군가의 기대가 아니라 존재의 조건처럼 느껴졌다.
늘 반에서 상위권이어야 했고,
칭찬받지 못하면 내 존재 자체가 무너지는 것 같았다.
공부든, 인간관계든, 노력이라는 단어에 중독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이루지 않으면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감각은
어느새 삶의 회로가 되었다.
대학생이 되어도, 사회에 나와서도
그 회로는 그대로 작동했다.
감정은 비효율적인 장애물처럼 여겼다.
‘슬프면 뭐가 달라지는데?’
‘감정은 접어두고, 일단 해야 할 걸 해.’
이게 내 철학이었고, 내 유일한 생존법이었다.
회사에서는
야근이 당연했고, 과로는 자랑이었다.
“나는 할 수 있어요.”
“괜찮습니다.”
“문제없어요.”
그 말들을 너무 자주 입에 올리다 보니
어느새 진심처럼 믿게 되었다.
하지만 그 모든 말들이
내 감정을 완전히 밀어내는 대가라는 걸
나는 너무 늦게 알았다.
처음 무너졌을 땐
“내가 뭘 잘못했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크게 실수한 것도 없었고, 누군가를 해친 적도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무너졌고,
정확히 어디서부터 틀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 반복된 패턴을 보기 시작했다.
무리해서 버틴다 → 몸과 마음이 피로하다 → 작은 실수나 말에 민감해진다 → 폭발하거나 회피한다 → 자책하다 포기한다 → 무기력해진다 → 그러다 다시 억지로 일어선다 → 또 무리한다.
이게 나의 오작동 루틴이었다.
사고가 난 게 아니라,
사고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살아온 것이다.
나는 고장난 게 아니었다.
고장나게 설계된 루틴을 아무 의심 없이 반복했던 것뿐이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건 내 잘못이기 이전에
내가 내 삶을 설명할 언어와 기준을 갖지 못한 결과였다.
나는 살아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
결국 나를 망가뜨린 건
한순간의 실패나 위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구조가 잘못 짜인 삶의 방식이었다.
4절. 시스템적 이해 — 나는 어떤 구조로 살고 있었는가?
처음엔 단지 내가 유난스러운 줄 알았다.
감정 기복이 심해서 그런 줄 알았고,
체력이 약해서 자주 지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의 반복되는 무너짐엔 흐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감정이 폭주하는 순간도, 이유 없이 무기력해지는 날도,
어느 하나 우연이 아니었다.
나는 늘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했고,
비슷한 방식으로 망가졌다.
내 삶을 하나의 시스템으로 본다면,
그 구조는 이랬다:
1. 문제 발생 → 2. 남 탓 → 3. 감정 회피 →
4. 과잉 행동으로 만회 시도 → 5. 에너지 소진 →
6. 감정 폭발 또는 무기력 → 7. 자책 → 8. 다시 무리
이게 나의 고장 순환 회로였다.
누군가 나를 건드리면, 나는 나를 다그쳤고,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버티거나 피했다.
그리고 결국 또 무너졌다.
그때마다 나는
‘왜 또 이러지?’ 하며 의아해했지만,
사실은 늘 같은 회로 위를 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삶을 매뉴얼 없이 사용했고,
고장나도 기계처럼 재시동만 반복했다.
잠깐 쉬면 다시 괜찮아질 줄 알았다.
하지만 똑같은 구조로 다시 돌아가니
결과도 늘 같았다.
이제야 보인다.
나는 늘 출력 중심의 구조로 살아왔다.
일단 해내고, 일단 버티고, 일단 결과를 내자.
감정도, 욕구도, 피로도
전부 ‘나중에 해결할 것’처럼 밀어두고
지금 해야 할 일만 실행했다.
그런데 문제는,
입력 없는 시스템은 결국 과부하로 무너진다는 것이다.
충전 없이 출력만 계속한 내 삶은
당연히 언젠가 다운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안다.
이 회로를 계속 반복하면, 결국 나는 내 삶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니 이제는
다른 회로를 설계해야 한다.
반응이 아닌 이해로,
회피가 아닌 점검으로,
과잉이 아닌 균형으로 작동하는
새로운 나만의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것이 고장이 아닌
작동을 위한 첫 설계도라는 걸
이제야 비로소 깨닫는다.
5절. 선언 — 나는 나의 작동 방식을 바꿔야 한다
나는 이제,
이 모든 고장이 내 잘못만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나는 게으른 사람도 아니었고,
무능한 사람도 아니었고,
감정이 유난한 사람도 아니었다.
단지, 잘못된 방식으로 나를 작동시켜왔을 뿐이다.
누군가 시킨 것도 아니다.
누가 정해준 것도 아니다.
내가, 스스로 그렇게 작동하는 방식을 선택했고,
그 방식대로 수년을 살아온 결과가 지금의 나였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이걸 ‘고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이건 수리가 아니라, 재설계의 문제다.
헝클어진 선 하나만 손보는 게 아니라,
전체 회로를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
내 감정이 어떻게 작동하고,
나는 어떤 상황에서 쉽게 무너지고,
에너지는 어떤 방식으로 소모되고,
어떤 조건에서 나는 나를 잃는지를
철저히 분석하고, 다르게 연결해야 한다.
이건 ‘나를 바꾸는’ 일이 아니다.
나는 나를 바꿀 생각이 없다.
나는 그저 내가 살아온 방식을 다시 배우려는 것뿐이다.
잘못 산 게 아니라,
단지 잘못 작동시켰던 것이라면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제는 남들 방식이 아니라,
나만의 작동법을 설계하려 한다.
속도가 늦더라도,
결과가 평범하더라도,
그게 나를 지키는 길이라면,
그게 진짜 ‘나의 삶’이라면,
나는 기꺼이 그 길을 택하겠다.
이건 거창한 혁명이 아니다.
그저 오늘부터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살아보려는
아주 작고 단단한 선언이다.
6절. 마무리 — 오늘의 점검 질문
내가 고장 난 게 아니라,
내가 살아온 작동 방식이 틀렸을 수 있다는 이 작은 자각이
삶을 다시 시작하게 한다.
우리는 매일 살아내느라
정작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잊는다.
이제는 멈춰서 묻고, 점검할 때다.
오늘의 점검 질문
– 나는 어떤 루틴, 감정, 반응 패턴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 그 구조는 나를 회복시키는가, 무너뜨리는가?
– 나를 다시 설계하기 위해, 지금 무엇부터 점검할 것인가?